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6장 강해(여리고 성의 점령)

호걸영웅 2019. 4. 14. 08:56

여호수아 6장 강해(여리고 성의 점령)

 

서론)

오늘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사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세 가지 점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방식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무너진 터 위에 다시 집을 짓지 말라는 의미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상식 밖의 전략, 하나님의 기적

16절 말씀에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일곱째 날에 성을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 때 사람들로 하여금 외치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외침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그 성에 들어가 점령하게 됩니다(20).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문제를 여리고 성이라고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참 이상한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군대들도 쉽게 점령할 수 없었던 여리고 성, 요새와 같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왜 일곱 바퀴를 돌게 하셨을까? 또 일곱 번째 날에 소리를 지르게 해서 성을 무너뜨리셨을까? 아무리 여호수아가 있고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지만... 그것에 동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단단한 성을 일곱 번 돌게 해서 무너뜨리는 과정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전략이나 군사들의 병력에 의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상식을 초월하셔서 일을 하게 하심으로써 이 가나안 전쟁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일곱’ 이란 하나님의 사역의 숫자입니다. 7일 만에 천지창조를 마치고 쉬십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안식일은 일곱 번째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셨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 더 일하면 일한 것 만큼 수익을 얻게 됩니다. 6+1=7인데 하나님께는 6+1= 5, 혹은 4, 혹은 0 이 되기도 합니다.

중리을 지키는 기독교 국가들이 밤낮없이 중노동에 들들 볶이는 북한 보다 무려 이십배에서 사십배를 더 잘 삽니다.

 

상식적으론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매일 문을 열고 일을 하면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칠일째 되는 날에는 나도 쉬었으니 너희들도 쉬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데, 그것이 완전 수인 일곱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인지....이 일곱 번째 날,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자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다른 많은 힘들고 어려운 방법을 제시하시더라도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만 믿으면 구언해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의 방법입니다. 물론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말이 안되는 것 같을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금요기도를 드리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왜 일찌감치 잠도 못 자고 이렇게 와서 기도를 해야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낮이나 다른 시간에 기도해도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도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방식으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교회는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하고  또 기도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습니다. 작전을 짜고 계획을 짜고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는 잘 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 곧 탐심을 멀리하라

두 번째 생각해 볼 것 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곳의 물건들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물건들을 여호와의 곡식 창고에 모아두라고 하십니다. 특별히 은,금과 동철 기구들, 좋은 무기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앞으로 더 있을 싸움, 가나안 정복 때 이 무기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고 은과 금이 얼마나 귀중한데 왜 그것에 손을 못 대게 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깊은 지혜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승리하고 난 다음이 훨씬 더 큰 위험하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뭔가 잘 됐다 싶고 성공했다고 생각될 때, 그 이후가 훨씬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성을 점령하기는 쉽지만 성을 지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은 쉽지만 그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마음을 가난한 채로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다 하셨고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겸손히 내려놓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로 충분히 먹고 살만 하고 모든 것이 풀리게 되면 놀랍게도 그 재물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내 힘으로 다 될 것 같은 거에요.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시고 오로지 내 능력만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마 이것을 교훈으로 주시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다윗도 언제 범죄했습니까? 이젠 됐다 싶고 이젠 편하다 싶고 이젠 다 가졌다 싶었을 때 범죄했습니다.

 

너희가 얻은 전리품들에 손대지 말라. 그것들은 너희 것이 아니다. 너희는 단지 내가 모든 것을 주관하여 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것이고, 너희는 거기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이 모든 것들은 너희 것으로 소유를 삼는 영적인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전히 순종하여 여호와의 곳간에 모든 전리품들을 넣게 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게을러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까지 안해도 될 것 같아요. 신앙생활 좀 쉽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는 게 뻔한 것 같고 더 이상 바라는 게 나오는 것 같지도 않은,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긴박성과 간절함을 잃어버리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함을 잃어버리게 될 때, 기도에 소홀하여질 때.... 교회는 가장 큰 영적인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것을 취하지 말고 늘 청지기의 자세로 임해야 될 것입니다.

 

)세번째,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지 말라는 명령하십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해서 이후로 수천 년 동안 이 여리고 성은 다시 건축되거나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주를 해서 멸망한 채로 그대로 두라 하시는 것일까요? 죄악의 결말을 영원히 기념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어긴 사람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것은 엘리야 시대 때 아합 왕이었습니다(왕상 16: 34). 아합 왕은 거기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우상을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된 것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역사였습니다.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기념비를 없애고 경제적인 목적이나 다른 우상을 섬기고자 건물을 짓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오랜 시간 동안 지켜져 왔지만 아합 왕은 이세벨 이방 여인과 함께 우상을 섬기기 위해 거기에 건물을 지었고 왕상 20~22장에 보면,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아 부부가 다 급박스런 죽음을 맞이 합니다.

여호수아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그들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밖에 것은 ‘이건 하면 절대 안 된다. 이거 하면 망한다. 하나님께 저주 받으면 끝난다. 네 마음대로 해선 안 된다’고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기도 안하고 살게 되면 끝나는 것이다. 인생에 성공하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영원히 불행을 맛볼 것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 바로 서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과 상관 없고 부모인 우리와도 결국 천국 가서 못 만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그 선을 확실하게 그어 주어야 됩니다. 마음대로 된다고 해서,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필요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은 죄악이요 교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리고 성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게 될 문제에서도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들이 있었습니다. 이 교훈들을 삶으로 실천하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040919 안익선 목사/ 참고: 도상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