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의 교훈(누가복음 18:31~34)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서론)
이번 주일은 기독교계에서는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고 합니다. 부활주일 전에 있는 기독교의 주요 절기 중 하나입니다. 종려주일과 부활절 사이엔 고난주간이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 가시기 전 받은 치욕스러운 고난들을 묵상하며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근신하는 주간입니다.
그 고난 받기 전, 예수께선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는데 그 때 많은 인파들이 종려(야자수)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환영하였던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호산나란 말은 “이제 구원하여 주옵소서!”라는 의미의 말이라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부활주일을 앞에 두고 2~3일 동안 금식하며 이 일 후, 고난기간 동안 금식하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고난주간을 정하여 기도모임이나 특별한 집회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고난주간이라 하여 특별한 행사를 하지는 않습니다만,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들을 묵상하며 또 우리의 삶이 좀더 경건하고 거룩해져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에 즈음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길 원합니다. )
본론)
가) 고난의 시작이 된 종려주일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보아라, 이제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 동안 예루살렘을 몇 차례 오르내리셨지만 이번 방문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거기에 올라가면 선지자들이 이미 구약에 서 예언하시고 기록한 대로 메시아가 이방인들, 즉 로마인들에게 넘기워져 희롱과 능욕과 침 뱉음, 그리고 채찍질을 당한 다음 결국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언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무슨 비유를 말함인가? 했을 것입니다. 현실이 되리라고는 꿈에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태어나시고 죽으실 것인가를 700여년 전에 세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2편에서, 예수님은 사람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여 사람들의 훼방거리와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고, 날카로운 쇠에 찔려 죽게 될 것이며, 그분의 겉옷과 속옷을 제비를 뽑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상하고 찔릴 것이며, 우리의 모든 죄악을 홀로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그 예언대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거나 돌발적으로 일어날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 정해 놓으신 길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에 칼을 들고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 대적하여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자라고 믿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신다고 하자 '지금이야 말로 그때가 왔구나!' 하고 마음으로 반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예루살렘에 가면 이방인에게 넘겨져서 능욕과 침 뱉음과 모욕을 당하고 채찍질을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칼을 손에 든 국민 영웅?과 메시아를 꿈꾸던 제자들의 귀에 그 말이 믿어지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3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한걸음씩 발을 옮겨 놓으셨고 그 걸음걸이는 바로 우리 위해 우리 모든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발걸음이는 점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율법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어린 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먼저 제사장에게 어린양을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 손을 얹고는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끝나면 그 어린양을 제사장에 맡겼습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은 주인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죽어 제단에서 불살라 져야 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어린양이 되셔서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죄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신의 어렸을 때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렸을 때, 자기 방 청소를 잘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어머니가 들어와서는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냅니다. "너 어떻게 방을 이 모양으로 정리하니? 침대는 이게 뭐니? 양말은 양말대로, 옷은 옷대로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되겠어?" 하고 나무랐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때마다 이 목사님은 주저하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엄마, 내가 형보다는 나아요. 형 방에 한번 가보세요." 사실 형 방은 자기 방보다 훨씬 더 지저분합니다. 그래서 형과 비교하면 자기 방은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두말하지 않고, 아이의 팔을 끌고는 아래층에 있는 엄마 방으로 내려간답니다. 엄마 방에 가보면 침대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습니다. 무엇 하나 흐트러진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엄마가 큰 소리로 "내가 네 방을 깨끗이 치우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치우라는 거야. 네 형처럼 하라는 것 아니야. 이 방처럼 치우라는 거야." 하고 호통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고 느낄 때도 많지만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맞추어
본다면 …우리 모두가 심각하고 끔찍한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나)바로 내 죄 때문에 받으신 고난
나귀 새끼를 타고 묵묵히 흔들리며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짊어지고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묵묵히 향하시는 아들 하나님이십니다.
한때, 네덜란드의 화가 램브란트(Rembrandt)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예수님을 그린 다음 그 주변에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치며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조하는 군중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군중들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얼굴로 그렸습니다. '이 군중 가운데 내가 있다.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장본인이다.'라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습니다. 내가 예수를 못 박는 이 무리들과 한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겉잡을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대성통곡을 했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오래 믿었든, 늦게 믿었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한두 번쯤 은 깊이 실제로 인식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것 때문에 십자가를 내 품에 안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이런 변화를 전혀 모른 채 신앙생활 하는 것은 십자가를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받는 고난
예루살렘으로 묵묵히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또 무엇을 느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느껴야 합니다. 너무나 크고 풍성하신 은혜, 우리 입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은혜를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의인 되게 해 주신 은혜입니다. 십자가에서 죄 없는 예수님은 죄인이 되시고, 죄 많은 우리는 의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를 들고 서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로 영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하셨어요.
옥한음 목사님께서 어느 검사로부터 들은 말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검사가 옥목사 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형무소에서 가장 기뻐하는 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옥목사는 언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형무소 시설이 좋다고 해도 거기서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형을 3개월 받고 들어온 사람이 이제 나갈 일이 가까이 왔으므로 제일 기뻐할 것 같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형무소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사형수로 있다가 무기수로 감형된 사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몰라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사형 집행 날을 기다리던 사람에게, 사형 집행이 중지되고 비록 감옥에서 나마 종신 살 수 있는 무기형이 선고되면 너무 기뻐서 소리지르며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나 이제 살게 됐어요. 나 이제 살게 됐어요." 하면서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공감하시겠죠?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합니까? 죽을 자가 산다는 것은 엄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영원히 지옥불에 던져질 나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 일을 누가 이루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독생자 아들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우리 대신 죽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축복과 행복을 누리도록
허락하셨으니 어찌 큰 사랑과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어느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면서 쓴 글입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이제야 조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가 자주 아픕니다. 이틀째 계속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토하고, 콧물도 계속 흘러나와서 코 밑이 헐었습니다. 그런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서 끙끙거리는 아기를 돌보느라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이면 피로를 느낄 겨를도 없이 우리 아기 숨 잘 쉬도록 코가 뚫리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음도 이렇겠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 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오늘입니 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마음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능하다며 대신 아프고 대신 고통당하고, 대신 죽기까지 할 수 있는 부모 마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49:15=사람의 어미는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잊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아들조차도 기꺼이 십자가에 달리고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 쓰고 침 뱉음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요 은혜입니까?
결론)
1. 그리고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로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시려고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그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 뜻대로 구하면 다 들어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친밀감을 가지고 나아가, 마치 어린아이가 그 부모에게 매달려 떼를 쓰듯이 “아버지, 이런 것을 해 주세요!”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들의 생명까지 주신 이가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습니까?
2. 오늘 다시 한번, 예루살렘을 향해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자 발걸음을 옮겨 놓으셨던 예수님, 그리고 그곳에 가셔서 십자가에 손과 발을 내려 놓으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피와 물을 흘리시고 옆구리에 창을 맞으시고……기꺼이 자기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참되게 고백하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놀라운 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께 내 마음과 내 삶을 드릴 수 있는 고난주간 되길 바랍니다.
032321 안익선 목사/ 참조:옥한흠 목사 , 미션 설교예화 & 김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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