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나아만의 교훈(열왕기하 5:1-12)

호걸영웅 2014. 6. 29. 02:12

나아만의 교훈(열왕기하 5:1-12)

 

[왕하]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왕하] 5: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왕하] 5: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왕하] 5: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왕하] 5:5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왕하] 5: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왕하] 5: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왕하]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왕하] 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왕하] 5: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왕하]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왕하]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서론) 1. 우리는 때로 너무 쉬워서, 너무 간단해서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옛날 청나라 말기 서 태후가 깊은 병에 들었습니다. 온갖 약을 써도 듣질 아니합니다. 그러자 한 어의가 무우를 주로 드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그 병이 나았습니다. 서태후는 기름진 음식을 너무 먹어 성인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흔해빠진 무우가 명약이었던 것입니다.

 

본론)

)위대한 장군, 정복자 나아만

나아만은 우선 인간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에게는 충신이었습니다. 아람 왕 앞에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아람 나라를 구원한 큰 용사였습니다. 자기 나라를 구원하고 여러 나라를 점복해낸 참으로 훌륭한 군인이요 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매우 훌륭한 인격자였습니다. 그리고 종들이 ‘내 아버지여!’라고 부를 정도로 종들을 가족처럼 대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13).

이처럼 나아만은 어느 모로나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에게는 충신이요, 백성들에게는 나라를 구한 장군이요, 가정적으로는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이요, 종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이 이처럼 크고 존귀함을 받게 된 것이 나아만 자신이 혼자서만 잘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고 합니다.  

당시 나아만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아람의 신 림몬을 섬겼습니다. 아람의 신 림몬은 폭풍의 신입니다. 바벨론 말로 폭풍의 신 람만의 히브리 이름이 림몬이요, 아람사람들은 하닷 이라 불렀습니다. 

대대로 림몬 신을 섬겨온 나아만에게, 여호와께서 전쟁에서 아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는 말씀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늘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믿어왔지만, 사실 산타는, 아이들의 부모님이란……사실 말이지요.

 

나아만도 림몬이 자기에게 복을 준 줄 알았지만, 사실 여호와께서 그의 의인됨을 아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수호자로 삼기 원하셔서, 그를 구원하시고 승전케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고 아람이 승리하였을 때도, 사실 하나님은 배역하고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하심이었다는 것이 곧 나아만에게 있어서의 두 번째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2.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다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택함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여러분께서 발견하셨듯이, 나아만은 자기 주관이 매우 강하였습니다. 나아만은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하여 실패한 일이 거의 없었기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이 제일이요 자기가 제일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 서도 자신의 전술로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그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아람의 온갖 약과 의술을 다 사용해 보았지만 효험이 없습니다. 문둥병으로 인하여 점점 지쳐갈 즈음, 이스라엘에서 사로 잡아온 하찮은 어린 여종의 말을 듣습니다.

 

자기 주관이 그리도 강한 나아만이 하찮은 어린 여종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병이 깊어가도 나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이 되고 맙니다. 나아만이 나병환자가 된 것 역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 법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람, 흠 잡을 데 없고 말 한마디도 실수 없는 사람에게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말을 하면 거의 그런 말을 듣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도 어렵지 않고, 뭐든지 하면 자기 생각대로 되고, 인격적으로도 존경 받는 사람은 구원시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결국 나아만도 나병으로 인하여 어린 여종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람 왕에게 왕명을 얻어서 엘리사를 찾아 갔습니다.

 

3. 온갖 긴 여행의 수고 끝에, 엘리사의 집 문에 들어서려니까, 선지자 엘리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종놈인 사환 게하시가 나와서 ‘엘리사 선생님이 당신에게 요단 강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합디다’라고 말하고는 쏙 들어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장군 나아만은 분노하게 됩니다. 나아만이 분노한 것은 아직도 나아만은 자기 생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아만이 자기가 점령한 별 볼일 없는 속국의 별 힘도 없는 엘리사에게 주려고 가져 온 거액이 왕의 예물과 자기의 엄청난 유명세와 병력, 군력 따위 가 다 무시 당했다 여겨져 더 화가 낫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을 받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집 밖을 내다보지 도 아니하고, 옆 동네의 지나가는 개를 대하듯 하였다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엘리사는 경제적 사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예물만 받았으면 엘리사의 어려운 사정이 다 풀리고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당시 여러 생도들을 거느리고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6:에서 보면, 그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 하는 이곳이 좁나이다’라고 하며,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 더 크게 짓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학교에는 나무를 벨 도끼 한 자루 조차 변변하게 없어, 이웃집에 빌려야 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엘리사에게는 돈이 물론 필요했습니다.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은 엘리사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 봐 그리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도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귀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 은혜를 5,000불씩 주고 살 수 있다면 그 구원의 가치는 5,000불 밖에는 아니 될 줄 믿습니다. 십자가 은혜는 거저라고 하지만 그 가치는 실제로 매길 수 없을 만큼 크고 크고 또 크고 큰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나아만의 인간적인 생각은 ‘엘리사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가 가져 온 예물과 자기의 권세, 정복국가의 대장군으로서의 위력과 명성에 기죽은 엘리사가 자기 생각 이상으로 굽실대며 뭔가를 대로 해 주리라 상상하였습니다. 그러했기에 분노가 더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장 닭 목을 비틀 듯 비틀어 버려도 시원찮을 위인이 엘리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또 나아만에게는 백번 천번 이라도 그러고도 남을 권력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 역시 우리 생각을 잘 버리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생각을 버리고 들어야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다가 자기 생각에 맞으면 아멘을 하고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에이 이론적으로 그렇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주는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내가 할 일이 밀리면 예배를 빠지고 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보다 취미 생활이 더 먼저인 분들도 있습니다. 헌금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라면 학원이 예배보다 중요하니 예배를 빠지고 학원을 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나아만의 생각처럼 너무나 내 생각이 하나님 보다, 하나님 말씀보다 더 앞서 갈 때가 많지는 않습니까?

 

물론 나아만의 생각도 전혀 엉뚱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그래도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부위에 흔들며 고쳐 주는 성의를 보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코빼기도 보여주지 아니하고, 종 게하시를 시켜 요단 강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라고 말해 주었을 뿐입니다. 엘리사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아만의 교만과 자기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을 전해 들은 나아만이 열 불이 납니다. 그리고 그는‘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 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더 빨리 더 완벽하게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고 분노합니다. 이 말 역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실 요단 강은 아람에 있는 강들에 비하면 시냇물 정도에 불과한 도랑물? 이였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내 생각 때문에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울 왕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였더니 왕권을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장에서 비참하게 죽고 마는 결과가 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거짓말을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하여 한날에 부부가 나란히 시신이 되고 맙니다. 성령을 속인 죄로 그리 되고 맙니다.   사사 삼손도 그의 주어진 소명은 블레셋을 대적하는 일이었는데 오히려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두 눈이 뽑히고 노예생활을 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습니다. 

 

엘리사에게 푸대접을 받은 나아만은 아직도 자기 생각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아만의 충성된 종들은 분노하여 돌아가자는 나아만에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그 선지자가 더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13). 사실 병이 나으려면 예물을 열 갑절로 더 가져오고, 요단 강에 천 번을 들어갔다, 오고 자식 셋을 종으로 바쳐라! 라고 해도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역시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초이스?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결국 요단 강물에 몸을 씻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요단 강물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한 것은 요단 강물 자체가 나병을 고치는 효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나아만의 내 생각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뼈저리게 체험하여 알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말씀에 순종했을 때, 놀랍게도 고침을 받게 된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피부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 어찌 예수만 믿어서 구원받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많은 재물을 드리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철저하게 금식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입니다. 2:8,9절에서도

[]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결론) 이제 우리는 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 주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만은 자기 생각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요단 강물에 몸을 일곱 번 담그므로 나병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아만은 하나님을 믿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내 생각’은 물론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장애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키 어려운 부분이 있고 이해가 잘 되지 아니하고 내 생각과 거리가 있어 보여도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진정으로 놀라운 은혜와 복이 그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성령께서 지적해 주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항복하시길 바랍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참조:허창수/편집:익선 0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