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에스라서 서론

호걸영웅 2019. 10. 24. 02:43

                                  에스라서 서론

 열왕기 상하를 마치고 역대상하에 뒤이어,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가 나옵니다. 이 세권의 책들은 포로기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역대하에서 유대인들의 포로생활이 고레스칙령으로 끝나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역대하 마지막부분과 에스라 첫부분은 비슷합니다. 이 시기는 바벨론은 바사와 메대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이며, 바사왕 고레스가 조부 고레스 대왕에 이어 통치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포로기 70년을 보내게 됩니다. 마침내 고레스는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이야기로 끝나고 또 시작됩니다. 바사는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포로이후, 아니 모세이후 최고의 율법사로 봅니다.

에스라는 포로 이후, 유대인들이 율법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사실 모세 이후 열왕조까지는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중심의 신앙생활이었으나 포로기 이후는 회당중심으로 율법중심의 신앙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에스라서는 느헤미야서와 여러모로 닮았습니다만, 에스라서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라면 느헤미야서는 무너진 성곽과 도시를 재건하는 것이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두 책은 모두 흩어진 신앙생활을 정립하여 포로 이후 참신앙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에스라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첫 부분은 1장부터 6장까지로 1차 포로귀환과 성전건축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두번째 부분인 7장부터 10장까지는 2차 포로귀환과 신앙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부분의 주요 등장인물은 총독 스룹바벨이고 두번째 부분은 에스라입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후손이고 에스라는 아론의 후손입니다. 즉 에스라서는 왕의 일과 제사장의 일을 나누어서 기술한 것입니다.

왕의 기능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고 제사장의 기능은 성전을 성결케 하는 것이다. 이 두 기능은 죄에 빠진 인간의 영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합니다.

먼저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4만여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최초로 한 일은 하나님의 단을 쌓아 번제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인도하는 유대인들은 또한 초막절을 지켰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70년만에처음으로 맞은 절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성을 다해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은 추수가 끝나고 옛날 광야생활을 기억하며 초막에서 1주일을 보내는 절기이며, 이 때 많은 예물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들은 또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준비를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곳에 하나님의 전 기초부분을 다시 놓았습니다. 예복을 입고 정성스레 다윗의 규례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전 착공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아주 어려서 솔로몬의 성전을 본 기억이 있었으므로 큰 감회속에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지난 날의 영화가 뇌리 속에 스쳐가면서 70년 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한 것이 기억되어 크나큰 슬픔과 기쁨, 그리고 감회와 감사가 교차했습니다. 또한 지난날의 성전을 본적이 없는 세대들은 성전을 건축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쁨과 즐거움에 들떠서 노래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때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전을 자기들의 손으로 다시 고쳐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보람된 일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지을 때, 모든 것이 다 잘돼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해꾼이 나타나서 방해를 합니다. 유대인이 성전을 지으려 하자 인근에 살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이 와서 자기들도 성전을 짓는 일을 돕겠다고 합니다. 사마리아인들도 물론 하나님을 섬기긴 했습니다. 그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이었던 앗수르 사람과의 혼혈된 자손이었습니다.

고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제의를 거절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신앙이 변질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므로 차라리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힘만으로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들의 호의가 거절되자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조직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였다. 그리고 유대지역에 살고 있던 바사의 고관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그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고 또 바사왕에게 상소를 올려 유대인들이 성전을 짓게 되면 반역을 할 것이므로 절대 성전을 짓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즈음 안타깝게도 고레스 왕이 죽었고 그 후대의 왕들은 고레스의 칙령을 잘 모르므로 정치적인 이유로만 판단하고 이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성전을 건축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또 10여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레스 왕을 더욱 모르는 왕이 등극하므로 성전건축은 더욱 어렵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을 독려하기 위해서 나타난 선지자가 있으니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그들은 당시의 왕인 다리오에게 글을 올려 고레스 왕의 조서를 생각나게 했고 성전을 재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리오는 선대가 허락한 것을 후대의 왕이 순종치 않는다면 선대를 욕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즉시 나라에서 조사케 하였고 조사해본 후, 다리오 왕은 다시 조서를 내려 성전을 건축케 함은 물론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제공케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에 대하여 "그 집에서 들보를 빼어내고 저를 그 위에 매어 달게 하고 그 집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이 무시무시한 조서가 내려지자 방해꾼들은 사라졌고, 유대인들은 기가 살아 성전건축을 재개케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참으로 신묘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4년만에 성전이 완공되었으니, 스룹바벨이 지대를 놓은 지 20년이 흐른 후의 일입니다.


이렇게 성전이 준공되자 봉헌식을 가졌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유월절기를 맞습니다. 솔로몬 성전에서 마지막 제사를 드린 지 정확히 7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아니 70년간 포로생활을 하였는데 무슨 소린가요?

우리는 다니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1차로 바벨론에 끌려간 것이 예루살렘 성전이 파멸되기 20년 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1차 포로때부터 정확히 70년 후에 1차 귀환이 이루어졌고, 성전이 파멸된 후 정확히 70년 만에 성전이 재건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만큼 오묘합니다.

성전건축이 완료된 후 또 60여년이 흐릅니다.

에스라 7장은 바로 성전재건 후, 60년의 공백이 있은 후,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포로귀환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니까 에스라가 본서를 기록한 것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보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전을 재건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정리한 것으로 바야 합니다.

에스라서는 이렇게 긴 공백기를 두고 두부분으로 나뉩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완공되어 60여년동안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러나 이때 까지만 해도 에스라와 같은 율법사가 없었기 때문에 …… 모든 것이 율법대로 체계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때 준비된 인물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모세 이후로 최고의 율법사라 할만큼 율법에 정통한 자였습니다. 그때의 왕이 아닥사스다 왕이었는데 아닥사스다(롱기마누스)입니다.  그는 고레스왕과같이 조서를 다시 내려, 에스라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합니다. (바사엔 두 명의 아닥사스다가 있었는데 먼저는 그냥 아닥사스다인데 성전공사를 중단시킨 자로서 7개월간만 다스렸다 함)

 우리는 여기서 왜 바사국왕들이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보였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바사국은 나름대로의 신을 섬기고 있었으나 오늘날 순조로운 통치를 위해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있었기에 정치적으로 바사국에 순종만 하면 무슨 신을 섬기든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에스라는 왕의 조서에 따라 다시 예루살렘으로 갈 사람들을 모집하였고 이때 성인 남자만 1500여명이 귀환하게 됩니다. 그는 그 머나먼 길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귀환하였는데, 에스라는 출발에 앞서서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모든 다른 도움을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느헤미야의 귀환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에 따라 성전의식을 정립하러 갔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의 선민답게 사는 길을 가르칩니다. 성전 중심의 예배를 회복하고 율법중심의 삶을 회복하도록 합니다.

이때 에스라가 가장 안타깝게 여긴 것은 유대인의 통혼문제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통혼하여 유대인의 혈통이 흐려지고 있었는데, 에스라는 이것을 애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왜 통혼이 나쁜 것인가요? 솔로몬에게서 나타났듯이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결혼하여 유대인의 관습을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고 또 그것이 문제가 되어 유대인의 순수함이 자꾸 흐려지니까 이방의 불순한 문화나 종교가 들어오게 되니 그 근본을 바로잡길 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에스라가 통회하며 기도하자,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죄를 기억하고 같이 회개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영적 각성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율법대로 하겠다고 하였고 에스라는 이방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의 순수함을 유지하려면 이와 같이 단호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면에서 적이 되고 결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결국 살을 찢어내는 고통을 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쫓아냈습니다.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자도 있었으나 자녀와 생이별을 합니다. 그 길만이 유대인으로서의 전통과 혈통을 세우는 길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서 후대 사람들도 그 길을 걸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지독한 유대인들이 탄생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단종교가 우리 가정에 스며들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에스라가 만약 그런 일을 단행하지 않았다면……오늘날 같은 유대인을 찾아볼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한편으로는 인정하되 또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올바른 길을 가는 기독교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것을 교훈삼아 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고통이 있을 지라도, 자를 것은 잘라내어 예수 안에서 믿음의 순수함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100819 안익선 목사/ 참고: 정회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