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하 19장 강해(위기 속에서 기도로 승리한 히스기야)

호걸영웅 2019. 9. 6. 03:41

열왕기하 19장 강해(위기 속에서 기도로 승리한 히스기야)

 

서론)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워낙 굉장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열왕기하 18,19장뿐 아니라, 역대하 32장과 이사야 36,37장에도 자세히 나옵니다. 예루살렘 남서쪽 28마일 정도에 위치한 라기스를 이미 정복한 앗수르 대군은 이곳을 예루살렘 침공의 거점으로 삼고 전열을 정비하여 질풍같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

 

본론)

)앗수르의 예루살렘 침공

그들 앗수르의 장수는 랍사게라는 왕의 심복이었는데, 말에 능한 그를 앞세워 먼저 말로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항복을 받아내려고 시도합니다. 랍사게는 자신을 맞으러 나온 유다의 신하들 앞에서 오만 방자하게 큰소리치며 앗수르 왕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역대하 32장과 18:19 이후에 보면 랍사게가 말한 것이 자세히 나오는데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첫째, 유다에게는 의뢰할 자, 즉 마땅히 도와줄 자가 없다고 합니다(19-20). 예루살렘이 포위된 주제에 누구를 의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구해줄 것이라고 하는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30). 또한 앗수르와 맞설 수 있는 강대국인 애굽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21). 강대국이던 애굽이 당시에는 랍사게의 말대로 “상한 갈대 지팡이” 같이 국력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신흥 강대국 앗수르에게 대적할 만한 힘이 없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둘째,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우상 제거와 거룩한 성전 개혁을 비난하면서, 하나님이 결코 유다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비웃습니다. 이때까지 어떤 나라들이나 그들의 신들도 앗수르를 대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33-34).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산헤립의 아버지인 사르곤 2세 때부터 시작된 앗수르의 정복 전쟁과 영토 확장은 아주 무시무시할 정도였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왔다는 말만 들어도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차례로 앗수르에게 무릎 꿇으며 항복하거나 멸망했습니다.

랍사게는 한 술 더 떠서 앗수르 군대가 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합니다(25). 이것은 진짜로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열방의 수많은 신들과 같은 정도로 보며 비꼰 것입니다.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18:35)

결국 이 세상의 누구도 앗수르 왕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건질 수 없으니 히스기야도 믿지 말고 하나님도 의뢰하지 말고, 빨리 항복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주 좋은 땅을 주어서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18:32).

이에 유다 신하들은 그 내용을 히스기야 왕에게 전하는데, 옷을 찢으면서 비통함을 나타냅니다(18:37). 자신들의 조국과 왕을 그토록 멸시하는 앗수르의 무례함에 슬프고 분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이 자기와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계략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이미 백성들에게 어떤 대꾸도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18:36).

)히스기야의 다급한 요청

이제 히스기야도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서 여호와의 전으로 가서 비상 기도에 돌입합니다(1). 왕의 모든 대신들도 다 굵은 베를 입고 같이 기도에 동참합니다(2).

히스기야는 당시에 활동했던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에게 이 다급한 상황을 전하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3절을 보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라고 하는데, 이 얼마나 비참하고 다급하며 불쌍한 상황입니까? 그래서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4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오만 방자한 말을 다 들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 사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꾸짖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히스기야 왕의 전갈을 받은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19:6-7)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말에는 아무 힘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어떤 소식을 듣고 급히 본국으로 철수하게 될 것이며, 거기서 그는 반역을 당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히스기야가 얼마나 힘이 났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힘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누구를 찾아가고 전문가의 말을 듣는 등, 세상의 소리를 찾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말씀을 듣길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과 그의 부하 대신들은 그 후에도 계속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비방하는 심리전을 펼칩니다. 그리고 산헤립은 친서를 히스기야에게 보냅니다. 그 내용은 랍사게가 앞에서 한 말과 비슷한데, 요점은 자신의 손에서 건져낼 신이 없으니까 빨리 항복하라는 것입니다(10-13).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의 앗수르라면 편지를 보내고 사람을 보낼 필요 없이 그냥 예루살렘으로 진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헤립은 그냥 편지만 써서 보냅니다. 사실 산헤립이 두 번이나 간접적으로 항복하라고 위협한 데에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구스 왕 디르하가가 앗수르를 공격하려고 군대를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겁니다(9).

아프리카 구스(금일의 수단과 이디오피아)의 사나운 군대는 앗수르도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급해진 산헤립은 병력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급히 유다의 항복을 받아내고 구스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사야에게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군대를 점검하거나 무기 창고를 정비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 무서운 협박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올라갑니다(14). 그리고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는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15-19).

이 히스기야의 기도는 사무엘하 7장의 다윗의 기도와 열왕기상 8장의 솔로몬의 기도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이처럼 위대한 영적 리더는 자기가 위대한 게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기도의 주제는 항상 자기가 잘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개인적인 필요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초점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도 이 히스기야처럼, 나 자신을 위협하는 가장 큰 근심거리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펼쳐 놓고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우리의 기도도 항상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그 핵심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응답을 받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0)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장황하게 기도하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오래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은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라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들어주겠다고 하신 것을 뜻합니다.

왕위에 오를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했던 히스기야, 철저히 준비된 지도자

히스기야, 위기 앞에서도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로 엎드린 히스기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기도한 히스기야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고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앗수르의 그 막강한 군사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십시오. 온통 머리가 아프고 세상이 복잡하게 보입니다. 또 불안해집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기죽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답답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2:10-12)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여기 19장 말미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심판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35)입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멸시하며 나오던 사람들이 하룻밤에 18 5천 명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수십 년 동안 유다를 공포에 떨게 했던 앗수르의 대군이 단 하룻밤 사이에 진멸된 것입니다.

결론)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 번만 움직이시면 수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해결이 안 되던 문제도 순식간에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이런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이분께 참된 기도로 나아갈 때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082019 안익선 목사/ 참조: 콜럼버스 한인 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