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오륙 번을 쳐야 했거늘 (왕하 13:14-19)

호걸영웅 2014. 6. 29. 02:13

오륙 번을 쳐야 했거늘 (왕하 13:14-19)

[왕하]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왕하] 13:15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왕하] 13: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왕하] 13:17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왕하] 13:18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왕하] 13: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가 죽을 때가 매우 가까웠을 때의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기원전 850~800년 즈음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8대 왕 요아스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평소에 신실하지 못했던 요아스 답지 않게 달려와서, 병든 엘리사의 머리 위에 엎드려져서 그 위에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며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요아스'라고 하는 왕은 본문 앞에 10절에서 11절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자라" 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8대 왕 요아스의 먼 할아버지였던, 북 이스라엘 왕국의 태조
여로보암 왕의 죄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크게 건축할 때에, 백성들이 많은 헌금도 하고 또 노력봉사도 많이 해야 됐기 때문에 꽤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성전 공사에 힘들어 했고 불평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제 새 왕이 등극하였으니 좀 편하게 좀 지냅시다! 좀 옛날보다는 수월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면서 부탁을 했지만... 아버지 솔로몬 때와 같이 아들 르호보암 왕도 여전히 계속해서 노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라는 신하가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다 이끌고 나가서 예루살렘 바로 윗쪽, 곧 북쪽에 있는 사마리아 지역에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북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졌습니다.

북쪽이 여로보암 왕이고, 남쪽이 르호보암 왕입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의 민족, 단일 민족이 하나의 성전에서 한 하나님을 섬기던 민족이었는데... 이제 나라를 갈라서 현재 이스라엘 중서부인 사마리아로 가서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 겁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이름이 비슷하죠? 여러 명을 데리고 간 사람이 여러?보암이겠죠?

그런데 여로보암을 따라 남쪽으로 간 그 사람들이 그래도 기본적인 신앙이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기 때만 되면, 이 사람들이 남 유다 땅의 예루살렘으로 경배하러 내려 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그러면서 올라가고, 또 안식일만 되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엎드려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백성들의 중심이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사마리아로 와 있지만 이 사람들이 결국은 예루살렘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나에게 반역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계시냐? 여기도 계시지... 우리도 성전을 지으면 되지!"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미워하셨습니다.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괘씸하게 여기셨습니다.  본문의 요아스는 그 여로보암의 한참 아래의 손자였는데, 그 역시 몇 대 위의 할아버지 여로보암의 행위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병석에 누워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문병을 하면서 죽어가는 엘리사를 보고서 통곡을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어떤 인물입니까?...
엘리사는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아람 민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할 때면 그의 능력의 영감으로 어느 지역에서 아람 군대가 공격해 올 것인지를 미리 다 알아 맞춰서... 이스라엘을 항상 아람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준... 나라의 큰 공신이요 은인이었습니다.
(아람은 당시 수리아, 오늘날의 시리아,나아만 장군이 유명)
이러한 엘리사 선지자가 이제 늙어서 죽게 되었으니 나라의 국방을 책임져야 할 요아스 왕으로서는 여간 안타까운게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요아스 왕은 적군 아람 나라의 공격에 대해서 별 대책이 없었습니다. 아람 나라는 너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서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아스의 통곡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마지막 조언을 합니다.

본문 15-16절 말씀을 보니, 왕에게 "활과 살을 취하소서,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안찰하고" 라고 합니다.
요아스 왕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대로 활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계속 말을 합니다. "왕이여! 동편 창을 여십시오. 그리고 화살을 쏘소서. 이 화살은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람나라가 동쪽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왕은 동쪽을 향하여 활을 쏘았습니다. 그러자 계속해서 엘리사는 말합니다.
왕께서는 아람사람을 진멸하도록 치실 것입니다. 이제 나머지 화살들을 손에 잡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땅을 치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그런데 요아스 왕은 세 번 치고는 그쳤습니다. "톡 톡 톡..." 세 번 치더니 그칩니다.
그랬더니 엘리사 선지자가 그만 분노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왕이여, 적어도 한 오륙 번 정도는 쳐야지... 세 번이 뭡니까?... 오륙 번을 계속 쳤더라면 왕은 아람나라를 완전히 진멸하게 되었을 텐데... 왜 세 번만 쳤나이까? 그러므로 왕은 이제 아람 군대를 세 번만 치게 될 것입니다. 세 번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완전히 진멸시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엘리사 선지자가 요아스 왕에게 심한 책망을 하고야 맙니다.

 그 화살은 분명 여호와의 구원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친히 자기 능력의 손으로 왕에게 안찰하며 기도까지 해 주었습니다. 이제 요아스 왕은 그 화살로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아스 왕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엘리사 선지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치고 쳐야 되는데... 적어도 오륙 번은 쳐야 되는데 요아스 왕은 그저 형식적으로 소극적으로 세 번만 ", , !" 치고 그만 두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요아스 왕의 큰 잘못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대체 요아스 왕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입니까? 요아스는 믿음도 없고 열정도 없고 왕으로서의 기개도, 패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믿음의 지도자를 만나야만 그 나라가 강성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엘리사가 안타깝고 분통이 터집니다.
아람이 다 진멸되도록 치라고 방금 전에 당부했는데도 요아스는 세 번만 치고는 곧 그만 두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그것은 오늘의 성도들이 요아스의 모습을 본받지 말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에 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덥지도 차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처럼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요아스왕에게 요구하였던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왜 열심히 없었는가? 왜 간절함이 없었는가? 왜 열망이 없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극적인 착함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 내서 일하는 것, 혼신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선과 악을 결정하는 기준까지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13:25절 말씀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결국 점령되어 있는 오륙개 성읍을 아람 왕 벤하닷의 손으로부터 다 구원시킬 수도 있었는데, 세 번만 이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도... 한 두세 번 정도까지만 해 보다가 포기하고 만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조금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사모하고 열심을 내야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28:18-20).
조금 더 열심히 기도하고, 조금 더 열심히 전도하고, 조금 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해서... 잃어 버린 것을 다 회복하고... 원수 마귀를 완전히 진멸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듣고... 하나님이 더 많은 일을 맡겨주시는...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던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를 위대한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만들었습니다.


1761
년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케리는 가난 때문에 14세의 어린 나이로 구두수선 견습생이 되었고 친구들과 신앙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게 되고 침례교회의 목사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라는 명제에 따라, 그는 영국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인도를 향해 선교의 길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32세 되던 1793 11월에 인도에 도착한 그는 인도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였는데, 날마다 성경을 인도의 여러 방언으로 번역하며 복음을 전파하며 학교와 교회를 세웁니다. 그러던 중 아내와 세 자녀를 잃었으나 무려 40여 년을 인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됩니다.

44여 개의 언어로 신약성경과 쪽 복음을 번역 출판했습니다. 25년이 지난 1818년 무렵에는 그가 침례를 준 약 600명과 수천 명의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1819년에는 교회 지도자와 복음 전파자들의 양성을 위해 세람포 대학을 세우는 큰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73세가 된 1834 69 "이 벌레 같은 쓸데없는 이 몸은 주님의 품에 안깁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결론)

결국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크심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나를 높이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현실만을 바라보며 움츠리며 두려워하며 안으로만 쪼그라드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하나님 자녀다운 삶이 아닙니다. 더 크고 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이제 새로운 꿈을 꾸며 열정을 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시지는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아니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더 큰일, 더 위대한 일을 시도해 보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참조:기독 정보넷/편집:익선 062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