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에 걸린 유다 백성(렘 8:1-22)
서론)
하나님의 예루살렘과 통치자인 왕조에 대한 심판은 이미 죽은 조상들 조차도 욕되게 만들어 버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가)조상들도 수치를 당하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써 유다에 침략해 들어온 자들은 패배자들을 더욱 모독하기 위해서 왕들과 귀족들, 그리고 선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 뼈들을 끄집어낼 것이라 했습니다. 조상들을 매우 중요시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은 큰 저주와 수치로 간주되었는데,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의미에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 백성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경배하던 이러한 천체의 우상들은 그들의 흩어진 뼈들을 무관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내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뼈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장사 지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고로 살아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 고 했습니다.
나)심판에 대한 또 다른 이유들 1. 돌이키지 않음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상식의 한계를 넘어선 완악성을 지적합니다. 즉, 누구든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려고 하고 떠났으면 돌아오려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유다 백성은 그릇된 길에 빠져들어서는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려고 결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죠.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과 경고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정밀하게 살폈지만 그러나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는 말을 한마디라도 내뱉는 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광경은 전장(戰場)에서 날뛰는 말같이 제멋대로 마구 치 달리듯 걷잡을 수 없는 모습들이었던 것입니다.
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한탄을 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7절입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철새들의 생태를 예화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계의 새들로 하여금 그 시기와 때를 본능적으로 알고 철을 따라 이동을 반복하도록 지으셨고 또 글들은 거기에 순종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만한 인간들은 그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지도층들의 죄악과 정죄 (8~ )
유대의 지도층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은 지혜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율법 때문이라고 공공연히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 여기서 그들이 내세우는 '여호와의 율법'이란 것은 분명히 '기록된 율법' 즉 성전에서 발견된 바 있는 언약의 책 또는 신명기와 같은 책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들은 행위와 실천보다는, 기록된 책 그 자체에 무슨 마력과 같은 힘이 있다는 미신에 젖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절에서 서기관은 특정 통치계급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역대 왕들의 사적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 및 가르치는 자였고 통치력에 직간접 적으로 많은 관여를 한 지혜 계급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죄악의 대가로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재산을 강탈 당하는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 전체가 중병을 앓으며 파국 직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사할 것이라는 헛된
확신만을 심어 주며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해대면서도 수치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1~12)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 포도나무에 수확할 열매가 전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언약의 말씀을 준행할 때 따르는 번영, 축복(신29:9; 시37:9)과는 대조적으로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는 온갖 저주가 임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씀입니다.
라)침략의 고통으로 울부짖을 유다 백성들의 모습
절망 상태에 빠질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견고한 성읍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 성읍은 단지 파멸의 순간을 조금 지체시키는 역할을 해줄 뿐, 파멸은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 '독한 물'에 해당하는 원어 '메 로쉬'(*)는 '쓴 물'로도 번역된다. 쓸개를 의미하는 '쓴 것'과 '독'은 유다 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것을 상징합니다.
마)하나님의 심판의 혹독함
13절에 이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납니다. 이 독사에 대한 예화는 민21:6-9의 내용을 상기시켜 주는데,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한 죄악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불뱀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역사입니다. 그 당시에는 불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있었지만, 지금 이 유다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전혀 없는 혹독함이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고로 그들은 절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은
라고 한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예레미야의 탄식(19~22)
하나님은 그들을 그리 치시면서도 마음을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침략자들로 인한 고통은 한 두 해에 끝나지 아니하며 그들의 탄식은 끝이 보이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결국 70년 간의 포로 생활과 노예생활을 해야만 했음을 우린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말씀은 한치도 틀림없이 성취되었습니다.
마지막 22절은 유다 백성이 치명적인 병에 걸렸으나 치유 받지 못한 환자에 비유됩니다. 그런데 정작 치유 받지 못한 이유는 명의나 명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고 또 치유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길르앗에는 매우 치료효과가 좋은 향유가 생산되었었습니다. 길르앗은 오늘날 요르단 북서부 지역인데, 넓은 뜻으로 요르단 강 동편에 있는 지역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길르앗이란 말은 야곱과 라반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내용을 실은 〈구약성서〉 〈창세기〉 31장 21~22절에서 처음으로 나오며, 기드온과 미디안 사람들이 전쟁을 치른 곳이며 선지자 엘리야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고대에 의약으로 썼던 '길르앗의 향유'(창 37:25, 렘 8:22)는 옻나무과에 속하는 ‘피스타키아 렌티스쿠스’로 만들어낸 향유라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피스타치오’도 옻나무과 한 종류의 나무열매라고 합니다. 참고:빛고을 선교회, 다음 백과사전/편집:익선 082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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