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제2장 일곱 교회들 1 (요한계시록 2:1~11)

호걸영웅 2014. 6. 2. 21:50

 

2장 일곱 교회들 1 (요한계시록 2:1~11)

 

 . 2장과 3장의 요약

 

 1. 일곱 교회들

2장과 3장에 나타나는 일곱 교회들은 당시에 실재했던 교회들이다. 또 여기에 묘사된 교회의 형편도 여러 교회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당시의 상황 그대로였다. 그러면서도 이 일곱 교회들은 각자가 지니는 분명한 특징에 따라 현대의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2. 일곱 서신들

각 통의 편지에서 주님은 먼저 자신에 관한 어떤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각 교회의 형편에 알맞은 치유책을 언급하셨다.

예를 들면,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고 하시고, 예수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분의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서머나교회는 환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으로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순교자들이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버가모교회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있다.

 

두아디라교회는 부패하고도 음란한 교회였다. 그래서 주님은 살펴 볼 수 있는 불꽃같은 눈을 가지시고 또 심판하기 위하여 빛난 주석같이 단련된 발(심판)을 가지신 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사데교회는 죽은 교회였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 즉 살리는 영과 또 빛나는 별을 가지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신실하게 진리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주님은 자신을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분으로 선언할 뿐만 아니라 수고한 그들을 위하여 문을 넓게 열어주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인본주의적인 의견들로 충만한 교회였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을 모든 창조의 근본이 되신 분으로 확언하신 것이다.

 

3. 일곱 지역이 가진 명칭의 의미

에베소(Ephesus)라는 지역 명은 “욕망”, 혹은 “헐거워진”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처음 사랑을 버렸는가를 잘 반영해준다.

 

 서머나(Smyrna)는 “쓰다(bitter)는 의미를 가진 몰약(My-rrh)이란 말에서부터 왔다.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처음 사랑을 버렸는가를 잘 반영해준다. 이것은 그들이 로마의 박해시대에 교회적으로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버가모(Pergamum)는 “높은 탑”이란 뜻을 가짐으로써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교회가 얼마나 큰 세속적인 권력과 지위를 확보했던가를 말해준다.

 

두아디라(Thyatira)는 “끊임없이 드리는 희생제물”을 뜻하는 말

 

. 빌라델비아(Philadelphia)는 “형제의 사랑”이란 뜻을 가진다.

 

. 라오디게아(Laodicea)는 “사람들의 의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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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이제부터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차례대로 주의 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 에베소교회(2:1~7)

 

그러므로 주님은 “오른 손에 일곱 별(사자)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다니시는 분”으로 나타나심으로써 에베소교회와 사자로 하여금 그가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교회들에게 행사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신다.

 

(2), 이 부분은 주께서 하신 칭찬의 말씀은

. 첫째로 그들 자신에 관한 말씀이다. ① 행위 - 그들이 선한 행위를 했음에 틀림없다. ②수고 - 그들이 근면하게 일했음에 틀림없다. ③인내 - 그들이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약함을 돕고, 또 인내한 것이 틀림없다.

 

둘째로 교회의 행정에 관한 말씀이다. ①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전5:2과 비교해보라). ②그들은 사역자들이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사도들이라도 조심스럽게 시험해보았던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들은 그들에게 영적인 분별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로 세상 일에 관한 말씀이다. 그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인내함으로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 이와 같은 기술로 보아 우리는 에베소교회가 참으로 온전했던 교회라고 볼 수 있다.

 

(4)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교회에 대하여 몇 가지 책망을 하셨다. 바로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 우리는 진실로 일하는 교회가 어떻게 주님을 향한 내적 사랑 결핍을 보일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미 첫사랑을 버렸다 할지라도 외부적으로는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을 경험이 증거하고 있지 않는가? 첫사랑이야말로 가장, 그리고 최고로 완전한 사랑이다.

어떻게 첫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로 주를 사랑하는 것보다 일하는 것에 더욱 강조점을 둘 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마리아냐 마르다냐?

[] 10: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 10: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 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어떤 교회는 일주일 내내 빡빡한 프로그램과 행사들로 가득 차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결도 없다. 그것이 최고인 줄 안다. 그리고 지친다.

*너무 바빠 집에 들어 올 사이도 거의 없는 남편 같이?  빵점 아빠?

 

둘째로 주를 순종하지 않을 때 이런 결과가 온다(15:10).

 

여기에서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바가 바로  그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를 위해 수고하고, 또 영적인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살전1:2, 고전13:2-3).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주님은 그들에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첫째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원인을 반드시 추적하라는 뜻이다. 퇴행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회복이란 도무지 불가능하다. 주께서 보실 대 에베소교회가 외관상으로 완전한 것 같았지만 실상은 문제가 심각한 부분이 있었다. 문제를 수정해야 했다.

 

둘째로 “회개하라”고 했다. 회개는 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떨어지는 일이 있을 때 마나 회개할 필요가 생긴다.

! 이것을 고쳐야겠군요! 라고 시인하라는 것이다. ! 내가 이런 무심코 한 행동이 잘못되었군요! 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셋째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했다. 회개는 소극적인 것이지만 이에 반해 처음 행위를 갖는 것은 적극적인 일로 본다. (결혼 후, 아내에게 야! ! 라고 하다가 여보, 허니라고 신혼 때 처럼 고쳐 부르라!는 따위)

 *니골라 당의 경계: 니골라는 초대교회 7집사 중 1/ 한번 믿으면 어떤 행동도 범죄됨이 없다고 믿음=구원파와 유사한 교리/방종적 교리임/어떤 죄든 지옥 가진 않으나 반드시 징계가 있음)

그러므로 주님은 본문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회복의 길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먼저 처음 사랑을 찾는 방법을 제시해주심과 동시에 그렇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경고의 말씀을 주시고 있는 것이다.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 자리에서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말씀이다!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에 교회의 임무는 당연히 증거의 빛을 비추는데 있다고 보겠다.

  

마지막으로 상급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기는 그에게”라는 어구 가운데 “그에게”라는 말은 단수이다. 교회가 전체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은 여전히 승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기는 그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천국에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되는 상급을 얻게 된다. 

 

. 서머나 교회(2:8~11)

서머나라는 말은 몰약이란 말과 같은 어근을 가짐으로써 “쓴 것”, 혹은 “고통스러운 것”을 뜻하고 있다. 몰약은 아주 귀한 물건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고통도 아주 값진 고통이다.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마다 진실로 귀한 존재들이다.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말은 주님은 변치 않으시는 바로 하나님이시란 뜻이다. 이러한 이름이야말로 서머나 교회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자라: 이것은 주께서 땅 위에 계실 동안에 이미 경험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셨다. 소망이 있다. 

 

내가 아노니: 첫째로 주님은 우리의 모든 고난을 다 아신다.  

서머나교회가 겪은 고난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로 환난이었고, 둘째로 궁핍이었으며, 셋째로 훼방이었다.

 (2) 궁핍 - 주님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하심으로써 참으로 귀한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다. 사실 그러한 때에 교회는 신앙적으로 부요하면(2:5),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된다(살전1:3).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 훼방이 원래 유대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다. 훼방하는 자들이 무엇이라 훼방했는가? 그들은 구원의 말씀에 대하여 훼방했다( 13:45 ; 18:6 ; 19:9 ; 28:22,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5:11)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더욱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는 말씀이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의문을 풀기에 앞서 우리는 진정한 유대인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로마서 2:22~29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봄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자가 바로 진정한 유대인인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자칭 유대인이라 는 사람들이 모여 자칭 유대교라고 하는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유대교적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데 일부는 율법에,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은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구원도 일부는 믿음으로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행위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받으려면 헌금을 많이 해라, 집을 나와라, 교주와 동침하라,재산을 다 팔아라 바쳐라,자비 선교를 몇 년을 해라 등등 해괴한 행위 구원의 조건을 드는 사이비들이 있다)

 

[]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고난에 첨가하여 그들이 장차 받게 될 또 다른 고난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진실로 고난에 고난이 덮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난이 오기 전에 우리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첫째로 두려움은 패배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용기는 패배를 방지한다.

둘째로 주께서 이미 승리하셨으므로 우리가 비록 고난을 당하나 결과적으로 승리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에 형태=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처음에는 마귀가 반대하고 훼방만 하더니 결국에는 투옥까지 시킨다는 것이다. 투옥의 목적은, 첫째로 그들로 하여금 밖에서 증거 할 수 없도록 만들므로 주의 진리를 묶어두려는 것이고, 둘째로 그들을 서로 분리시켜 놓음으로써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며, 셋째로 투옥된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심령을 약하게 만들려는 속셈에 있다. 마귀의 간계여 참으로 악독하도다!

 

마귀가……받게 하리니: 다른 사람에 대한 언급이 없다. 특별히 여기에서는 마귀를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 우리로 하여금 서로서로 원망하지 말고 마귀를 미워하며, 또 마귀를 알고 그를 대적하라는 데 있다.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여기에 인용된 십일은 문자적으로 십일 십야를 의미하기 보다는 십년 혹은 백년 정도의 긴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단 그것은 우리가 받을 고난의 기간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십대 황제들이 자행한 열 차례에 걸친 지독한 박해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먼저 “죽도록”이란 말에서 우리는 죽임 당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투옥에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 마귀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죽이는 일도 주저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너는••••••하라”는 표현이 명령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벌써 한 명령이 내려졌음을 잘 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라”함은 죽기까지 자기 의 생명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다( 12:11). 마귀의 공격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그처럼 충성한다면 마귀도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상급: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귀중한 약속이며 복된 소망인가(112). 여기에 약속된 것은 영생뿐만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도 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둘째 사망이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2014, 15절 말씀은 죽은 자가 부활한 다음에 영원한 지옥인 불 못에 던져질 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불 못에 참여 하지 않는다( 1028).

 

[]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아멘!

참조:  요나 한 감추어진 만나  /편집:익선 05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