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옥합을 깨뜨리자(요12:1~8)

호걸영웅 2014. 6. 29. 02:11

옥합을 깨뜨리자(12:1~8)

 

[]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 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1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옥합을 깨뜨리자”입니다.

서론)

1.매우 유명한 성경주석가였던 매튜 헨리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매튜 헨리 목사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어느 날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강도를 만났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일에 대해서 그 매튜 헨리 목사는 이렇게 감사의 일기를 남겼답니다.

“첫째로 내가 이전에는 한 번도 강도를 당했던 적이 없었던 것을 감사합니다.

  둘째로 강도들이 내 지갑을 가져갔지만 내 생명을 가져가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셋째로 그들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가져갔지만 그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넷째로 강도 당한 사람이 나였고 내가 강도가 아닌 것을 감사 드립니다.”라고 말이지요.

 

할렐루야! 그는 강도를 만났어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그 믿음이 귀합니까? 보통사람 같으면 "하나님 내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데 왜 강도를 만납니까? 하나님 벼락을 때려서 그 사람 심장마비를 일으키든지 벌을 주시든지 하지 왜 내 걸 빼앗깁니까?" 라고 말했겠지요?

 

2.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은 1648년 왕당파를 물리친 후 공화국을 세웠던 존경 받는 정치가요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던 청교도였습니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식욕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식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3. 죤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했고
4. -
빌립 E.하워드 -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모든 죄인들은 감사할 이유를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고 했으며.

  
5. -
스피로스 J.히아테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귀를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했습니다.

 
6. -
토마스 아 켐피스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 라고 말했습니다.

7. 미국 워싱톤의 경우,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경우에 산소통을 설치해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경우도 꽤 많은데, 그 들이키는 산소의 가격으로  24시간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데는 산소의 값이 하루에 960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 매일 960달러 어치의 산소를 무료로 받아 마시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은 매일 960불씩을 벌고 있는 셈이다.

1년이면? 350,400불 어치를 공짜로 번 셈이라고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여러 모양으로 풍성하기 그지없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주님께서 주신 것이 너무나 많은데 감사하지 아니하고, 사소한 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을 탓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본론)

) 옥합을 깨뜨린 여인
1.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 받기 약 일주일 전 즈음에,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다니에 있는 문둥병자 시몬에 집에 가셨다고 마태 복음 26: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리고, 식사하시는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문둥병자 시몬이 예수님의 은혜로 벌써 병이 나아, 그 가족들이 예수를 접대하는 때였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에서도 보니까, 그 여인의 이름이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본문 12 3절에서는,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2. 당시 이스라엘 처녀들은 시집 갈 때, 결혼 지참금 대신, 돈이 생기는 데로 향유를 사 모아서 이 유리병 같이 생긴 옥합에 조금씩 담아서 그것이 꽉 차면 끝을 밀봉을 하여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여 살아가다가 집안에 큰 어려움이 있으면 그것을 내다 팔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또 가정에 급히 필요한 일에도 썼다고 합니다.

특히 옥합 속에 든 나드 향유는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감송향이란 식물의 뿌리에서 짜낸 고유한 향유인데, 그 향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석고함에 밀봉한 것이라 합니다. 그 나드 향의 값이 3백 데나리온이라고 했으니, 보통 일꾼 1년치의 품삯에 해당되고, 지금의 액수로 일당을  5만 원으로 계산해본다 해도 최소한  만 오천 불(1,500만원) 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옥합을 예수님께 와서 깼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주님께 드렸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마리아의 가정은 그렇게 풍요롭고 넉넉한 가정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오라버니 나사로와 언니 마르다와 이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가정이었고, 또 그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주신 큰 은혜를 입은 집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너무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3. 그런데 이 마리아는 영적인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기도하는 가운데 이 예수님이 이번에 오시는 것이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주님을 뵈옵는데, 무슨 선물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결국 본인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가장 귀한 것, 나드 향유가 가득 든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을 줄 믿습니다.  또 예수님을 위해 드리면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축복을 받을 때, 그것을 움켜쥐고 내 것인 줄 알고 착각하고 그것만을 지키려고 발버둥 칠 때, 더 주어질 수 있는 축복이 거기서 멈춰버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 나올 때입니다. 내가 예배에 대한 열심이 사라지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내가 가진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문제가 생겨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4. 본문에서 이제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손님이 오면 발 씻을 물을 내주는 것은 유목민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관습입니다. 하지만 발을 씻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자기 발을 씻습니다. 손님의 발을 씻겨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노예가 아니고서는 남의 발을 씻겨주는 법은 없습니다.

    특별히 기름이 제공되기도 합니다. 샌들을 신어 거칠어진 발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반 화장용 기름을 사용하지, 귀한 향유를 발에 붓지는 않습니다. 향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한 마지막 선물로 시신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위해서 향유는 옥합에 간직되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한 행동은 당시에도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특히 여자의 머리털은 자신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노예도 아닌 마리아가 머리를 풀어 예수의 발을 닦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지극히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비난

1.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이 그녀의 행위를 지나치다고 비난했습니다. 

[]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열심히 예수님의 일을 할 때, 비난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한테 비난 받는 것은 우리가 견디겠는데, 나보다 먼저 믿은 사람들 혹은 나보다 더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이 나를 비난하면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 나서서 설치고 다니냐? 그래가지고 목사님한테 잘 보일라고 그러냐? 등등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을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을 섬기다가 비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보기엔 어떻하든지 예수님이 과연 어떻게 보실까 만 생각하면 됩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예수의 발을 닦았던 것입니다. 묵묵히 섬길 그때 예수께서 그 행위를 귀히 보시고 그의 삶 속에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아멘?

) 예수님의 창찬

1. 셋째로 예수님의 칭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26 10절에,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 11, 12절에,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얼마나 이 마리아를 칭찬하셨는지. 마태복음 26 1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은 후인, 2000년이 지난 오늘도, 강대상에서 제가 이 마리아의 귀한 행위를 칭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일대학의  라토렛(K. S. Latourette) 교수는 그의 책 기독교 역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은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가도 아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이름 없이 주의 제단에 사랑을 바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바로 그들이 교회의 주인들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쉼 없이 사랑과 감사와 희생으로 예수를 섬기는 바로 여러분들이 이 교회의 주인인 것입니다.

) 우리가 깨뜨릴 옥합은 무엇인가?
1.
마지막 네 번째로 우리가 주님 앞에 깨뜨려야 될 옥합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옥합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가족입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자녀들입니까? 시간입니까? 재능입니까?
정치하는 분들은 그 권력과 명예가 그들의 옥합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 네 번 떨어져도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전공. 그 일이 옥합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자기의 옥합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의술이 옥합입니다.
 
그런데 옥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그 옥합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니까,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까. 그것이 나의 전공분야든지, 내가 가진 물질이든지, 내 가족이든지, 근본적인 내용은 내 자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내 자신의 것을 때때로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나의 귀한 것은 주님 앞에 드리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주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업의 복을 주셨더니 물질의 복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 음악적인 재능을 주었더니 그 재능을 가지고 세상 무대로 나가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결국 옥합을 깨뜨리지 못하고 그는, 절망의 길로 걸어가고 실패를 맛보게 되고, 좌절할 수밖에 없게 되는 그러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옥합은 깨어져야 합니다.

2. 그 옥합 안에 든 향유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깨어지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밀봉된 옥합은 깨뜨려지고 부어질 때, 비로소 향유가 쏟아져 나와 그 향기가 온 집안에 진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온갖 땀 냄새, 퀴퀴한 여러 가지 냄새, 병자들이 몰려들면서 풍기는 역겹고 고약한 상처의 냄새 등이 온 집안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옥합을 깨뜨리는 순간, 그 나드 향유가 온 집안에 향기를 진동하여 모든 퀴퀴한 냄새는 다 사라지고 향기로운 냄새만이 온 집안을 가득 차게 됬습니다. 

3. 그렇습니다. 우리의 고집이 깨어지고, 교만이 깨어지고, 불순종이 깨어지고, 자기 욕심의 질그릇이 깨어지고, 내가 주님 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헌신된 모습으로 바꿔질 때!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서 우리를 덮고 있는 모든 흑암의 세력들을 다 제하여 버릴 것이요, 모든 인간적인 악취들이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과 교만과 미움과 분노의 냄새들이 다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치료의 향기가 내 삶과 내 주위에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생각과 내 주장, 내 계획, 내 소유가 세상에서 제일인줄 알고 움켜쥐고 살고 있진 않았습니까?  남이 내 자존심 건드리기만 하면 분노하며 다투고 싸우느라 피곤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예수가 되고 하나님이 되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용서하기보다는 용서받기만을 바라고 있진 않습니까? 여러분의 옥합이 그 무엇이든 예수께 드리길 힘쓰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것보다는 여러분 자신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깨어져야 예수님께서 향기를 나타내주실 수 있습니다.  깨어지면 상처받을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만이 은혜를 나타내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서 변화 받아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해지는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깨어지고 낮아져서 우리 주위에 예수님의 향기를 온통 진동하게 만드는 주의 귀한 일군들과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고: 이영훈 & little Moses,오직하루/편집: 익선 0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