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상 제14장 강해(요나단의 믿음과 승리)

호걸영웅 2020. 1. 17. 04:58

사무엘상 제14장 강해(요나단의 믿음과 승리)

 서론)

블레셋과의 대치 상황에서 요나단은 출중한 신앙을 바탕으로 기습 공격을 하여 큰 전과를 올린 반면에 사울은 잘못된 신앙을 바탕으로 잘못된 지시를 하달하여 온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본 장의 주제는 아주 간결 명확합니다. 사울이 선민의 왕으로서 부적격자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론)

가) 요나단의 믿음과 용맹

1-15: 사울의 아들 요나단으로 인하여 불리한 전세가 역전되어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몇 명 되지 않은 병사를 이끌고 블레셋을 습격하여 큰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승리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블레셋이 진 친 믹마스 어귀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있는 게바까지는 약 1.5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그 사이에는 협곡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약 1.5km를 걸어서 이 협곡을 건너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자신의 공격 작전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추측한다면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아버지 사울이 그 작전을 절대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미그론(גרוון)’은 절벽을 뜻입니다. 그곳은 이름의 의미대로 전체 지역이 온통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블레셋 진영으로 가려면 두 절벽을 넘어 기어 올라 가야 하는데. ‘보세스(בוצץ)’는  ‘미끄러움’이라는 뜻이며 ‘세네(סנה)’는 가시덤불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들은 믹마스로 나아가는 협곡 일대가 매우 험하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두 바위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서 있는 형태를 띠었음을 설명합니다.

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확신하며 블레셋을 향하여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조소하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 했습니다.  

 7: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요나단의 병기든 자가 요나단의 신앙적 결단에 동의하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8: 요나단이 가로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10: 그들이 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요나단이 하나님만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판단코자 했습니다. 요나단은 첫째, 블레셋 인들이 내려오겠다고 하는 경우와, 둘째 자신들에게로 올라오라고 하는 두 가지 중 후자의 경우를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증표로 삼았습니다. 블레셋 병사가 후자로 대답을 하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표징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요나단이 이미 하나님께 기도한 후 심중의 확신을 가지고 한 말입니다.

 11: 둘이 다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를 대하여 가로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이리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3: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 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 인 가량이라.

‘반일 경 지단 안에서’ 히브리식 표현으로 ‘한 마리의 소가 한 나절에 갈아 놓을 수 있는 땅’으로 대략 황소 두 마리가 한나절 갈 수 있는 밭의 면적은 1에이커로 4,047㎡ 정도 됩니다. 반일 경 지단은 1/2에이커에 해당하는 면적이 됩니다. ‘처음으로~ 이십인 가량이라.’ 처음으로라는 말은 이번에 거둔 요나단의 승리가 곧 이어 있을 이스라엘의 대승을 예고해 주는 전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5: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본 절은 요나단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가운데 최고의 전과를 거둔 것을 신호로 삼기라도 한 듯이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셔서 블레셋인 가운데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지진을 일으키신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16-23: 이스라엘군의 대승

사울은 요나단의 활약으로 블레셋 진영이 혼란케 된 것을 보고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블레셋 군대에는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블레셋 군대에 편성되었던 히브리 사람들과 진영을 이탈했던 백성들이 다시 사울과 합하므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본문은 그 모든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하심의 결과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숫군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베냐민 기브아’ 사울의 고향인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를 가리킵니다(삼상 13:2). ‘ ‘무너지다(무그: מוב)’는 문자적으로 ‘녹아내리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블레셋의 군대가 요나단의 공격에 의한 수비대의 패퇴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말미암은 공포로 인해 마음이 녹아내려 당황하며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잘 묘사하였습니다.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  사울은 이스라엘 병사들 중에서 누가 블레셋 진영으로 갔는지 파악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 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19: 사울의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사울의 기회주의적 신앙 자세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진영에 소동이 더하여 이스라엘의 승리의 가능성이 보이자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했던 조금 전의 자세에서 돌이킵니다. 이는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같다가 어려움이 사라지면 이내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사울의 불신앙을 증거합니다. 

20: 사울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진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이’ 이들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통치하에 예속되어 있던 탓에(삼상 13:19-21) 강제로 징병되어 블레셋 군대에 편입된 자들이 블레셋을 공격하는 이에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고로 블레셋 진영에 더 큰 소동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이스라엘 군사들까지 진격해 왔습니다.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일부 군병들도 블레셋의 혼란을 보고 합세했습니다.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벧아웬은 베냐민 지파의 산지에 위치한 곳으로 믹마스 서쪽 약 1km지점으로 벧엘 동편에 있던 성읍입니다. 즉 벧아웬 동편의 믹마스에 주둔했던 블레셋 군이 서쪽으로 패주하여 아얄론까지 도망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사울의 전장에서의 실수

24-46: 이스라엘이 승리를 마무리는 시점에 사울은 망령된 맹세를 하였습니다. 승리에만 급급하여 경솔하게도 블레셋과 전투하는 동안 금식령을 내렸고 만약 음식을 먹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맹세하였습니다. 아마도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속히 종결시키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 드높이고자 하는 이기적 욕심에 그렇게 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그의 맹세는 큰 부작용을 가져왔습니다. 음식을 먹지 못한 백성들이 지쳐 보다 좋은 전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사울의 맹세를 듣지 못하여 꿀을 먹은 요나단은 죽임을 당할 뻔했으며 금식 시한을 넘긴 백성들이 허기를 참지 못하고 짐승을 잡아 생 피가 흐르는 채로 뜯어 먹는 사태까지 유발시켰던 것입니다. 이런 사울의 맹세가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는 자였음을 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잎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27: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아비의 명령을 모른 요나단은 허기가 심하여 눈이 침침할 정도로 지쳤다가 꿀을 먹고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28: 때에 백성 중 하나가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부친이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29: 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육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31: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아얄론은 예루살렘에서 23km정도, 믹마스에서 약 25-30km 정도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먼 거리를 싸우며 먹지도 못하고 적과 싸우며 추격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너무나도 지쳐 있었습니다.

 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 있는 채 먹었더니  이스라엘 군사들은 너무 허기가 진 나머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한 채 두 가지 율법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첫째 동물을 피 채 먹지 말라는 법( 9:9; 17:10-14), 둘째 소와 송아지를 같은 날에 잡아 먹지 말라는 법( 22:28)입니다. 이처럼 사울의 자기중심적이고도 경망스런 금식 명령은 백성들을 괴롭게 만들었음은 물론 급기야 저들로 하여금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33: 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고서 백성이 고기를 피 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하고  ‘큰 돌을 내게로 굴려오라’이는 돌 위에서 짐승을 잡아 그 피는 땅에 쏟아 버리고 고기만을 먹게 하기 위한 초저로 보입니다. 율법에서도 피는 무릇 생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12:23-25).

 34: 또 가로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각기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잡아먹되 피 있는 채 먹어서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

36: 사울이 가로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가로되 왕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가로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백성들이 소와 양을 잡아먹고 기력을 회복하자, 그들을 독려하고 블레셋 군대를 추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지 아니하시는지라  38: 사울이 가로되 너희 백성의 어른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뉘게 있나 알아보자.  사울은 여호와의 무응답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한 자가 있는 연고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을 소집한 것입니다.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지 아니하매  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편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편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컨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 사울이 가로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기도응답이 없자 그 사태의 원인이 될 죄인을 색출하고자 제비를 뽑으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뽑히게 되엇습니다.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가로되 너희 행한 것을 내게 고하라. 요나단이 고하여 가로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가로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사울은 아직까지 자신의 실수를 생각지 아니하고 요나단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 하여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이제가지 사울의 의견에 마지못해 동의했던 백성들이 요나단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단호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동역)하였음이니이다. 결국 백성들의 논리적이고 간곡한 청원으로  요나단은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 또 다른 전투들과 그 후 사울 가문의 형편(47-52) 

47,48: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고, 용맹 있게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소바‘는 다메섹 북쪽의 동부 수리아를 지배하던 아람의 한 도시 국가입니다(삼하 8:3-12).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족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예들로( 36:12) 목초지를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유목민입니다( 17:8).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리스위와 말기수아요 그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51: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하마아스의 딸이요 그 군장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사울의 아비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비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장관이었고 사울이 죽은 이후에도 사울 가문을 지지하여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삼하 2:8). 그러다가 나중에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 귀순했으나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삼하 3:6-30).

 

 52: 사울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블레셋 군이 감히 이스라엘 경내를 침범하지 못했던 것(삼상 7:12-14)과 대조적 현상입니다. 이는 사울이 사무엘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결과였습니다(삼상 12:13-15). 그러나 비록 사울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는 못했지만(삼상 13:8-14;15:10-29) 백성들이 요구한 군사적인 면에서는 직임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결론)

1.    요난단의 믿음과 용맹이 큰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항상 믿음으로 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2.    아비 사울은 지나친 과잉 충성으로 군병들이 금식하게 하므로 오히려 큰 불상사를 불러왔습니 다. 전쟁 중 금식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고 아들조차 죽일 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분수를 지키며 절제하길 원하십니다. 모든 일을 지나치게 과잉되게 하면 반드시 더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분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믿음 안에서 해야 합니다.

010920 안익선 목사/ 참고:행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