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예레미야 52장 강해 (52:1~34

호걸영웅 2016. 5. 28. 21:56

예레미야 52장 강해 (52:1~34)

  

)시드기야의 배반과 죽음(왕하 24:18-25:7)

( 52: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예레미야의 딸이더라

 

( 52: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52: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 52:4)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 52:5)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 52:6)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 52:7)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 52:8)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52: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 52: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 52: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성 경: [52:1]시드기야가...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는 조카인 여호야긴이 폐위되고 난 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 되었습니다(B.C. 597).

 

 성 경: [52:2]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이것은 시드기야 통치의 결산에 해당되는 말이죠. 아울러 이는 유다의 패망에 대한 주요 원인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성 경: [52:3]여호와께서...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 유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호와의 극심한 진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결국 시드기야도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이 유다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참조).  

 

성 경: [52:4]시드기야 구 년은 현대력으로 B.C. 588년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히브리 력 시 월은 바벨론식으로 데벱월( 2:16)이며 겨울이었고 더위를 피해 바벨론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여집니다.

  

성 경: [52:5]십 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그리고 포위 공격은 시드기야 제 11년 넷째 달(6) , 현대력으로 B.C. 586 6-7월경까지 계속되었으니 약 18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셈입니다.

 성 경: [52:6]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 오랜 기간 동안 포위당함과 아울러 기근의 상태가 업친데 덮치는 형국으로 극에 달했음을 나타냅니다.

 성 경: [52:7]왕의 동산 곁 문 길로 도망하여 - 시드기야와 그의 근신들은 삼엄한 바벨론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달아났으며, 아라바는 사해(死海) 남쪽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넓은 광야 지역입니다.

  

성 경: [52:8]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왕의 호위대가 왕을 혼자 내버려두고 흩어지게 된 상황이 언급되는데, 어쩌면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일사 불란하게 왕을 호위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갈대아인들이 왕을 목표로 해서 추적해왔기 때문으로 대부분이 정신을 못 차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 경: [52:9]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 '하맛 땅 립나'는 오론테스 강가에 있는 가데스 남쪽 고대 수리아의 한 도시였는데,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원정군의 임시 본부를 꾸리고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 립나는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군사 도로가 마주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답니다.

  

성 경: [52:10]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예레미야의 권면을 끝내 거부함으로 써, 그 목전에서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처절한 아픔을 당했습니다.

  

성 경: [52:11]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짐작컨대, 아마 그는 투옥된 그 이후, 아마 오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 여호와의 성전의 늑탈된 정황(왕하 25:8-17)

( 52: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 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예루살렘에 이르러

 

( 52: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 52: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 52: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 52: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 52: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 52: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 52: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 52: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 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1)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 52: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성 경: [52:12]'오 월'은 현재의 7-8월에 해당되며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9월 즈음 이였습니다. 한편 그의 도착 연대로 언급되고 있는 느부갓네살 십구 년은 B.C. 586년에 해당됩니다.

  

성 경: [52: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주요 건물들을 불사르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그 불길은 전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성 경: [52:14]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 중에 기드론 계곡이 탐사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파괴가 극심했던 성벽의 잔해들이 나타났습니다.

  

성 경: [52:15]본절은 느부사라단이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사실을 언급합니다.. 결국 느부사라단은 유다의 지도층뿐만 아니라 빈부 귀천을 막론한 일반 백성들까지 상당수를 잡아갔던 셈이죠. 여기서 가난한 자는 아마 기술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성 경: [52:16]빈천한 국민을 남겨 두어 아무 힘없고 무지하고 기술도 없는 빈천한?자들은 남겨져서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가 되게 했습니다.  

 

성 경: [52:17]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놋 바다 -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두 놋기둥'에는 기둥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이었고 좌편에 세워진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였습니다. 그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는데, 상세한 설명은 왕상 7:15-22을 참조하면 됩니다. '놋바다'는 제물의 피를 씻어내는 곳이고  '받침'은 아마도 제단의 불이나 화롯불을 담아두었던 그릇이었던 듯 합니다.

  

성 경: [52:18]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 - '가마'는 뜨거운 것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놋바다의 직경은 약 456cm 정도되었습니다.

  성 경: [52:19]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 갔는데 - 이 말은 본절의 잔들, 화로들, 주발들, 솥들 등이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을 가리킵니다.

성 경: [52:20]열 두 놋소 곧...놋 중수를 -  놋으로 만들어진 열 두 소들이 성전에 있었다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이 제작해 경배용으로 쓰던 것이 아니었나 추측됩니다().

 

성 경: [52:21]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라 했으니-18*0.45=8. 1m 입니다.  

성 경: [52:22]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 기둥의 장식이나 조각에 대한 상세한 내용입니다. 이런 류의 장식은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죠(28:33). 

 

성 경: [52:23]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기둥장식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입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다(왕하 25:18-21, 27-30)

( 52: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 52: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2)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 52: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 52: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 52: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 52: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 52: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 52: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 52: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 52: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 52: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성 경: [52:24]여기서 다시 느부사라단이 등장합니다. '스라야'는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손자였는데,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으로서,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을 주도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부친이었습니다( 5:2; 1:1 등 참조).

  

성 경: [52:25]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왕의 시종 - '장관'으로 번역된 '사리스'(*)는 환관을 의미하며, 이 환관이란 직책은 처음에는 왕의 내실을 관리했던 직책이나, 그 이후 보직(補職)의 범위가 확장되어갔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브라이트(Bright)는 이 사람이 군대 장관이 아니라 대민 관계를 맡았던 공직자였던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편, 이들의 숫자가 본절에서는 칠 인이라 했습니다.

  

성 경: [52:26]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 시드기야가 압송되어 갔던 립나로, 이들 선발된 무리들 역시 이송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그곳에서 본보기로 처형 당하기 위해서 붙잡혀 갔을 것입니다.

  

성 경: [52:27]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바벨론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사로 잡혀 타지로 갔다는 것.

  

성 경: [52:28]제 칠 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 이때 잡혀간 유다인 삼천 이십 삼인은 유다 전역에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숫자입니다.

  

성 경: [52:29]느부갓네살의 십 팔 년에 - 그의 즉위 19년에 해당됩니다.

  

성 경: [52:30]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 인이니 - 28절에서부터 본절까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무리가 세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B.C. 597, 두 번째는 B.C. 586, 그리고 세 번째는 B.C. 581년의 사건이다. 본 절에는 세 번째로 끌려간 무리들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편, 포로로 끌려간 전체 숫자가 4600명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15,000명에서 20,000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적은 숫자로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자들이 바로 이들 중에 있었죠.

  

성 경: [52:31]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 이 월 이 십 오일 - 에윌므로닥은 느부갓네살의 아들로서 B.C. 561-560년까지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의 원 이름은 '아멜-마르둑'으로서 '마르둑의 사람'이란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시드기야 이전에 잠시 왕위에 있었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당시 유다에서는 시드기야보다 여호야긴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오게 될 것으로도 믿고 있었습니다(28:1-4). 머리를 들게 하고(*, 나사로쉬) '석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Feinberg).

  

성 경: [52:32]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 '바벨론에 있는 왕들'이란 말은 여호야긴처럼 볼모로 잡혀온 다른 정복된 국가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에윌므로닥은 어떤 연유로 인해 선왕(先王)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이때 여호야긴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성 경: [52:33] 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왕의 면전에서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은 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또한 이러한 은택은 그의 평생 동안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에윌므로닥을 몰아내고 그 후 왕위에 올랐던 네리글리살 때에도 그런 특권을 계속 누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성 경: [52:34]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31-34)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오랫동안 살았으며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하는 사실은 회복의 때를 예언한 예레미야의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의 징후였죠.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가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는 예언의 성취에 관한 전조(前兆)이기도 했습니다(Thompson).

 

참조: 빛고을 선교회 /편집: 익선 05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