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에스라 4장 강해 (성전 재건의 미혹과 방해)

호걸영웅 2019. 12. 1. 09:31

에스라 4장 강해 (성전 재건의 미혹과 방해)                        

 

서론) 

1.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전을 회복하기 위해서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들이 본국으로 돌아온 지 2년 만에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힘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감격적인 성전 기공식도 올렸습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은 분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지만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순조롭고 평탄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호사다마란 말처럼 사단의 방해공작이 살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도 마귀의 역사는 존재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가 여전히 치열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는 곳에는 마귀의 역사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이상하게 여겨선 안됩니다. 고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 영적 싸움을 계속해서 싸워 나가야만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그들의 대적 사마리아 사람들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들은 이상 그 일을 그대로,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2절에 보면, 그들이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함께 건축하자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유다 족속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그 일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말이 얼마나 달콤함 말입니까? 수 십 년 만에 돌아와 모든 것이 낯설고 사방엔 대적하며 경계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같은 편이 되 주겠다는 것입니다. 함께 잘 해보자는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 말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1절에 보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저들은 앗수르왕 에살핫돈이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시킨 이주민들과의 혼혈족들이었습니다. 우상을 겸하여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훗날 사마리아인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대로 분명 그 땅에 들어온 날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긴 것이 아니라, 다른 이방의 여러 신들을 동시에 섬긴 혼합주의적 신앙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전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시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우상들과 같은 반열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일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함께 잘 살자 함께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달콤한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그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자들이기에

어떻게 보면, 그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미혹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스룹바벨 (총독)과 대제사장 예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의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이 너희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했습니다.

 

예수께서 적은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떡이 아니라, 순전한 떡을 원하십니다.

 세상은 늘 타협을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비결입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에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을 취함이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육신적으로 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가 늘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세상의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양보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좋은 바 대로 타협하는 것입니다.

 

 에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10:34 하십니다. 비록 핍박이 와도 우리가 주님 편에 서고자 했을 때, 우리는 세상과 대적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식민지 세대엔 개척자들이 처음 아프리카에 들어갔을 때, 아프리카 주민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가치를 모른 채 가지고 노는 보석들을 껌이나 쵸콜렛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과 바꾸어갔다고 합니다. 보석의 가치를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이 귀한 특권을 세상의 즐거움이나, 작은 이익들과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 기도하는 일, 하나님의 사랑의 나누는 일, 믿음의 형제 간에 교제하는 일,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주신 보석과 같은 귀한 선물들입니다. 이 보화들을 지극히 하찮은 것들 때문에 빼앗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으며,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늘 세상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열심을 방해하기 위해서 달콤한 미혹의 손길을 내 밉니다. 그런 것들은 강하고 담대하게 뿌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4~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타협의 손길, 그들이 내미는 그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물리치자 이번에는 대적들이 공으로 나옵니다.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들의 손을 약하게 하여,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둡니다.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들은 바사제국에서 파견되어온 방백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왕이 즉위할 때는 온갖 모함 섞인 말로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고소하는 글을 올립니다. 그 글의 내용이 11-16절까지입니다.

 

11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12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15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16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계략은 일시적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하여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답신을 받습니다.

 

 17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18
   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21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22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결국 대적들의 계략대로, 하나님의 전 역사가 멈추게 되었습니다. 24절에 보면,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왕 다리오 제 2년까지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년간 성전 재건의 역사가 멈추게 된 것입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성전 재건의 사역이  멈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6년 후에 성전이 재건되고 맙니다.

 

결론)

성도가 확신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대적이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을 다 용하며, 계략을 동원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잠시 그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분명 힘겨운 영적 싸움을 계속해 나가지만 이 영적인 의로운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언제일 뿐입니다. 

때로 우리가 연약해서 작은 싸움들에서 지기도 하지만, 이미 우리의 대장 예수께서 적장을 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싸움은 이미 다 끝난 것입니다.

 

늘 깨어 있어서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그들이 내미는 타협의 손길을 뿌리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들을 하찮은 것들과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102919 안익선 목사/ 참조:대안교회 & 박상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