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에스더 9,10장 강해 (부림절의 역사)

호걸영웅 2020. 11. 13. 00:34

에스더 9,10장 강해 (부림절의 역사)

서론)

바사 왕의 도성 수산성에서는 선포된 두가지 조서가 있었습니다. 첫 칙령는 113일에 선포된 십 이월 13일에 유다인을 다 죽이라는 것이고, 둘째 칙령은 3 23일에 선포된 조서로 그 날에 유다인들은 스스로를 방어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희안한 조서였습니다. 둘 다 왕의 조서에 허락된 것이기 때문에 대적자들은 끝까지 숫자와 왕을 믿고 멸절시키려 하고  유다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움에 의지하여 대적자들을 멸절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 싸움은 영과 육, 선과 악, 성령과 악령, 하늘의 세력과 땅의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그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본론)

) 두 세력간의 싸움이 있던  '그 날'(1-16)

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드디어 열두째 달인 아달월 십삼일, 이 날은 하만이 내린 조서에 따라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기로 결정된 날(3:13)임과 동시에 모르드개의 주도로 쓴 조서를 바탕으로 대적들에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판승부의 날이었습니다(8:11, 12).

그런데, '유대인을 제거하려고 한 그 날' '하나님의 심판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모르드개에 의해 반포된 조서에 따라서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학살하려는 자들을 오히려 죽일 수 있게 된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4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유대인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관리들의 도움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라고 했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모든 지방의 각 성읍에 사는 유다 사람들은 성읍별로 모였습니다. 유다인들은 결코 선제 공격을 하지 않고 자신들을 공격을 해오는 자들 만을 살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적들은 자기 세력의 후원자인 하만이 이미 처형을 당하였기에 매우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또 그들은 유다인 왕후와 총리 모르드개의 세력이 이미 득세하였기에 위축되었습니다.  유다인의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고로 각 지방의 제후들과 관리들은  새로운 실권자로 모르드개가 무서워서라도 유다 사람들을 도왔다 했습니다.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는 데 민감한 관리들이 유대인들 편에 서기로 재빨리 결정했습니다.

 (2)대적을 진멸한 유다인들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라 했습니다.

이제 기세가 등등한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원수를 다 칼로 쳐 죽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도성 수산에서만도 그런 자들을 500명이나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7절은 하만의 열 아들도 함께 죽여  시체를 '수산'에 매달았습니다(14).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대적의 생명과 재산을 아울러 빼앗진 않았습니다(8:11).  당시 유대인들은 이같이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 대적들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 행위가 결코 더러운 이익을 탐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님을 확실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약500년 전에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난 후 탐심에 빠져 전리품을 취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사건(삼상 15:17-23)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3). 완전한 진멸,잔당들을 처리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라고 했어요.

 도성 수산에서 죽은 사람의 수는 국가의 중요한 일은 '역사 실록(6:1)에 기록되어야 했으므로 이 보고를 받은 후 왕이 에스더 왕후에게 말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도성 수산에서만도 그들의 원수를 오백 명이나 죽였고, 하만의 열 아들도 다 죽였소.  이제 당신의 남은 소청이 또 무엇이 더 있는가? 도 남아 있다면 그것도 물론 내가 그대로 들어주리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던 것입니다.

13.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14.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라고 합니다.

 에스더가 대답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이 내일 하루 더 이 조서대로 시행하도록 하여 달라고 합니다. 왕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수산에는 또 조서가 내렸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높은 나무(7:9, 10)에 달렸습니다. 살아 남은 다른 백성들에게 큰 경고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의 허락을  받아 그 다음날에도 하만의 열아들을 나무에 매달아 공개처형하고 300명을 더 살육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말렉 족속의 씨앗들을 대부분 진멸하고 맙니다.

(4). 재산은 손대지 않고 총 칠만 오천 명을 죽임

15.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바사에 유다인이 약 70만 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다인들이 아말렉 족속을 죽인 수가 수산에서만 총 800명이요, 지방에서 75,000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아말레 세력은 8만 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 부림절(17~끝)

아달월 십 삼일은 하만의 아말렉 족속을 진멸한 날로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된 날입니다. 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아달월, 그러니까 12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서 아말렉 족속을 멸한 날로서 15일까지 3일간 축제로 지키는 기간을 삼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첫날은 온 나라에서 대적하는 아말렉을 멸한 날이요, 둘째 날은 에스더의 소청에 의해 수도인 수산성에서만 하루 더 연장하여 멸한 날입니다. 19절 이하엔 부림절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있습니다. 19절 이하를 다시 한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실까요?
네....그래서 지방에서 지킨 14이의 축제와 도성 수산에서 지킨 15일의 축제를 기념하여 후손 대대로 14~15일간 양일을 기념 및 축제기간으로 정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참으로 큰 축제들을 열며 부림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2월 중순경에 성탄절 대신?)

 

)10장 내용

  1.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 마지막 장인 10장엔 에스더의 이름은 더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인 아하수에로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고 모르드개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에스더의 기록이 마무리 됩니다. 결국 10장은 아하수에 로 왕의 공을 크게 본 것입니다. 그는 비록 귀도 얇고? 주색을 밝히고? 부하들에게 중요한 일들을 맡길 때 신중하지도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결국은 하나님 편에 서고 정의의 편에 선 것입니다. 그 점을 높이사야 합니다. 아하수에로는 오랫동안 통치한 왕은 아닙니다. 20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종말은 그리 명예롭지는 못했습니다. 그리스와의 제2차 전쟁인 살라미스 해전에 대패하고 돌아옵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바사는 약 1000여 척의 배를 투입하였으나 약 370 여 척의 배를 가진 그리스 군에 대패합니다. 그리스 배는 40척이 파손되었으나 바사의 배는 200척이 불타거나 파손 되었습니다. 아테네 남부의 살라미스 해협은 그 지나가는 길목이 매우 좁아져서 숱한 배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배들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이 갇히고 서로 끼어 버리기 때문에 맘대로 도망가거나 움직이지 못해 전쟁을 제대로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사의 배들이 서로 들러 붙은 상태에서 그리스 군대가 말을 타고 이 배와 저 배 사이를 마구 달려가며 전투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선말기 이순신 장군은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서 비슷한 전술을 사용하여 13척의 배로 왜군의 배 330여척을 맞붙어 싸워 물리친 해전입니다. 당시 왜선 31척의 왜선이 침몰하고 200여척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쳤습니다. 결국 왜군 해군은 한양으로 치고 올라가는 왜군 육군과 합류하려는 작전이 실패하면서 서해안 정복과 전라도 정복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때가 15971026일이었습니다. 침략의 원흉인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다음해 918일에 사망하게 됩니다.

명량해전의 전투 장소는 울돌목이라는 해협인데 바닷물이 밀려 오거나 가다가 여기 통로가 좁아서 바닷물이 거세게 해변 바위들에 부딪혀 울음소리 같은 것이 난다 하여 울돌목이라 합니다. 살라미스 해전이 비슷한 경우입니다.

영화 300은 그의 그리스 2차 전중 스파르타의 육군 300명이 바사 육군과 싸우되 다 전사하기 까지 싸운 용맹함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리스와 1차 전은 아하수에로의 부친 다리오가 벌인 전쟁으로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사건을 포함합니다. 메대 바사엔 3명의 동명이인인 다리오 왕이 있었는데 아하수에로의 부친은 두번째 다리오입니다)

 

아무튼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는 독립을 꾀한 그리스와의 2차 전쟁에서 패하고 그 책임을 물어서인지? 두 신하들이 그를 살해하고 그 아들 아닥사스다를 왕으로 세웁니다.

 

한편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는 유다인이자 바사의 고관이었던 에스라 학사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의 통치와 안정적인 문화 및 종교적 정착을 위해 크게 배려한 왕이 됩니다. 아닥사스다도 유대인들에 대한 친밀한 정책을 쓴 사람입니다. 이런 배경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영향력이 지대했을 것입니다.

끝으로 모르드개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에스더서는 마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모르드개 역시 아하수에로에 못지 않은 유대의 영웅이요 민족적 신앙적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는 일에 지극히 공이 있을 뿐 아니라 유대민족을 구하도록 에스더를 지도한 큰 업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포로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약소민족 유다 민족에게 최고의 통쾌한 승리를 안겨 준 기쁜 날이 바로 부림절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숱한 핍박과 오해와 차별을 받고 살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 예수께서 오시면 반드시 우리의 모든 슬픔과 눈물과 원통함이 눈 녹듯 다 해결될 날이 올 줄을 믿습니다. 그 날이 오기 까지 더욱 인내하고 고난을 지혜롭게 이겨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111020 안익선 목사/ 참조: 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