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상 16장 강해( 기름 부음을 받는 다윗)

호걸영웅 2020. 2. 7. 18:04

사무엘상 16장 강해( 기름 부음을 받는 다윗)

 서론)

사울이 왕으로 재임 중에 당시 베들레헴의 어린 목동에 불과하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 중에 사울 왕의 근위 부관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왕실의 법도에 적응하면서 새 왕으로 훈련을 받게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론)

1-13: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새로운 왕을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바로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위에 오르기까지 무려 1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고, 그것도 죽음 일보 직전에까지 이르기도 한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훈련시킨 기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내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울이 사무엘의 명을 어기고 스스로 제사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위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삼상 13:8-14). 그런데도 사울은 경성하지 않고 또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미 경고하셨던 바를 확정하셨습니다(삼상 15:1-29).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새로운 인물에게 기름 부어 세우고자 하십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한 유다의 작은 성읍입니다.

 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사무엘은 새 왕을 세우기 위해 자신이 이새의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여전히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때에 새 왕을 기름 부어 세운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반역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사무엘은 그 일이 발각되었을 경우에 자신은 물론 이새의 집안까지 화가 미쳐 하나님께서 차기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선한 자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사무엘의 염려를 불식시켜 주시는 지혜로운 조처를 알려 주셨는데 바로 제사를 통하여 이새와 그 아들들을 제사에 청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사(자바흐: זבח)’는 그 바치는 제물이 암송아지인 점( 3:1-5)을 보아 화목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든지 제사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사무엘이 비록 자신의 통치권을 사울에게 이양하였다고 해도(삼상 12:1-25) 그가 여전히 이스라엘의 선지자요 사사임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은 사무엘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해하며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혹시라도 사무엘이 자신들의 잘못을 책망하며 징계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여 불안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라고 질문한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5: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사무엘은 이새의 장자,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그가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자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이는 앞서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그의 외모가 중시된 점(삼상 10:23, 24)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외모와 같은 인간적 조건이 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사울은 외모가 뛰어난 자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장중에 온전히 사로잡히기만 하면 그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주의 일꾼이 될 수 있음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4:10-17; 6:15,16).

8-10: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 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여기에서의 식사는 화목 제사를 드린 후 참석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공동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을 만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마치기 전에는 결코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말에서 그의 투철한 사명 의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그의 빛이 붉고’ 이 말은 다윗의 전반적인 건강을 의미합니다. 혈색이 좋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이 빼어나고’ 눈에 총기가 있어서 초롱초롱 반짝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굴이 아름답더라.’ 미남자였더라라는 의미?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내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는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30세가 되어서입니다. 그가 어른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으로 보아 그가 기름부음을 받을 당시는 20세 미만이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3:8). 따라서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10여년 이상을 연단 받고 훈련되어졌던 것입니다.

 )14-23: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사울의 부름을 받아 자유롭게 왕궁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점차 다윗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사울이 하나님께서 부리신 악신으로 인하여 번뇌하자, 사울의 신하들이 그의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기 위하여 수금 잘 타는 다윗을 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울이 다윗을 크게 신임하여 그의 병기든 자로 삼았고, 다윗이 사울을 위해 궁중에서 수금 타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여호와의 신’은 구약 시대에도 활동했던 ‘성령’입니다( 3:10). 사울이 하나님을 저버리자, 그 동안 사울을 사로잡아 권능으로 역사하셨던 성령(삼상 11:6)께서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않고 떠나신 것입니다. ‘악신(루아흐 라아: רוח־רעה)’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만 역사할 수 있는 사단의 영을 가리킵니다( 1:12). ‘번뇌케 한지라(바아트: בעת)’는 ‘압박하다’, ‘놀라게 하다’란 뜻으로 사울이 육체적 심한 고통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15,16: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음악도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은 현대 의학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경우에는 이러한 방법이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증상은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한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죄 사유함을 받지 않고서는 결단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사는 성도들도 이러한 점을 잘 구별해야만 합니다. 내가 만일 어떤 질병을 얻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파악부터 해야 빠르고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 18: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사실 다윗은 사자와 곰과 싸워서 쳐 죽일 수 있는(삼상 17:34-36) 담대함과 용기와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들을 지을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과 재능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더욱 충만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고 하는 신하의 말을 보면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은 장차 왕으로서 갖춰야 할 신체적, 감성적, 영적 성숙을 이루어 나갔던 것입니다.

19, 20: 사울이 이에 사자를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가죽 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 아들 다윗의 손으로 사울에게 보내니 / 이새가 다윗을 통해 사울에게 보낸 충성과 경의를 표하는 예물입니다.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22: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는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을 시중드는 것을 부모로서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왕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다윗의 아비인 이새에게 정중한 태도를 구한 것은 그가 다윗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하나님의 신, 성령께서 함께 하는 다윗이기 때문에, 그가 수금을 연주하자 사단의 영은 일단은 임시적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다윗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것이므로 더욱 사단의 영은 그 상황을 피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수금 연주 역시 일시적인 효과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거나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후에도 여전히 사울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에게 고통을 당한 점(삼상 18:10)에 의해 분명해 집니다.

결론)

1.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위해 어떤 모양으로든 인도와 보호를 쉬지 않으십니다.

2. 죄인은 결코 어떤 신분이든 하나님 앞에 서거나 축복 받을 수 없습니다.

3.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아도 훈련이 필요 했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좋은 일군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혹독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훈련 기간을 잘 견디고 극복해 내면 크게 축복하시고 사용하시게 됩니다.

 

 012320 안익선 목사/ 참고 : 행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