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41장 강해(예루살렘 멸망 직후 상황)
서론) 39장은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하는 상황을 드러내 줍니다. 39:1~10을 보면 이렇습니다.
본론)
가)그다랴에게 의지하는 예레미야
그리고 40장에서는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났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임하였습니다.
성 경: [렘40:1]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풀려나 그다랴라는 유다의 총독이 통치하는 지역에 머물게 됩니다. 에레미야가 풀려난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엘-람(er-Ram)이란 곳입니다. 포로들은 여기에 집결, 수용되었다가 바벨론으로 보내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5절=여기서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 대해 언급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다랴의 조부인 사반은 요시야왕 때의 대신이었으며,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왕에게로 가져갔던 사람이죠.(왕하 22:3-13). 사반의 아들이자 그다랴의 부친이기도 한 아히감은 요시야가 파견한 특사의 일원으로서 여선지 훌다를 방문한 바 있다(왕하 22:12-14). 예레미야가 성전 설교를 하고 또 그가 위험한 상태에 있었을 때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보호하기도 하였습니다(26:24). 이제 유다의 새로운 총독이 된 자는 바로 이 아히감의 아들 그댜라엿습니다. 그는 아마 시드기야의 내각에서 상당한 행정적인 경험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B.C. 6세기 초로 연대가 추정되는 라기스 지역에서 인장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그댜라에게 속한 것' 그 집 전체에 대해서'라는 어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표현은 왕의 총리 대신에게나 사용될 수 있던 어구였다(Thompson).
성 경: [렘40:6]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댜라에게로 - 그댜라의 행정부는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정북쪽으로 약 12~3km 가량 떨어져 있는 미스바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은 오늘날의 텔 엔-나스베(Tel en Nasbeh)란 곳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수세기에 걸쳐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삿 20:1-3 ; 삼상 7:5-14 ; 10:17).
9절부터 보면 그다랴의 정치적 철학이 나와있습니다. 그는 갈대아인들에게 복종 순응하여 사는 길을 택함으로써 살길을 찾았다고 하겠습니다.
성 경: [렘40:7] 당시 바벨론 군대의 소탕 작전을 피해 달아났던 유다군 패잔병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바벨론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성 경: [렘40:8]=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그들의 사람들 - 얼핏보면 그댜라는 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던 것 같았지만 이들 중에는 유다 군사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 중에는 왕가의 일원이기도 하며 또한 그다랴를 암살하게 될 '이스마엘'이란 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그다랴 총독 암살
성 경: [렘40:13,14]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은 그다랴에게 합세했던 군대 장관들 중 하나였는데, 그는 이들 군대 장관들의 대표로서, 이 새 총독에게 나아가 총독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경고해주었습니다. 즉 암몬 왕 바알리스가 왕가의 일원인 이스마엘을 부추겨서 그다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 경: [렘40:15] 요하난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임명된 유다 총독이 살해될 경우 얼마나 큰 위험이 닥칠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그다랴 주변으로 모여든 유다인은 다시 흩어져 버릴 것이고 또 남은 자마저도 멸망하고 말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살려 놓아서 국가의 장래를 그르치게 하기보다는 비밀리에 그를 살해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성 경: [렘40:16] 네가 이 일을 행치 말 것이니라 – 그러나 그다랴는 요하난이 잘못 알고 있었거나 또한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 동족을, 그것도 국가의 패망으로 인해 상처받은 동족을 추호도 의심하고 싶지 않은 연민과 영웅심에 빠져 있었던 같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화해와 단결을 솔선 수범하여 국토 재건에 매진하고자 하는 생각에 깊이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
2. |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
3. |
4. |
5. |
그 때에 사람 팔십 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
6. |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 |
7. |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 |
8. |
그 중의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
9. |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
10. |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 |
11. |
12. |
13. |
14. |
15. |
16. |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
17. |
18. |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결국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은 총독 그다랴와 군병들을 죽이고, 그를 위해 애곡하던 80명 중 70명을 또 살해합니다. 그리고 암몬으로 가다 요하난 군대를 만나 납치해가던 귀인들과 사람들을 빼앗기고 암몬으로 자기와 8인의 동료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결론)
여기서 우리는 충심으로 해주는 형제나 이웃의 조언을 귀 기울여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항상 있기 때문에 자만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늘 조심하고 근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성령의 말씀에 우리는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고 기도함에 힘써야만 사탄의 궤계에 빠지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조: 빛고을 선교회 /편집:익선 0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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