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7장 강해 (하만의 심판과 멸망)

호걸영웅 2020. 11. 13. 00:27

에스더 7장 강해 (하만의 심판과 멸망)

 

서론)

7장에선 악한 흉계를 꾸미어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 온 유다인을 다 죽이려던 하만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오히려 대신 처형되는 정말 숨막히는 순간의 상황들이 낱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제 그 숨막히는 순간들을 함께 들여다 보실까요?

 

본론)

 

) 두 번째 잔치마련과 소원을 청하는 에스더

1.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가니라 2.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고 합니다.

 

왕과 하만은 에스더 왕후가 차린 잔치에 함께 갔습니다. 에스더가 베풀었던 두 번째의 잔치였습니다.

둘째 날에도  "에스더 왕후, 당신의 간청이 무엇이오? 내가 다 들어주겠소. 당신의 소청이 무엇이오?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 주겠소."라는 왕의 세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에스더는 그녀 자신의 소원이 무엇이냐는 왕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두 번씩이나 미룸으로써(5:4, 7, 8), 자신의 소청이 왕에게 흔쾌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한 분위기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5:4).


) 자신과 민족의 생명을 구하려 한 에스더

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에스더 왕후는 "왕이시여! 내가 왕께 은혜를 입었고 왕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면, 자기 소청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왕후인 저의 목숨을 살려 주세요! 그리고  나의 민족이 다 죽게 생겼으니 내 민족 유대인들을 부디 살려 달라고 피눈물을 쏟는 심정으로 말합니다. 아하수에로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민족'을 구해달라는 말보다 '내 생명'을 구해달라는 말에 보다 충격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제국의 왕후가 생명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해야 할만큼 위험스러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었단 말인가? 하는 놀라움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왕은 왕후 에스더의 생명에 관심이 집중됐을 뿐 아니라 자기 아내를 살해하려는 음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엄청난 분누를 발하게 됩니다.


) 하만의 죄를 고발하는 에스더

4.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에스더는 자기와 자신의 겨레가 노예로 팔리게 되었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아예 멸망하여 다 죽을 위기에 놓여 있으니 이 어찌 지극히 분통하고 통곡할 일이 아니겠느냐고 왕에게 하소연 하게 됩니다. '은 일만 달란트'에 자신과 민족의 생명이 팔리게 되었다는 것을(3:-10) 염두에 두고 말하기를 유다 민족이 다 살육되면 거기에 따른 왕의 손해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각종 세금과 노역과 징병 등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서 하만의 악랄함 뿐 아니라 왕의 경제적 손실이나 국력의 약화에 대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만의 죄가 고발 당하다

5,6=5.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6.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그런 계책을 꾸민 자가 어느 누구냐고 몹시 진노하여 왕후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그 대적, 그 원수는 바로 이 흉악한 하만입니다!”라며 고발하게 됩니다.

 

"원수는 바로 흉악한 이 하만입니다" 라는 에스더의 대답이 떨어지자 마자,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사색이 되었습니다. 왕의 진노가 엄청났음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하만은 그 '어떤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에스더의 갑작스런 지적을 받자 놀라 기절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에스더 에스더 왕후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악한 모략에 에스더를 포함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내와 친구들의 불길한 예언(6:13)에 불현듯 머리를 스치며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 에스더에게 생명을 애걸하는 하만

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고 했습니다.

 

왕은 왕은 하만의 그 불쾌하고 사악한 계책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충격에 휩싸여 꼴도 보기 싫은 하만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아마 그리고 잠시 다른 신하들과 이런 죄를 지은 하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판단코자 자리를 피한 듯합니다. 하만은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음을 자각하게 되고 이제 살 길은 왕후의 자비를 구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더 왕후에게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하기 시작합니다.


) 더욱 진노를 자처한 하만

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고 합니다.

 

왕이 안뜰에서 술자리로 다시 돌아와 보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아있었던 의자에 자신의 상체를 올린 채 엎드려 왕후의 무릎 가까이 매달리듯 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중에 왕이 다시 잔칫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하만은 왕이 후원으로 나간 후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에스더에게 간청을 했었으나, 왕후가 냉정하게 외면하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급함도 더하여져서 나중에는 에스더 가까이까지 무릎 쪽으로  접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본 왕은 감히 아내인 에스더의 다리 쪽으로 바짝 다가선 하만을 보고 더욱 크게 노하고 맙니다. 그리곤 "내가 집안에 왕후와 함께 있는데도, 저 놈이 왕후를 범하려고 하는구나!" 라며 소리 질렀습니다. 하만의 모습을 에스더에 대한 '강간' 행위로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왕의 분노가 엄청남을 드러낸 말이라고 보여 집니다. 즉 처형의 명분을 강화시키려는 왕의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시들이 달려들어서, 하만의 얼굴을 가렸다 했습니다. 고대 중근동 국가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왕국이나 궁중에선 왕의 비빈이나 왕후에 대한 타인의 접근을 엄격히 금지하는 법이 있습니다 (Baldwin). 또한 당시 바사제국에선 법엔 죄인의 얼굴을 '싸는'  행위는 정죄 받은 죄인은 더 이상 빛을 볼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따라 행해졌던 고대 국가들의 보편적인 관행이었다고 봅니다(Rawlinson).

이 행동은  곧 그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충신이라고 극진히 대우했던 하만에게 왕이 왜 이토록 분노하였을까요? 먼저는 부부일체적 사고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왕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에스더를 죽이려는 자는 곧 왕을 모해하려는 것과 같다고 본 것 입입니다. 부인은 한 몸과 같기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오고 아무리 자기아래 충성한 사람이거나 총리일지라도 용납할 수 없는 국가 최대의 반역죄를 지은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의 피를 이어받고 하남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사 신부와 같은 신분이기에 예수 앞에서 지극히 귀한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신부, 곧 교회를 함부로 해치는 자를 결코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만과 같이 멸망을 하게 됩니다. 예수와 교회 , 곧 성도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저하는자는 곧 나를 영접하는것이요, 너희를 없신여기는 자는 곧 나를 버리는 자니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속한 어린아이 하나와 소자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니라(마태25)  

   
결론)나무에 달려 처형을 당한 하만

9.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라고 했습니다.

 

 왕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한 그 순간에, 왕을 모시는 내시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르보나가 더욱 그 분노를 자극하며 고발합니다.  "하만이 자기 집에 높이 50규빗의 드높은 기둥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 장대 기둥은 전에 왕을 해치려는 자들을 고발한 모르드개 같이 참된 충신을 감히 목 매달아 죽이려고 게획을 세운 것이며 그 증거가 되니아다! 라고 고발한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더 조사하고 말고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곤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만을 거기에 매달아라!"

 

왕이 하만을 어떻게 처형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결정을 하지 못하던 찰나, 하르보나의 말을 듣자 하만이 자기가 세운 장대에서 죽는 것이 가장 합다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곤 하만을 모르드개를 달기 위하여 세운 높은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것을 명령하게 됩니다.

 악한 하만이 결국 자신이 판 함정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10.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고 했습니다.

 왕후와 충성된 모르드개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한편 구약 성경 말씀엔  나무에 달아 죽은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높은 나무에 교수형에 처하는 것은 바사제국 뿐 아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돌로 쳐죽이는 사형 외에  교수형 에 처한 경우에도 구례가 있습니다. "나무에 달아 죽이거든 그 시체를 나무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니라"(신명기 21:23)고 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적용시켜 갈라디아 3: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우리를 속량(죄값을 치루게)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로마제국도 십자가 사형제도를 도입하여  십자가 나무를 만들어 사형수에게 그 나무를 지고 처형장 까지 가게 한 후,  자신의 죄 패를 목에 걸고 그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게 함으로써, 엄청난 죄에 대한 처벌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우리 예수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는 십자가 달려 죽을 때 온 인류를 대신 진 인류 역사상 가장 크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의 온갖 악하고 더러운 죄를 대신 다 진 순간이었기 때문에 온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하나님도 그 순간, 독생자 되신 예수를 외면하고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천지가 캄캄해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공로로 인하여 결국 우리가 이제 의인 된 것 입니다. 왕의 분노가 하만의 죽음로 풀어지듯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진 것입니다. 우리 예수께선 곧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고로 그 십자가 은혜를 더욱 더 감사해야 합니다.

 

102720 안익선 목사/ 참조: 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