목회단상

고마웠던 사람들 2

호걸영웅 2009. 5. 13. 09:12

나의 목회활동 중에서 제주도 시절이였다.

2년차가 시작될 무렵. 대구교회 출신의 김광수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광수형제는 한마디로 화가지망생이다.

당시 제주대학 미술학과에 재학 중이였는데, 성실하기 이루 말할수 없는 형제였다. 그가 전도한 두 여학생은 여러번의 출석 끝에 성경공부 중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도리를 깨우쳤던 자매들이다. 두 사람 다 무난하면서도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고 쾌활 명랑한 자매들이였다. 물론 같은미술학과 생이였고 교회출석도 꾸준했다. 주일학교는 비교적 활발해서 근 30여명이 넘게 나오기도 했고 편균 이십여명이 출석했다. 광수형제는 그림 솜씨도 빼어나서 한번은 미술작품전에 가 보았는데 아마 누드작품을 그린것 같은데, 그 그림의 묘사성이 참으로 매끄럽고 놀라운 감이 들었다.

한번은 광수형제가 교회에 오는데, 동네 아는 꼬마녀석이 캑캑거리고 있더란다. 봉길이란 아이로 기억되는데, 알고보니 그녀석이 500원짜리 동전을 입에넣고 있다가 삼켜버렸다는 거다. 급히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데려가서는 핀셋같은 것으로 무사히 동전을 꺼내게 되었다. 광수형제가 아니었으면 아마 죽었을수도 있었지 않을까? 

#영숙이란 자매가 무당집 딸인데, 교회에서 부덕한 일들을 좀 하였다. 우리 교회 오기 전에도 다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서로 다투어 별거하게 만들었다는 소문도 알고 있었다. 역시 그 자매는 우리 교회에 와서도 나에겐 교언영색이요 아내에겐 왕따? 식 태도를 취하므로 아내와  나는 종종 다툼이 있었다. 생각 끝에 난 그녀를 내보내기로 했다. 수요예배 후, 그 자매는 이번엔 광수형제에게 교언영색의 태도를 취하였다. 그 틈을 타서 나는 냉큼 그녀에게 더는 우리교회 출석을 하지 말아달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결국 그녀는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너무 이성을 현혹하는 태도를 취했기에 내려진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광수형제도 좀 놀랐을 것이다. 그러면서 일년이 다 지나고 교회의  재 계약기간이 돌아왔다. 선교헌금은 거의 없고 본교회 지언은 생활비의 반도 되지 않았다. 생활비는 많이 들고, 일년치의 죽어지는 세로 400만원이 또 필요했다. 생각 끝에 제주시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서울 본교회 담임목사님께 철수하겠다는 편지를 올렸다. 허락이 떨어졌다. 2년간의 우여곡절 속에서 구령한 인원은 20여명 정도 될 둣 싶다.

제주해양경찰서에서도 몇 달 설교했고 제주 극동방송에서도 몇달은 방송설교를 했다. 그 방송은 중국까지 전파가 닿는 참으로 멋진 복음방송이다. 돈이 없어 결국은 포기했지만...

 

  선배되시는 박영철 목사님이 그 때 즈음 내려오셔서 개척을 하셨다. 내가 도울수 있는 것은 다 돕고 인수해 드릴만한것은 다 인수해 드렸지만 미약하기 그지 없다. 광수 형제와 두 자매는 제주대 CCC에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해 9월인가? 난 안양으로 반지하방을 얻어 올라았다. 그리고 광수형제를 보지 못했다. 언제나 성실하고 멋있고 잘생긴 부드러우면서도 신실한 광수형제. 항상 자랑스럽고 고맙다.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려나? 아이는? 어떤 아내를 얻었으려나? 지금도 가끔 고마운 생각이 든다.

분명 복 받고 살아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영숙자매가 이젠 아름다운 신앙의 사람이 되어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젊을 때 누구나 실수는 있는 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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