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지옥과 맹약한 자들(사28:14-22)

호걸영웅 2013. 8. 8. 11:37

 

지옥과 맹약한 자들(28:14-22)

 

 

[] 28: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28:15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28:17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 28:18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 28:19

그것이 유행할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주야로 유행한즉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 28: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

[] 28: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 임이라

[] 28:22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면 고수(高手)와 하수(下手), 즉 바둑의 초보자의 차이가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수들은 판 전체, 또는 몇 수 앞을 바라보면서 바둑알을 놓는데 초보자는 당장 앞에 먹을 수 있는 것, 한 두 수를 보고 쾌재를 부르는 것입니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에게는 “바둑의 10계명”중에 하나가 ‘입계의완(入界誼緩)이라 합니다.  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는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포석(바둑돌을 포위하여 놓다)이 끝나면 , 상대방 진영과 내편 진영 사이의 경계가 윤곽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시점에서 공격을 서두르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입계의완'은 바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요컨대 '정확한 형세를 판단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바둑 두는 것과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형세(形勢)를 판단하는 능력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판단 아래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어떤 전략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인은 형세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오만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경만(輕慢)한 자’라고 했습니다. 즉 경솔하면서도 건방지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22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당대에 넓은 세계적 범위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계획되고 작정되었다는 메시지였습니 다(14:24-27). 그러나 유다의 오만한 지도자들은 세계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보지 못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는 것이 가장 좋은 안전책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는 사망과 동맹을 맺어서 가장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엽(枝葉)적이고 편협(偏狹)적이며 옹졸(壅拙)한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과신하게 되었습니다.

 

1. 재난에 대한 역사적 안목이 없이 인간적 방책만 마련해 놓고 안전하다고 과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14-15).

   국가와 국민에게 위기를 안겨주었던 것은 종교 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유다의 정치 지도자들도 정치와 외교 정책적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惹起)하였습니다. 세계의 정세를 보는 통찰력과 예견력(豫見力)이 전혀 없이 자기 기만(欺滿)에 빠져 있었습니다.

 

(1) 자신들은 사망과 맹약을 맺었음으로 멸망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지옥,스올)과 맹약하였은즉”이라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반 앗수르 정책을 펼쳤다가(왕하18:7)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을 받고는 조공을 받쳐야만 했습니다(왕하18:13-16). 그러나 그의 정책의 기조(基調)는 반 앗수르 정책이었기에 그의 신하들을 보내, 친애굽 정책을 펼쳐 동맹을 맺었던 것입니다(왕하18:21, 36:9).

 

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은 애굽과의 동맹을 가장 큰 후원군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여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다”고 큰소리를 친 것입니다. 즉 이것은 사망과 음부와 동맹을 맺어 내일을 약속했으므로 결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고 예루살렘은 안전하다고 자신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2) 또 자신들에게는 넘치는 재앙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과신(過信)했습니다.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라 했습니다.

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재난의 고통이 휩쓸고 지나간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과신입니다.

 

성경은 앗수르 왕과 그 모든 위력을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라고 했고 그 물결이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8:7-8)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은 애굽과 체결한 동맹협정으로 인하여 그 재앙이 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가만히 앉아 있는 라합”에 불과하다고 평가하시면서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했습니다(30:7).

 

(3) 허황된 거짓으로 피난처를 마련해 놓고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자만(自慢)했습니다.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유다의 정치 지도자들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믿었습니다(46:1-2, 61:2).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막연한 약속만 붙들고 있을 수가 없어서 애굽의 바로 왕의 세력을 큰 피난처로 여기고, 그들과 동맹을 맺었던 것입니다(30:1-2). 그러면서 그들은 “그래 우리는 거짓으로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로 우리를 숨겼어.”라며 스스로는 앗수르를 속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함보다는 군대의 강함과 많음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적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31:1).

 

  2. 안전한 방책(方策)을 마련하지 못한 자들에게 재앙이 밀려올 것입니다(17-20).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예언적 이상(prophetic vision)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계획과 뜻이 있는지를 깨닫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은 온 땅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적절한 방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잘못 된 판단으로 어리석은 방책을 마련하여, 위기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거짓 피난처와 은신처를 소탕하실 것입니다(17).

   31:1에서도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적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justice)의 측량줄과 공의(righteousness)의 저울추로 그들의 정책과 행동들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는 그들의 모든 불신앙적 행동들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거짓의 은신처에 숨어있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우박과 거대한 물결로 그들을 쓸어버리시고 넘치어 멸하실 것입니다.

 

(2) 그들이 맺었던 언약과 가졌던 비전은 재앙이 밀려올 때에, 무너져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18).

   1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했습니다.

 

아무리 사망과 언약을 세우고 음부와 더불어 미래의 약속을 했다 할지라도, 물론 허풍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맺었던 언약은 폐지되고 성립이 되지 못하여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재앙이 밀려올 때에 미치지 못한다고 큰소리 친 그들을 짓밟아, 초토화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완벽한 방어를 구축하고, 도움을 받기 위하여 강한 자와 동맹을 맺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깨뜨리시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재앙이 수시로 임하므로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19).

   앗수르 군대의 공격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임할 때에 사람들은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들의 공격은 아침마다 이루어질 것이며, 심지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적군의 병사들이 지나갔다는 소식, 그들로 인하여 변()을 당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간담은 서늘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지치게 될 것입니다.

 

(4) 인간이 만들어 놓은 방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20).

   20절에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침상도 이불도 짧고 모자라서 몸을 감싸기에는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정치 지도자들이 마련해 놓은 구원의 방책은 전체를 안전하게 감싸기에는 불완전하고 역부족한 것들이기에, 재앙에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은 원수들에게 발각되어 불행을 겪게 될 것입니다.

 

3.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하나님이 마련한 구원의 방책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16, 21-22).

   그런데, 우주만물을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비록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지 만, 또 한편 그 가운데서 구원의 길도 마련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1)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세워 믿는 자로 위기를 당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16).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 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두다’(יסד, 아사드)는 ‘기초를 놓다’(to lay the foundation of), '설립하다‘(to establish), '정하다’(to decree)는 뜻으로, 미래에 시온에 한 돌을 세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한 돌(a stone)은 시험을 하여 품질이 입증이 된 돌, 견고하고 값진 모퉁이 돌, 기초에 쓰일 기초석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시온에 둔 돌’을 메시아 예수님이라 증거합니다. (9:33, 벧전2:6).

 

[]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벧전] 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보호하심을 받아, 결코 부끄럼이나 급절(急切)함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일어나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21).

   그리고 훗날에는 ,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방책을 믿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바알브리심에서 블레셋을 물리치듯이, 앗수르를 격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것이며(삼하5:20-21, 대상14:11), 기브온 골짜기에서 승리를 얻었던 것처럼(10:10, 대상14:16)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사역을 행하기 위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참조, 10:26).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멸하기 위하여 기이한 이적을 행하실 것이며, 그는 반드시 신비한 그의 사역을 실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돕기 위하여 일어나 일하실 때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책만이 거대한 재앙에서 구출 받는 가장 완벽한 구원의 전략인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경솔하고 오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22).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솔하면서도 건방지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보다는 인간의 세력의 보호를 찾고, 인간적 계략을 만들어 놓고 큰소리치며 오만 방자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멀리, 그리고 크게 보는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좁은 안목을 가지고 건방지고 오만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멸하시고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적 방책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선행을 쌓는 것도, 율법을 지킴도, 종교적 열심도, 수양과 도()를 닦는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바벨탑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의 큰소리에 기죽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영원한 반석이시며,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구원의 방편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결코 멸망 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참조:김성도/편집:익선 2013.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