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에스라 3장 강해(성전재건과 그 설명)

호걸영웅 2019. 10. 24. 02:36

에스라 3장 강해(성전재건과 그 설명)

서론)

에스라 3장은 1차 포로귀환 직후에 있었던 성전재건에 대한 이러 저런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주전 537,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예언의 말씀 그대로 꿈 같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고국 유다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 1-6장은 1차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7-10장은 2차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느헤미야 1-13장은 3차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지난 주 본문인 2장에 나온 바와 같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일반 회중이 42,360, 남녀 종이 7,337,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 등 모두 49,897( 5만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회복과 안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귀환한 7월에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7월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인데, 지금의 양력으로 하면 9-10월 경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일제히’ 모였는데, ‘일제히’의 문자적인 뜻은 ‘한 사람처럼’ 모두 모였다는 뜻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무교절과 칠칠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을 7 15일일부터 일주일동안 지켰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모인 것이 특별한 것은 수십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처음 맞는 70년만의 초막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남미나 유럽으로 이민을 갔던 사람이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 고국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서 추석을 맞이한다면, 정말 감회가 남다를 것임과 같습니다.

2
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모인 사람들 중에서 예수아(대제사장)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룹바벨(총독)과 그의 형제들이 초막절을 지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모인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예배를 복원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 때부터 인도하신 하나님, 그리고 특히 바벨론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그 일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우리의 신아생활에서도 종종 삶이 망가진 것 같고, 모든 관계가 어그러진 것 같아서 혼란스러운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삶에서 온전한 삶과 관계로 회복되는 첫 출발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 삶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6절에서 보면 ,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고 했습니다. 유대력으로 7월에 그들은 임시적인 상황에서 번제와 감사제 화목제 등을 지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도 아직은 성전의 기초를 다시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석수와 목수를 고용했고 오늘날 이스라엘 북부 레반논 지역 항구도시인 시돈과 두로 사람들에게 식료품과 포도주나 올리브유 등을 주고 레바논의 석재나 목재를 사서 욥바항 까지 배로 수입하여 운반해 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욥바항구는 예루살렘에 65km 거리이며, 서북서 방향의 이스라엘 서쪽 지중해에 위치한 무역항입니다. 이곳에서 솔로몬도 레바논이 목재와 석재를 구입하여 운반해 왔습니다.

요나도 이곳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미 명령을 싫어하여 도망을 친 장소입니다. 

8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온 지 2년째 되는 해 둘째 달에,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지도자 그룹의 주도로 성전 기초공사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살마들과 건축재료들을 잘 준비하였을 뿐 아니라, 20살이 넘은 레위사람들로 하여금 공사를 감독하게도 했습니다.

본래 레위인은 25살이 넘어야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포로에서 돌아온 후라는 특수상황과 더불어 감독 인원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20세 이상을 감독관으로 세워야 햇습니다.
(6.25
때 학도의용군 처럼
)

이렇게 온 마음을 들여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훌륭하고 멋진 건물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재건을 통해서 무너진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세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10-11
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성전의 기초가 놓였을 때에 제사장들은 나팔을 들었고, 레위인들은 제금을 들었습니다. 제금은 오늘날에 심벌즈 같은 악기로서 구리로 만든 것으로 당시 찬양대를 지휘하거나 인도할 때 주로 쓰는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서로 찬양하고 감사로 화답”하였습니다. 이쪽에서 찬송을 부르면, 저쪽에서 감사를 드렸고, 저쪽에서 찬송을 하면, 이쪽에서 감사를 드리는 방식입니다.

이 장면이 꼭 시편 136편을 찬송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쪽 :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저쪽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쪽 :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이쪽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쪽 :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저쪽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136:2-4)라는 시입니다
.

이 찬양을 올려드리는 사람들에게 찬양과 감사는 동일한 의미였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찬양과 감사는 인간의 길보다 언제나 높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또한 인간의 생각보다 언제나 높으신 생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길을 돌아보고서 하나님의 행하심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

12-13
절입니다
.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포로시대 이전에 어렸을 때
)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성전의 기초공사가 끝이 났을 때, 그 광경을 보러 온 사람들의 반응이 2가지로 나뉘었습니다. 한 그룹은 너무 기뻐서 함성을 질렀고, 또 한 그룹은 감격하여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기뻐 함성을 질렀던 사람들은 무너졌던 예배 처소가 이제 다시 생기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고, 대성통곡을 하였던 사람들은 과거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로 옛 성전과 비교하여 지금 성전의 초라함과 지난 세월 이런 성전도 없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의 원통함과 회복의 감격을 못 이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팔이 둘 다 멀쩡할 때는 전혀 의식을 못하다가 넘어져서 팔 하나가 부러져 석고(깁스)를 하면, 두 팔이 있을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압니다. 팔 하나로는 세수하고 머리를 감기도 불편하고, 옷을 입는 것도 불편하고, 음식을 준비하기는 정말 불편합니다. 전구를 갈아 끼우는 것은 거의 포기를 해야 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고 신앙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동안 지켜야 합니다. 한번 잃은 복을 회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우리가 수요예배를 아무 어려움 없이 드릴 수 있도록 이 자리에 나아올 수 있고, 실제 함께 예배당에 모여 예배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편히 앉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릅니다. 몸이 아파 쉽게 움직일 수 없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을 때, 마음만 먹으면 금방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던 때가 얼마나 그립고, 그랬을 때에 제대로 예배 드리지 못함이 얼마나 한스러운지 모릅니다
.
 
결론)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조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외면하여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잃고 성전이 붕괴되어 이방 땅에서, 고국을 향하여 눈물밖에 흘릴 수 없었을 때, 과거가 얼마나 좋았었는지를 생각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참회하는 마음으로 초막절을 지키며 성전의 기초를 다지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며 지나간 시절 받았던 고통을 떠올리며 한탄과 통곡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께 잘 해야 합니다. 복이 한번 떠나면 다시 오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은혜 하나라도 더욱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 잘 섬기는 우리가 되야 하겠습니다.

 

102219 안익선 목사/ 참조: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