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의 두 번째 반론 (욥기 34장) 403/411
1. |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
2. |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
3. |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
4. |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
5. |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
6. |
7. |
8. |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
9. |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
10. |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
11. |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
12. |
13. |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
14. |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
15. |
16. |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
17. |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
18. |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
19. |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
20. |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
21. |
22. |
23. |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
24. |
25. |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
26. |
27. |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
28. |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
29. |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
30. |
31. |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32. |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
33. |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
34. |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
35. |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
36. |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
37. |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
서론) 엘리후의 두 번째 연설입니다. 이제 두 번째 연설에서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말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전지하심, 사랑, 그리고 교만한 자를 고통에 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욥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원망이 하나님 앞에 매우 죄악 된 것임을 깨닫게 하려 했습니다.
가) 욥의 악행을 공박하는 엘리후
성 경: [욥34:2] 지혜있는 자들아...지식있는 자들아 – 욥의 3친구를 포함하여 세상의 지혜자들을 두루 통칭한 말로 이해됨이 무난하다.
성 경: [욥34:6]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 '내 상처'(*, 히치)는 문자적으로 '나의 화살'인데, 이는 욥이 한탄해 마지 않았던 바(6:4), '자신에게 꽂힌 화살' 즉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로서, 하나님이 욥에게 허용하신 재난과 고통을 가리키는 것이라 말했었습니다.
성 경: [욥34:7] 훼방하기를 물 마시듯 하며 - 여기서 욥이 훼방했다는 대상이란 하나님의 공의이며(Lange). 이 표현은 아주 시각적인 것으로, 갈증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물을 발견하고서는 거침없이 벌컥 벌컥 들이키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욥34:9]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함이 무익하다 -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구나'(Lange)이다. 그러나 이는 엘리후가 과장한 표현으로 봅니다. 엘리후는, 욥이 이런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으나 죄인의 무리들과 떼지어 다니며 악행하는 것은 곧 이런 말을 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 성 경: 천지 만물을 다시리는 하나님
1.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의 무한함 [욥34:10] 욥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마친 엘리후는,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이 얼마나 의로우시고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증명함으로써, 욥의 행위를 반박하고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성 경: [욥34:11]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즉,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일생을 통해 걸어온 길에 따라 정확히 보응하신다는 것이다.
[욥34:13] 12절에 공의를 굽히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언급한 후, 이어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들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 스스로 행하셨다)
누가...맡겼느냐 - 다른 말로 하면 '누가 그분께 이 땅을 돌보라는 임무를 부여했느냐?'로서,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드러내는 말이다.
다 함께 죽으며 - 사람은 그 근원인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15절), 모든 생명체 또한 멸절하게 된다. 존재 자체가 멸절되는 것을 뜻하는 완전한 소멸을 가리킨다.
성 경: [욥34:16]
2. 신분을 초월해 적용되는 하나님의 의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공의를 귀중히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에 세상의 주관자가 되신다'라는 뜻입니다.
성 경: [욥34:18~] 왕족과 부자들이 불의한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편애를 받을만한 자들일지 모르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결코 그들을 편애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죠?
성 경: [욥34:20]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손이 아닌 초자연적인 힘으로' 세력있는 자를 제하신다는 표현
3. 공의를 온 인류에게 적용시키는 이유 성 경: [욥34:21] 앞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는 불공평이 없음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론하였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함을 언급함으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 문자적으로는 '그가 자신의 눈을 사람의 길 위에 두었다'이다. 여기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을 공의로운 통치의 일환이라는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다(Habel). 요즘 cctv 처럼? 바코드를 읽듯이? 하신다.
성 경: [욥34:22~25절을 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범죄자들에게는 몸을 숨길 만한 어떤 장소가 있을 수 없다 하십니다.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 사실 여부에 대해 굳이 악인들을 조사할 것 없이 바로 심판하실 정도로 모든 사람의 행위를 아신다는 의미
성 경: [욥34:25] 밤 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 - 하나님의 심판의 급작성,예측 불능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한번 심판을 작정하시면 마치 한밤중에 도적이 뚫고 들어오듯이 신속하고도 창졸간에 임하신다.
4. 정죄 받아야 할 자가 된 욥
성 경: [욥34:31,32]
내가...아니하겠나이다 - 본문을 욥의 참된 참회의 권유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Delitzsch). 이렇게 보면 이 구절은 욥에 대한 간접적인 권유로서, 욥이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고 그에 합당한 형벌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사하심을 받으라는 엘리후의 은근한 암시가 담겨 있다(Rawlinson).
성 경: [욥34:32] 내게 가르치소서 - 죄에 대한 고백 뒤에는 간절한 청원이 이어진다. 즉, '제가 행한 범죄 중에 제가 깨닫고 있는 것 이외의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이다. 엘리후가 욥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은, 혹시 욥 자신도 모르고 있는 죄악과 범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욥34:35~37]
35절, 무식하게(*, 로 베다아트) - 욥은 사람들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상식)도 없다는 뜻입니다.
성 경: [욥34:36] 끝까지 시험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오, 욥이 계속 시험을 받았으면'이라고 하는 일종의 저주적 기원문입니다(Lange).
성 경: [욥34:37] '손뼉을 치며'(*, 이스포크)는 이 단어는 본절에서는 '조롱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엘리후는 자기의 의를 고집하는 욥의 행동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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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1. 31,32장에서 엘리후의 첫 등장은 제법 멋있기도 하고 기대를 걸만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욥의 입장이 매우 왜소해졌고 또 교만한 행동을 하였으며 무지한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부당한 도전을 했다는 정죄에 이르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 34장에서의 엘리후의 모습은 상담자의 모습으로 볼 때 낙제점? 입니다.
엘리후는 고난 받는 욥을 위로하기보다는 논리대로 전개하는 일에 골몰하다 보니 욥을 저주 할 만큼 흥분하여 상담자로서의 냉정을 잃고 말았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주권 등을 물론 잘 알고 있지만, 상처 입은 영혼에게 다가갈 때는 연민과 사랑, 그리고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3. 오늘은 요13: 34,35을 일어 드리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34. |
35. |
404
참조:오요한/편집:익선 04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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