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상 16장 강해(북이스라엘 시므리의 반역과 오므리와 아합)

호걸영웅 2019. 3. 17. 01:59

열왕기상 16장 강해(북이스라엘 시므리의 반역과 오므리와 아합)

 

서론)

오늘 말씀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그를 이어 왕이 된 엘라에 관한 말씀(1-14)과 시므리가 엘라를 반역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건에 관한 말씀입니다(15-20). 

(북이스라엘은=반역,반역,반역!의 역사)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 본 열왕기상 15:33-34절 말씀을 보면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 사년을 치리하니라.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바아사는 반역을 하여 나답 왕을 죽이고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24년을 치리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2-4절을 보면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아사를 진토에서 들어 올려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셨으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이제 5-7절을 보면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바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하사 바아사와 그 집을 꾸짖으심은, 저가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 손의 소위로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며 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고 했습니다. 바아사는 열조와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14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륙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위에 있으니라.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복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장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들어가서 저를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이라. 시므리가 왕이 되어 그 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이되 남자는 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후로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말씀 같이 되었으니,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 아들 엘라의 죄를 인함이라. 저희가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엘라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된지 이년에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복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하는 시므리가 엘라 왕을 모반하여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엘라를 대신하여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시므리가 왕이 되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친구든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온 집을 멸하였다 했습니다.

 

15-20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매.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시므리가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였더라.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 모반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시므리가 반역에 성공하여 바아사의 아들 엘라와 그 집안의 남자들을 다 죽였을 때, 이런 상황에서 전쟁에 나가있던 오므리가 왕으로 추대되어 급히 돌아와 시므리를 공격한 것입니다. 시므리는 왕이 된지 7일 만에 시므리가 처한 성읍이 함락됨으로 인하여 왕궁 요새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서 죽습니다. 시므리는 7일 천하로 그 인생이 비극적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9절에 보면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시므리도 의인은 아니었다는거죠.

 

2)북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아합/열왕기상 16:21-34

 

. 오늘 본문 21-24절을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로 왕을 삼으려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고 했습니다.

 

오므리가 12년 동안 왕이 되는데 6년은 디르사에서 다스리고 나머지 6년은 사마리아에서 다스립니다.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사마리아로 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므리의 아들들 중, 아합이 22,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2, 아하시야의 아들 여호람이 12년에 이르기까지 왕위가 사대에까지 이어 48년을 통치한 가문이 됩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오므리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왕가였습니다.

 

25-28절을 보면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오므리의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오므리의 업적들을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라고 한마디로 처리해 버립니다. 성경은 오므리를 평가할 때 단 한마디도 잘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여호와 보시기에 그 전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29-33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 22년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평가는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했다고 합니다. 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아예 그 아버지가 ‘엣바알’입니다. 그 뜻은 ‘바알이 그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가 등장하여 대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2:39절을 보면 “아합의 남은 행적과 무릇 그 행한 일과 그 건축한 상아궁과 그 건축한 모든 성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솔로몬처럼 상아로 침대를 만든 정도가 아니라 아에 상아로 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

 

한편, 열왕기상 16장을 보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구절이 ‘유다 왕 아사’의 재위 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사는 남유다에서 41을 치리하게 되는데 그가 치리하는 상당기간 동안 남유다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아사의 치리기간 동안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2, 바아사가 24, 엘라가 2, 시므리가 7, 오므리가 12, 그리고 아사 제삼십팔 년에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 단명해서 다른 왕이 세워졌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을 비롯해서, 바아사, 시므리와 같은 인물들은 왕의 총애를 받은 신복들이면서 왕을 배반하고 모반을 일으킨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왕들이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내전 상황을 겪어야했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그야말로 유리방황하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결론)

이러한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깊이 깨달아야만 했습니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과 뒤틀린 관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어떤 순간에도 회복해야할 첫 번째 과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그 마음 한 편으로 다른 신을 섬긴 것이 문제였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온 힘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만 되겠습니다.

 

011519 안익선 목사/참고:창원행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