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에스라 9장 강해( 이방인들과 연혼한 죄의 발견)

호걸영웅 2019. 12. 29. 01:59

에스라 9장 강해( 이방인들과 연혼한 죄의 발견)


찬송가 453, 455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가)서론 및 결론

[1-2]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구별되어 살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앞장 8장에 기록된 대로 에스라가 약 1,776(장정만)명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가져온 금은 그릇들을 다 계수하고 그 무게를 달아 인계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의 번제를 드린 후,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나아와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가증한 일 즉 우상숭배를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 백성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한 결혼에 기인한 문제였다 했습니다. 이 죄에 방백들과 지도자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70년 전에 지었던 죄를 다시 반복한 것이었습니다


[3-9]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蘇醒)하게[다시 힘을 얻어]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우리에게 인자(仁慈, 케세드)를 베푸셔서] 소성(蘇醒)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보호할 울타리]을 주셨나이다.//

에스라는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들이 다 그에게로 모여들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아 있다가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에스라는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얼굴을 하나님께 들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선조들이 심히 범죄함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로잡히고 노략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의의 징벌 중에서도 인자를 베푸셔서 얼마 남겨두셨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하나님의 전을 재건하게 하셨다고 회고하였습니다


[10-15]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하여 영원한 기업을 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시기에 70년간의 긴 고난을 받은 후에도, 돌아온 그들은 범죄하였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의 타락해버린 가나안 주민들과의 결혼을 금하셨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더러워진 땅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자기들의 아들들을 위해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도 말아야 했으며 또한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잊고 행동하였던 것입니다.


 나)

그러면, 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된 존재라는 점입니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징벌의 긴 기간을 거친 후에도 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고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된 존재라 했습니다.

( 17:9,10)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고하셨고, (13:23,24),  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전적 부패성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완성도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과 결혼하는 일을 될수 있으면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 백성의 죄는 이방 족속들과 연혼하고 그들의 가증한 일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교제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었습니다(34:12- 16; 7:1-5; 고후 6:14-16).

12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13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15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신앙의 변절 및 큰 장애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불신자나 이방종교인과 결혼해서는 안 되며 또 천주교인이나 자유주의 같은 이단 사상을 가진 자와 결혼시켜서도 안 됩니다.

참된 성도는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남녀간의 결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 2절에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라는 구절을 원어로 직역하면, ‘그들이 그 자신들과 그들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입니다. 즉 그들의 결혼에는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아들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방인과의 결합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하나님이 빠져 있고, 자신이 주체가 된 영적이고 신앙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 결합이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 중요한 이 시점에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 순수한 공동체성을 완전히 와해 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율법에서 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잘못을 이를 바로잡아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이 잘못된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포로 귀환도 이루어졌고, 성전도 재건되는 등 외형적으로는 무언가 공동체성을 이루어 가는 듯 보였지만, 실제적인 공동체가 가진 내면의 상태는 심각해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외형이 좋아 보여도 내면도 외형과 같으리라 볼 수 없습니다. 외형적 열심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외형적 열심이 반드시 내면적 순수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형적 노력만큼 내면을 잘 돌아봄이 중요합니다. 열심히 섬기는 만큼 내면도 주님의 말씀으로 잘 다스림을 받고 있는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포로의 아픔을 겪어야 했는지 충분히 돌아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또 귀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지 충분히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또 나태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첫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옷을 찢는 행동은 중동지역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듣거나 보았을 때 가지는 슬픔이나 놀람의 표현입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야곱이 보인 첫 반응이 자신의 옷을 찢은 것이었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은 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명예와 자부심,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깎는 것은 수치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혀 앉은 모습은 참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세 행동이 이스라엘이 지은 잘못이 얼마나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중하고 심각한 죄임을 알게 합니다.

세 번째는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짓는 죄들에 대해서도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들 안에서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도 두셨다는 것은 그 공동체도 나의 몸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이든, 교회이든, 사회이든 두신 그 공동체는 나와 한 몸입니다. 그래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해야 하는 곳입니다. 공동체의 죄 또한 나의 죄로 끌어안고 주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에스라의 모습을 기억하며 어떤 환경에서든 주님을 꼭 붙잡고 내적 개혁, 내적 성숙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주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내면을 잘 살피게 해 주시옵소서. 죄를 가볍게 여기어 방치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또 우리를 두신 그 공동체를 나의 몸으로 끌어안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아름다운 성숙을 함께 이뤄가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20319 안익선 목사/ 참고:정재규 & 이효성

 

마치는 찬송: 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