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2(계2:12~3:6)

호걸영웅 2014. 6. 2. 21:43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2(2:12~3:6)

 

. 버가모교회(2: 12 17)

 

 버가모는 터키 서북부 지역의 무시아의 수도였는데,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곳은 유럽과 터키인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큰 도로가 있어 교통과 무역에 요지였습니다. 그리스 시대에는 제우스 신을 섬기던 숭배의 요지였고,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 있었으니, 200,000권의 양피지 두루마리가  소장돼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는 통치 당시 버가모를 소아시아의 수도로 정하여 황제숭배의 근거지로 만들었으며 , 뿐만 아니라 치유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아스클레피우스 신의 신전이 있어서 의학공부를 하러 숱한 의학도들이 모였던 도시입니다. 성경은 그곳을 가리켜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했으니, 지금도 영국군의관들은 아스클레피우스의 상징인 뱀을 상징으로 하는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이유는, 의학의 신으로 불리우는 아스클레피오스는 특이한 지팡이를 들고 다녔는데, 아래의 그림처럼 뱀이 감겨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사연인 즉 슨,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사람을 살펴보고 있는데 뱀이 한 마리 나타나고,

지팡이로 뱀을 내리쳐 죽였더니, 잠시 후 같은 뱀이 한 마리 더 기어 나왔는데, 그 뱀이 풀 이파리를 물고 있었고, 죽은 뱀의 주둥이에 풀 이파리를 놓았더니 죽은 뱀이 되살아 났답니다.

놀란 아스클레피오스가 그 풀 이파리를 구해다가 죽은 사람의 입에 넣었더니, 그 죽은 이도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지팡이와 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국제 보건기구인 WHO나 미국의사협회, 영국의사협회, 캐나다의사협회는 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표징으로 삼습니다.

 버가모의 현재 이름은 베르가모라 합니다.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헬라어로 “버가모”란 말은 첫째로 “결혼으로 연합되었다”라 는 뜻을 가짐으로써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가 어떠했음을 지적해주고 있으며, 둘째로 “높은 탑”이라 뜻으로써 세상 속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의 위치를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 그리스도의 날선 검은 두 가지 기능을 발휘한다. 하나는 교회와 세상이 함께 어울려 연합된 것을 잘라서 갈라놓는 일을 하며, 또 다른 하나는 세상과 짝을 맺은 교회를 심판하는 일을 합니다.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외적으로 판단해볼 때 버가모교회는 가장 번영했고, 또 위치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리고 세인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만한 교회였지만,실제로 그 교회 는 부패한 교회요 패배한 교회였습니다. 지상 교회가 마귀와 전투해야 될 임무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가모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안주해버린 것입니다.  사단이 그 교회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이 얼마나 슬픈 사실인가요!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일곱 서신들 가운데 안디바의 이름 외에 다른 성도의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확증해주는 것이죠.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안디바가 죽임을 당했단 말인가요? 주의 이름을 굳게 잡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한 후에도 버가모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들과 혼합하도록 가르쳤던 구약시대의 한 욕심 많은 선지자였습니다. 오늘날도 돈을 위하여 진리를 매도하는 자가 얼마나 많으며, 또 세상과 타협하라 권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발람이 발락에 의해서 고용 되었듯이, 정치나 이익에 휘둘린 많은 성직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 이 엄마든지 있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첫째로 다른 종교와 혼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우상제물을 먹게 하는 일과, 둘째로 세상과 짝을 짓는 것으로 볼 수 있는 행음을 저지르는 결과를 불렀습니다.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리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당 은 (Nicolaitans)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보여진 이단( 2:6,15)집단인데,
그들은 발람의 교훈에 따라,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규정된 우상에게 드린 것을 먹지 말 것과 동성연애나 근친상간과 같은 음행을 피해야 할 명령( 15:20,29)에 거스리고, 사도들이 규정했던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결국 이단의 그릇된 길에 빠집니다.

니골라당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르고 주장하거나 육체나 물질은 악한 것이고 영적인 세계는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는 육신은 원래 악한 것이므로 악을 행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영적으로만 거룩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클레멘스 (Clemens Alexandrinus Titus Flavins 150-211 )는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니골라 집사는 실제로는 엄격한 금욕주의자였는데, 그의 제자들이 후에 그 스승의 사상을 그릇되게 적용해 육체적 자유를 방종하게 주장했습니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2절에 나오는 검은 세상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잘라버리시는 주님의 심판의 검을 말합니다. 알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며 또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멸망시키는 검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여기에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두 가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첫째로 감춰진 만나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춰진 만나는 그리스도의 축복입니다(6:49~51). 가시적인 만나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이 나누어 먹었지만, 감춰진 만나는 영적 가나안에 들어갈 자들을 위하여 보존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아직 공개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숨겨진 부분은 오직 이기는 자들만이 참여할 특권을 가집니다.

 

둘째로 흰 돌을 주신다고 했다. 그 당시 흰 돌은 사교계에서 사용한 테세라(tesserae)를 의미한다. 그 돌을 받은 사람은 연회장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하나님이 주시는 흰 돌에는 받은 자 만이 알 수 있는 이름이나 기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의미의 돌임을 알아야 합니다.

 

 . 두아디라교회(2:18~29)

 

 두아디라 교회는 7개 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가장 깁니다.

 

이곳은 모직과 염색, 염료 산업의 발달지였는데, 거기엔 상인조합인 유럽의 길드와 같은 조직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만났던 자주장사였던 루디아가 이곳 출신이라고 합니다. (16:14). 여기서 우상숭배를 한 후,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 식사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18) 두아디라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주님은 여기에서 모든 것을 살피며 분별하실 수 있는 불꽃 같은 눈의 소유자로,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의 발은 심판을 내릴 수 있는 빛난 주석 같은 발이 소유자로 말씀하십니다.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우리는 그렇게 부패한 교회가 이토록 많은 선한 일을 했다고 할 때, 우리는 아주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선한 일들은 진실한 소수에 의해서 시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가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뛰어난 소수가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몇몇 충성된 자를 두셨습니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은 누구인가! 이세벨은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사악한 인물로서 열왕기상에 그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시돈 왕의 딸인 이세벨을 자기 아내로 맞아들였는데(왕상16:31) 그 여자는 백성을 꾀어 바알이라는 다른 신을 섬기고 또 경배하도록 열심을 다했습니다.

요한 당시에 두아디라교회에 야기된 문제는 단순하게 우상을 경배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이 지역의 신전 사제들과 여사제들은 제사 후, 술을 즐기며 혼음을 행함으로써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풍년을 부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꾀어 우상제물을 먹게 하는 일 등의 죄도 함께 저지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가 과거와 좀 다른 형태의 음행, 곧 정치와 결탁하고 돈과 결탁하고 쾌락과 결탁하면 교회는 음행하였던 이세벨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음행의 결과는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중세시대에도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누구보다 많은 죄를 저지른 것과 하나님의 심판이 개혁교회들을 통해 임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아디라교회의 실패는 바로, 이러한 이단적 악행이 마침내 자신들을 지배하도록 방관했다는 사실입니다.

 

(21,22)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느 시대이든 어느 곳에서든지 음행하는 교회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하시는 준엄한 말씀입니다.  

 

(24, 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심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두아디라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관심을 돌려보십시다. 구약에서의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엘리야는 무척이나 당황했으며, 또 두려워하여 죽도록 달려 도망친 사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만나셨을 때에, 그는 자기만 홀로 남아 있으며 더군다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두려움 속에서 원망과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이스라엘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왕상19:18). 두아디라에 남아 있었던 자들도 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악한 거짓 교훈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이미 가르침을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짐도 더 부과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그가 재림하실 때까지 있는 그것을 굳게 잡아 보존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26), (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이것이 이기는 자에게 주는 첫 번째의 약속입니다. 장차 올 왕국에서 오늘 이기는 그 사람이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반대하는 모든 자들은 대개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날까지 하나씩 하나씩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이것은 두 번째로 주시는 이기는 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하늘에 떠 있는 새벽 별, 바로 그리스도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들은 새벽 별 되신 예수를 직접 뵙게 될 것이요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주님께서는 모든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 듣고 안 듣고는 개 교회의 문제이다. 

 

. 사데교회(3:1~6)

 “사데”란 말을 헬라어로 회복이란 말입니다. 사데는 라오디게아와 함께 가장 책망 받은 교회요 현재도 가장 많이 파손된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데에는 팩톨루스라 불리는 강이 흐르는데 거기서 많은 사금이 채취되었다고 합니다. 고로 사데교회는 부유함이 넘쳤던 지역의 교회였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이 사데 지역에 침공한 후, 사데지역은 훼파되어 오늘날에 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일곱 영들은 성령의 완전하심을 상징하며 일곱 별은 일곱 교회를 상징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자기의 기능을 상실한 교회의 입장은 마치도 사데 교회와 같습니다. 유명무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단지 시작은 잘 했다가 끝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아쉬운 것은 없습니다 .

주님은 자신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교회들이 완전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적이 오는 것을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도적들이 들어와서 가장 좋은 것을 훔쳐갔음에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잠자고 있기 때문이거나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도 지상에서 참된 성도들을 데려가십니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리라”(24:40, 41)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만일 깨어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3:3, 24:42, 43).

 

(4) [] 3:4

.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러나 사데교회에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그들이 흰 옷을 입고 함께 이 땅을 다스린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훗날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을 다스릴 때에는 더럽혀지지 않은 흰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곧 구원의 보혈로 빨아진 거룩한 흰옷이며, 착한 행실과 의의 행위로 지어진 빛나는 옷이어야 합니다.

 

또한 의의 심판 보좌 앞에 설 때도, 우리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 희고 빛나는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사도 요한은 증거했습니다(19:8).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흰옷은 믿음으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 곧 구원과 죄 씻음과 죄 용서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 각자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께 의롭다고 시인을 받는 자마다 천국에 참여할 수 있지만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서 상급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익선 052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