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성령의 열매, 충성 (단 6:1-4)

호걸영웅 2020. 10. 25. 03:19

성령의 열매, 충성  ( 6:1-4)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서론)

오늘의 주제는 성령의 일곱 번째 열매인 '충성'입니다. 개역성경에 충성으로 번역된 원어는 '피스티스' 로서 믿음으로 보통 번역합니다. 표준 새번역은 '신실', 공동번역은 '진실'로 번역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은 대부분은 faithfulness로 번역하였습니다. 결국 '충성'이라는 뜻은 (어떤 사람을) 믿을 만하고 자기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충성' 혹은 '신실함'이 성령의 열매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지 못하며 믿을 만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우리가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뜻합니 다. 오늘은 성령의 열매 충성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길 원합니다.)

본론)

)한결 같은 마음과 태도
첫째로 충성은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잘 지키고 변함 없이 늘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과 계약을 맺으셨 는데, 그 계약을 끝까지 잘 지킬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한자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나 조령모개(朝令暮改) 같은 말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변덕이 심한가를 말해 줍니다. 마음에 결심한 것이 사흘이 못 가서 변하고, 아침에 만든 법이 저녁에 바뀌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한결 같지 못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기분이 내키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는 사람에게 책임 있는 일을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마음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주 떠났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보다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고 너무 쉽게 그것을 포기하곤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실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앞에 서 이루어지는 것 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먼 훗날 이루어질 약속에 대해서는 기다릴 마음조차 갖지 않는 짧은 생각이 우리를 신실하지 못한 인간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훈련시키시려고 멀찍이 약속을 두시고 그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고 나가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지만 백 세가 되도록 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변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아브라함이 사라의 계집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존경받는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백 세에 아들 이삭을 낳으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었으며, 그와 대조되는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오늘 읽은 다니엘서에 보면, 바사 왕 다리오가 다니엘을 세 명의 총리 가운데 하나로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포로 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다니엘을 시기하여 사람들이 그에게서 허물을 찾고자 하였으나 찾지를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한결 같이 공직생활이나 개인생활 에 신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의 기도의 생활을 보면서 그것을 트집을 잡고자 법을 만들고 그 법으로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 던지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건지셨습니다. 다니엘이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그의 기도의 생활이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런 기도의 생활이 포로로 잡혀왔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분주한 총리가 되었을 때도 변함이 없었으며, 지금 사람들이 법을 만들어 그를 모함하려고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기도의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결같은 신앙,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은 그의 충성스러움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런 신실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루 이틀이나 일 이년 믿어서 어떤 결론이 나는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역사가34년이 됩니다. 지난 34년 동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동과 환란이 많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는 여러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 교회가 오늘까지 지속되 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신실함 이 바로 이 교회를 오늘 여기에 있게 하였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신실함' '충성심'을 가진 성도들이 반 평생이 되도록 이 교회를 지켰기 때문에 험난한 역사를 헤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
다음으로 '충성'은 어떤 조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함을 뜻합니다. 특히 고난과 역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함을 뜻합니다.

꿈의 사람 요셉의 생애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그가 오해를 받아 장기수?로 옥에 갇혔지만, 거기서도 그는 성실한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변함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였 기에, 마침내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고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광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고, 하나님의 하시는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가지면서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 민족을 구원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신실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바로 극한 상황에서 잘 드러납니다. 초대 교회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황제들의 박해 속에서도 그 신앙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순교의 자리에 나갈 때, 끝까지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맞는 순교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 죽음이 두려워 배교하는 자도 많았습니다.
(한국의 일제 시대나 6.25 사변 때도 마찬가지)그런 의미에서 '신실' 혹은 '충성'은 인내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오래 참음도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던 사울은 처음에는 참으로 겸손하여 사람들과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는데, 점차 왕권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생기면서 그는 처음에 가졌던 겸손함을 잃었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마침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런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목사들이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는 정말 겸손하게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온 힘을 다 기울여 목회를 하다가, 교회가 성장하면서는 권위주의에 사로잡 히고 교만하여져서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결국 쫓겨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직분자들도 처음 임직 받을 때는 참으로 겸손히 교회를 잘 섬기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섬기는 자가 아닌 섬김 받는 자가 되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은 신실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실함은 겸손함과 관계도 있습니다. 처음 가진 겸손함을 끝까지 가지는 것이 곧 신실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섬길 줄 아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물 한 모금 주기 어렵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향한 삶
끝으로 충성은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삶의 자세를 뜻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말씀에 보면, 충성과 관련해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첫째는 군인의 비유이고, 둘째는 경기하는 자의 비유, 셋째는 농부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어떤 사람이 충성스러운 일꾼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군인의 비유에서는 군인들이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데 그 사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충성이란 바로 우리 자신에게 매어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려면 먼저 분명한 목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함이 곧 우리 신앙의 목표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진정으로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이 목표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 데 있습니다. 교인들이 그냥 교회만을 위하여 충성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목표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교회성장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룸입니다.

둘째 비유에서는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목표를 바로 알고 규칙을 지켜서 달리지 않으면 실격되고 마는 것처럼, 우리가 항상  하나님 나라 건설을 바라고 달려가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로 행하지 않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동성결혼의 인정).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법과 그 말씀에 충실할 때,  하나님 께서 우리를 충성된 종으로 인정하십니다.

셋째 비유는 농부가 가을의 수확을 위해 봄부터 수고하는 것에 우리의 믿음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엔 충성스러운 농부가 아니고서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없습니다. 땅은 농부가 땀 흘린 만큼 그에게 보답을 한다고 합니다.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한 만큼, 우리가 봉사한 만큼, 우리가 희생한 만큼 믿음은 자랍니다. 특히 우리가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하기 쉬운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을 할 때 마침내 큰 일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시기를 "가장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16:10)고 하셨습니다.

영국의 사상가요 역사가인 칼라일(Thomas Carlyle)이 어느 날 귀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인간 세상의 번민과 무상에 대한 해결을 요청하는 글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칼라일은 다음과 같이 회신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반짇고리를 잘 보십시오. 실이 엉클어져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옷장을 열어 보십시오. 정리가 잘 안되어 있을 것이니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너나 잘 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ev Tolstoy)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하여 선을 베푸는 일이다"
지금 주어진 작은 일들과 시간에 대해 신실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도 신실하게 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한 사람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거나 하늘나라에 들어 가서도 초라한 상급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인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인가 작은 일이라도 잘 봉사하십시오. 오늘을 놓치면 여러분의 신앙은 그만큼 열매가 부실하고 작아질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열매인 '충성'은 환경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한결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며, 처음에 배운 겸손을 잃지 않음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종으로 부름 받았다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실하게 땀 흘리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임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령의 열매인 '충성' '신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아름답게 맺혀서 "네가 죽도로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092920 안익선 목사/ 참조: 유경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