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은 나의 깃발 (아 2:1-4)

호걸영웅 2013. 9. 25. 02:30

 

하나님은 나의 깃발 ( 2:1-4)

[] 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입니다.

「아가서」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64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왜 성경에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사실 하나님을 신랑으로 그 백성을 신부로 비유한 말씀입니다.

신약교회를에클레시아라고 부릅니다. 여성명사지요. 고로 계시록에서는 교회를 신부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여 여러 번 부릅니다.

그러므로 왠 성경에 연애소설이 있나? 하고 오해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결국  아가서에 나오는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을 헬라어로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아가서」는 이 사랑을 실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남녀 간의 사랑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사랑을 말하되 강렬한 사랑을 말합니다. 뜨뜻미지근한 사랑이 아닙니다. 뜨거운 사랑입니다. 2 5절과 8 6절에서는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병이 날 정도로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8
6절에서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기꺼이 죽을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그렇게 강하게, 그리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14절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했습니다.
고벨화는 중동지방의 관목 (사람 키만하거나 더 작은 나무, 2m이하) 중 하나 인데 희고 작은 향기로운 꽃이 핍니다
.
<네이버 백과사전>은 중동지역에서는 이 고벨화의 꽃다발을 목욕탕에 넣어 향기를 즐기며, 꽃다발을 친구의 최상의 선물로 여기며, 잎을 말린 것에 물을 넣고 끈끈한 풀(starch)처럼 만들어 화장할 때 사용하며, 손톱이나 손발을 물들이는 데도 쓰고, 인도에서는 사원에 바치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향은 장미향과 프리지아 향을 닮았으며, 은은하게 퍼지므로 1.3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낮보다 밤에 더 많은 향기를 낸다 합니다.

2;2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한 말인데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2:3절에서 남자들 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라고 화답합니다. 2 9절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노루, 어린 사슴, 모두 귀엽지요
.

본문 4절의 뒷부분은
신랑깃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왜 깃발에 비유했을까요? 사랑을 깃발에 비유한 일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이 문제의 답을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

첫째, 깃발은 나의 소속을 알려줍니다.


기는 ‘나는 이 깃발에 표시된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
4
절에서 술람미 여인이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라고 한 것은 ‘나는 사랑하는 남자, 당신에게 속해 있다, 나는 당신의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

또‘다른 남자들은 내게 관심 갖지 마십시오.’ 하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심령에는 주님의 깃발이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소속되어 있습니다.’라고  알려져야 합니다
.

이사야는 예수님을 2,700여 년 전에 이미
깃발에 비유해서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서 11 10절에서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하였습니다
.

이사야서 11 1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라고 하였는데 이 기치가 곧
깃발이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세상에 소속이 없는 것처럼 서러운 일이 없습니다. 선거를 할 때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도 참고합니다만,사실 그것보다 더 많이 참고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느 정당에 속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속한 것을 감사하면서 소속감을 분명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당이다!)


또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서 문상하기 위해서 초상집에 가면, 빈소 앞에 조기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인이나 자녀들이 졸업한 학교, 직장, 또는 단체의 기가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난 분이나 그 자녀가 이 학교의 동창입니다. 이 단체의 멤버입니다.’ 소속을 알려줍니다
.

빈소 앞에 다른 조기보다, 교회의 조기가 세워져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조기가 없으면 조화라도
근조, 아무 아무 교회라고 씌어진 리본이라도 달려있으면 얼마나 보기에 위로와 힘이 되겠습니까?


공동묘지에 가면, 묘 앞에 세워진 묘비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묘비에 다른 것들보다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이 제일 보기 좋습니다. 묘비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는 천국시민의 배지마크이기 때문입니다. 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로 우리는 내 위에 세워진 주님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갈 때, 내 위의 깃발은 힘차게 펄럭입니다. 사람들이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주님께 속했구나! 주님의 백성이로구나!’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

둘째. 깃발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갑니다. 광야에서 진을 옮길 때마다 막사를 치고 머물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지파 별로 질서정연하게 막사를 쳤습니다. 민수기 252절을 보면
진영과 군기 곁에 막사를 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지파 별로 진영을 정하고 군기를 세우면 그 지파에 속한 백성들이 막사를 쳤습니다. 유다 지파에 속한 백성들은 유다 지파의 기 밑에 막사를 세웁니다. 요셉 지파에 속한 백성들은 요셉 지파의 기 밑에 막사를 세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깃발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지 그 깃발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
군대에서 탈영한 병사는 무거운 벌을 받습니다. 성도가 주님의 기 밑을 떠나는 것은 곧 탈영입니다. 이사야서 5 26절은
주님께서 기치를 세우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그 기를 향해 모여야 하고, 그 아래에서 힘차게 전투를 치러야만 합니다. 탈영은 안됩니다.

 
이것을 체험한 다윗은 시편 139 9절에서 10절까지 에서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자로 불렸던 어거스틴도 젊었을 때는 행복과 만족을 찾아서 참으로 많이 방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때 참회하면서 한 첫 마디가,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로“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는 ‘나는 사랑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같은 고백을 예수님께 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

셋째, 깃발은 승리를 약속합니다.

4
절의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라는 말은 여자가 남자를 두고 한 말인데, 「아가서」6장에서는 반대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깃발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6
4절에서는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라고 했습니다. 디르사는 성읍의 이름인데 아주 아름다운 성읍이었다고 합니다
.
6
10절에는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했습니다. 패배한 군대는 당당할 수 없습니다. 승리한 군대가 깃발을 세우고 당당하게 행진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이 광야행진을 할 때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말렉이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같이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붙들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이 승리를 기념해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기념교회를 하나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의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인데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뜻입니다
.

‘하나님을 기로 삼았더니 승리를 거두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

여호와 닛시 하나님을 나의 삶의 깃발로 삼을 때,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는 그런 고백을 담은 찬송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찬송가 389장에서
,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우리 대장 예수 기를 가지고 접전하는 곳에 가신 것을 보라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390장은,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굳세게 싸워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늘 이김 주시네- 라고 노래합니다
.

기원후 310년경,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력이 적어 고전을 하고 있는데, 결전을 앞둔 날 병사들과 함께 십자가의 환상을 보았고, ‘이것으로 싸워 이기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
콘스탄티누스는 군기에 십자가를 그리고, 병사들의 방패와 투구에도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승인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서기313)

다윗은 시편 20 5절에서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내 위에 세워진 주님의 기는 십자가의 권능으로 죄악을 이기게 합니다. 마귀의 권세를 이기며, 악한 세상을 이길 힘을 줍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길 것을 약속합니다
.

내 위에서 펄럭이는 사랑의 깃발에 힘입어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중요한 것을 하나 생각합니다. 기는 마음대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60 4절을 보면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승리의 깃발을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힘써 살아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나를 위한 사랑의 깃발이십니다. 우리는‘나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하는 소속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게 하십시오. 주님의 깃발 밑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곧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세상의 악한 영과의 전투에서 늘 승리를 거두는 여러분 모두가 되실 것입니다.

 

참고: 유관지 /편집: 안익선 201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