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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TV의 세 개의 무덤 보충 설명하다

호걸영웅 2017. 1. 31. 13:11

 

MBC-TV 개의 무덤 보충 설명하다

 

 

 

네이버 블로거 '비타민' 씨의 남긴 이야기 <MBC-TV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공포 10>에 보면 제 8화에 세 개의 무덤이라는 글이 있다. 이는 1997 6 27에 방영된 이야기이다. 이렇게 간략히 기록돼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그리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는 내용이다.

 

 [8. 개의 무덤]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묘자리를 파고  곳에 사람을 묻지 않으면 묘를  숫자만큼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

 

불과 몇 년 전,  속살대로 묘자리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부터 3년 전, 부천에 살던 길명옥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 간다.

 

집안일로 분주하던 그녀는 저녁 나절 조금 한가해지자 그 동안 친하게 지내던 이웃 아주머니를 만나러 간다. 

명옥 씨가 나가고 나자 산역을 갔던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며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할머니의 묘를 파는 곳마다 물이 나와

 

묘자리를  번째 파고서야 겨우 묻을  있었다는 것이었다. 

묘자리는   파면 다시 옮길  없는 것인데 세 번이나 옮겼으니 좋은 징조는 아니라며 걱정을 했다.

 

한편, 이웃집에 갔던 명옥 씨는 아주머니와 함께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차도 쪽에서 걷던 명옥씨, 순간 섬짓한 느낌과 함께 주위가 컴컴해지는  같아 무서워졌다.

 

아주머니와 자리를 바꾸려는 찰라, 뒤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즉사했고 명옥 씨는 의식을 잃었다.

 

묘자리를 파고    번째 죽음이었다. 그러나 기이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명옥씨에겐 외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계속 헛소리를 하고 누군가를 따라가려는 손짓을 했다.

 

명옥 씨의 이상한 행동에 가족들     병원인 부천 아세아 병원으로 옮겼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원에서    없기는 마찬 가지였다. 
“저기, 할머니하고 아주머니가 오잖아. 어떻게  해봐. 무섭단 말이야. 으윽…” 

자신의 목을 잡고 숨이 멎는  고통스러워하는 명옥씨. 가족 들은 발만 구를  손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정신 차린 명옥 씨는 죽은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자신을 데리고 가려고 목을 졸랐다는데, 가족들이 보니 정말 목에는 조인 자국이 있었다. 

이상한 일은  뿐만이 아니었다. 명옥 씨의 목소리가 갑자기 애기 목소리로 변하며 자신의 역할을 가족  누군가로 바꾸기도 했고, 밥도 전혀 먹지 못했다.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자 가족들은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지만 병원 측에서는 놀란 충격에 의해 그런 것이니 안정을 취하라고만 했다. 

가족들은  개의 무덤 때문에 명옥 씨가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언니의 권유로 굿을 벌였다. 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가족들이 명옥씨에게 숫자를 세어보라고 하면 , , , 사하고  세다가  “오”라는 숫자만 나오면 세지를 못했고 무의식 중에는 무덤을 그리기도 했지만

 

가끔 정신이 들 때면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달을 고통으로 시달리던 가족들은 결국 목사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점차 정신을 차려 지금 명옥 씨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명옥 씨의   없는 행동들, 정말 세 개의 무덤 탓이었을까? 라고 기록했다.

 

 

<보충 설명>

 

 

이 이야기에는 다소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 스토리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목사가 바로 나 ‘안익선 목사’다. 현재 뉴욕주 북부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지금은 개명을 했지만 당시는 ‘안호근 목사’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길명옥’ 씨는 전에 서울 행당동 성서침례교회에 나오던 자매이다. 사실 난 그 자매를 잘 못 보았다. 본 기억이 없을 만큼 자주 교회에 나온 것은 아니다. 반면 이 자매의 오빠가 나랑 다소 친분이 있었던 ‘길종두’ 형제로서 성품이 순박하고 유순한 좋은 성품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는 교회 청년부에도 꽤 자주 나온 성실한 출석교인이다. 그러다가 인천으로 이사를 갔는데 하루는 수요 저녁예배 때 동생을 데리고 왔다. 문밖에 서서 성도들을 문안하던 나에게 그 남매가 보였다. 언뜻 보니 교회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다소 저항을 하는 편이긴 했는데 그리 완강하지는 않았다. 나는 당시 제주도에 개척교회 2년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그곳에서 교회를 철수하고 행당동교회 교육목사로 잠시 있었을 때였다.

 

 

어쨌든 오빠의 강권으로 명옥이 자매가 아기방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수요예배는 진행되며 설교가 이어졌다. 아기방은 통유리로 만들어진 예배당 후미의 넓직한 방으로서 모노륨이 깔려있는 밝은 방이고 거기서 설교자의 모습과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보니 그 자매는 계속 불안해 하며 뭔가 저항하려는 내색을 하며 작은 여자 아이 목소리 같은 것을 내었다. 나는 그녀가 귀신이 들렸는지 확인해 보고자 시험 삼아 그녀가 듣도록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수 보혈에 관련된 찬송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괴로워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찬송을 부르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두어곡을 부르는데 그때 김연규 목사(현재 선교사)가 합세하였고, 지금 한국에서 시원영어 스쿨로 유명한 시원이 형제의 아빠인 이태평 목사(당시는 집사)가 합세 했다. 그리고 주윤식 집사도 합세하였다. 나는 찬송을 계속 부르자 목이 쉬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설교를 마치신 강인규 목사님도 합세하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매 안에서 두 가지 인격체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억누르고 강목사님은 왼쪽 팔을 잡고 기도하였다. 내가 머리를 누른 것은 혹 귀신이 그 자매를 통해 기도하는 자들을 물을 까봐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로 실갱이를 하는데 그 녀 속의 어떤 영혼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왜 이렇게 힘이 세?” 라고 했다. 우리는 대꾸도 아니하고 계속 기도로 “어서 빨리 명옥이에게서 떠나라! 이 명옥이는 하나님의 것이야!” 라고 소리 치며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다그치며 계속 실랑이를 하게 되었다.

 

내 생각엔 거의 기도한 지 20여분은 된 듯하다. 그 즈음인가? 귀신이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들은 명옥이를 사랑해?”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럼 명옥이를 사랑하지! 하나님은 명옥이를 더 사랑해!” 라고 외쳤다. 그러자 귀신이 말하기를 “그래? 그럼 조금 기다려봐, 나갈께”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린 더욱 힘을 내어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약 일이분 후 즈음인 듯 하다. 갑자기 명옥이가 심히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니 금새 힘이 주욱 빠지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귀신이 나가는 상황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당연한 상황으로 받아드렸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감격하게 되었다.

 

잠시 후 명옥이가 정신을 차렸다. 명옥이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이 종료되었다.

 

담임목사이신 강인규 목사님과 집사님들은 집으로 돌아가셨고 나와 청년부 김광석 전도사님이 합세하여 그날 밤을 아기방에서 그 남매와 자기로 했다. 김광석 전도사님은 매우 성실하고 성품이 유순하며 친근감있는 전도사님이시고 불광동 교회에서 조력하다가 행당동으로 온 분이었다. 나와 김전도사님이 함께 그 방에서 잔 것은 혹 나간 귀신이 다시 돌아오면 또 그 자매를 지켜내야 한다는 노파심에서였다. 난 그런 마음이였고 김전도사는 길종두형제가 소속된 청년부 전도사이니 함께 방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날이 밝아 잠시 잠잔 사이 아침이 왔다. 무사했다. 그리고 남매는 다시 인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두달이나 지났나? 교회로 전화가 왔다. 길종두 형제가 말하기를 동생이 좀 이상하고 막 불안해 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 형제에게 말하였다. “거기 집에 찬양카세트가 있지? 찬송을 크게 틀어라! 동생에게 들려 주어라!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하겠다!”길형제는 시키는 대로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사역자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나와 그곳에 있던 한두 동료 사역자들과 기도했다. 신기하게도 인천에 있던 자매가 서울에 있는 사역자들 기도와 찬송 덕분인지 다시금 정상을 되찾았다는 오빠의 전화가 왔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명옥이랑 그곳에 있는 ‘김만홍 목사’라는 나의 신학교 선배가 시무하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믿음 안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2년 즈음 후인가? 당시 평택역 뒤에서 개척교회를 하던 나에게 MBC TV에서 ‘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나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했다. 길종두 형제가 나를 찾아가 보라고 말한 모양이다. 당시 나는 ‘뭐 재미있는 없나?”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10여분 이상 인터뷰를 마치자 그들은 그 방송사 로고가 있는 벽시계 하나를 선물로 주고 고맙다며 떠나갔다. 지름이 30센티 즈음 되는 흰색 벽시계다.

 

 

그리고 얼마 후 ‘이야기 속으로’가 방영되었다. 거긴 목사 한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지만 사실 여러 집사님들과 강인규 목사님이 합석하셨다. 물론 리더적 역할 내가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였다(미우나 고우나?).

 

한밤중에 그 프로그램을 보던 박병권 목사가 강릉에서 전화가 왔다. "안목사! 안목사가 티브이에 나왔던데? 와! 웬일이야!"하며 흥분해 하셨다. 이 양반은 지금 텍사스에 와 있다.

 

나는 여기 뉴욕에 이민와서 침례교회 다니고 있을 때, 한 청년이 귀신에 잡힌 사건이 있어 아들의 전화를 받고 새벽 4시엔가 비상 출동한 적도 있지만... 교회에 와 보니 담임목사 최목사 부부가 이미 기도하며 악귀가 떠난 상태였다. (2011년 말인가 2012년 초인가?)

 

이 야기는 먼 훗날 해야겠다.

 

이런 일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끔은 각성효과를 준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있으며 승리케하시며 영생을 얻게하시는 구원과 자유와 기쁨의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아마 그 당시 1997년도에  ‘세 개의 무덤’을 보신 분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드라마를 보면서 결과만 알았다가 그 전의 모든 과정이 어떠했나를 다시금 자세히 알게 되었다. 어쨌든 우리를 선한 사역의 일꾼들로 쓰시고 승리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금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2017. 1.30. 11시경.(미국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