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평안을 위하여 (시119:16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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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국에 자살률이 선진국 그룹을 놓고 볼 때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1등 아니면 2등,,,이라고 합니다. 잘 사는 일본도 자살률이 꽤 높습니다. 최근 이번 달 (9월) 일본여성들의 자살률이 전년에 비해 40% 늘었다고도 합니다. 코로나로 더 우울하기도 하고 행복하거나 평안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또 한국에는 산업 재해로 죽는 근로자들이 예상외로 상당히 많은데요… 그들의 사망원인을 조사해 보니까……. 4명 중 3명이 뇌와 심장 혈관 질환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서구화된 식생활, 흡연, 음주, 과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예방법 제1조로 느긋한 성격을 갖도록 힘쓰고 또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운동을 하더라도 즐겁게 웃으면서 운동을 하라 했습니다. 한마디로 육체의 질병을 다스리는 데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운동의 경우 승부를 건 운동은 몸에 좋은 운동이 아니라 합니다. 그것은 강제 노동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어느 곳을 가도 평안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정치권도 평안한 곳이 못 됩니다. 경제 사정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 온 세계는 평안하지 않습니다. 도산하는 중소기업, 국가 경쟁력의 약화, 가정경제의 약화, 개인주의의 팽창, 이기주의이 만연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두렵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나라나 가정이 어렵고 힘들어도 할 일은 하고, 쓸 것은 쓰고, 먹을 것은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 가도 될 곳은 가지 말아야 하고 하지 안 해도 될 일은 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위기 불감증'입니다. 우리의 가족들이 죽거나 큰 병이 들고 나라 전체가 다 위험하다고 해도… 너네나 살기가 어렵지 우리는 끄떡없다는 생각들, 바로 거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평안이 없어서 세상 모르고 살 것만 같고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갓 태어난 아기들도 울며 보채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 델하우지 대학의 소아과 교수인 리처드 B. 골드볼륨 박사는 신생아가 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신생아가 우는 것은 비어 있던 허파 속으로 산소를 한껏 들이마시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아기의 울음은 유일한 대화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생후 3개월경까지 5명의 아기 중 한 명 꼴로 배앓이를 하는데 그 이유로 또 운다'고 했습니다.
아기들은 마치 무중력 상태와도 같은 모태 속에 있다가 전혀 다른 세상에 태어난 신생아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적응이 불안하고 힘들어서 울고 보챈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시편 119편 본문에서 시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큰 평안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어지나 하는 부분에 대해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본론)
가)성경이 말하는 큰 평안이란 무엇인가?
1. 첫째, 큰 평안은 외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법 안에 있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본문은 말씀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보다 큰그릇은 없습니다. 마음은 세계를 담고, 우주를 담고, 영원한 세계를 담고, 평강의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큰그릇이 됩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몸도, 가정도, 회사도, 교회도, 세계도 평안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고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2장에서도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6: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2. 둘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라야 합니다.
문제는 평안의 근원이 어디냐? 라는 의미입니다. 요14:27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평안을 언급한 시인은 평안의 크기에 대해 말씀합니다. 시인은 그 평안을 ‘큰 평안’이라고 한 것입니다.
눅1:78- 79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으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을 내쫓고 우리의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아들 하나님이십니다. 이 평강은 시간적으로도 영원한 것입니다. 쇼트 타임의 평안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국가 간에도 평화조약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의 갈등과 싸움은 구약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유엔과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나서부터 중동의 평화가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평화가 아닙니다. 언제 어떤 이유로 다시 분쟁과 갈등으로 번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불완전한 사람끼리 만든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평안, 참 평안입니다.
영어로는 평화를 피스(Peace)라고 부릅니다. 피스는 라틴어 팍스(Pax)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팍스는 죽이고, 빼앗고, 점령해서 얻는 평화를 말합니다. 즉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얻어내는 평화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팍스라는 말 대신 샬롬(Shalom)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샬롬은 안전하 다, 정답다, 행복하다, 평화롭다는 뜻입니다. 안전하고, 정겹고, 행복한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9:6을 보면, 800년 후 즈음에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예언하기를… “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 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숱한 정복자들과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같은 사람들은 전쟁 광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깨고 전쟁을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전쟁과 반목과 갈등을 깨고 인류에게 참되고 크나큰 ‘샬롬’을 주신 분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만 참 평안을 인류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 평안, 큰 평안, 마음의 평안입니다. 이 평화가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평안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나) 큰 평안을 소유하는 법
1.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163절을 보면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57:21을 보면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겐 평강이 없습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악 가운데 가장 큰 악은 하나님으로 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고. 생각이 떠나고, 마음이 떠나고, 삶이 떠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큰 불안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러나 힘이 좀 들어도 마음만은 편한 것이 최고입니다. 죄와 동거하고 악과 연결되어 있으면 평안이 없습니다. 죄짓고 악을 행함으로써 성공하고 부자 되는 것보다 가난해도 하나님 바라보고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행복입니다. 죄는 평안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2.은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166절에서 시인은 '내가 주의 구원(구원의 은혜를)을 바라며'라고 했고, 168절에서는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이 있다면 교회 안에 있느냐 없느냐?이며 나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을 받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믿음도 점점 강해집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이야기를 잘 압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 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내게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5) 하실 때에…… 솔로몬은 치리 자로서 필요한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그 말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왕상3:10)고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솔로몬은 지혜 뿐만 아니라 전무후무한 부와 영광을 더불어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되 지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지혜도 은혜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주님께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신앙적 수준이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도 역시, 돈 명예, 출세 등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3년 동안 예수 님과 동행하다 보니 역시 믿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예수님의 믿음이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맹인을 눈 뜨게 하시고 귀신을 좇아 내시되 믿음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믿음이 귀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종종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청 하였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엔 ‘기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왜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는 생활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165절을 보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사45:7을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빛도, 어두움도, 평안도, 환난도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관하십니다. 평안을 주시는 분도,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큰 평안을 주신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또 사45:11을 보면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내게 부탁하라'고 하셨습니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을지 예견도 예측도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물으라, 내게 부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참 평안, 큰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론)
큰 평안을 원하십니까? 큰 평안이 필요하십니까?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죄에서 떠나며 죄악을 버리십시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은혜를 받길 사모하십시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께 묻고 간구하십시다. 그리하면 큰 은혜, 큰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또한 장애물도 없어질 것입니다.
롬8:28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092220 안익선 목사/ 참조:이석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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