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고린도전서 1장 강해

호걸영웅 2021. 6. 3. 05:04

고린도전서 1장 강해(고린도 교회의 문제들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10가지)

 

서론)

 고린도 교회 안에는 10가지 정도의 그릇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16개월동안 머물러 심혈을 기울였던 그 교회가 어지럽다는 소식을 들었던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게 됩니다. 이 편지는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이 속속들이 배어 있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아비의 마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갖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을까요?

 그중에 첫번째 문제는 "분열"의 문제였다. 바울은 교회가 이미 4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래서 그들의 분열과 파벌을 잠재우고 교회가 하나될 수 있도록 하나의 묘안을 제시해야 했는데… 그가 제시한 방법을 들었을 때에 사실 아무도 대꾸할 수 없었죠.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바울의 선교관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죠.

 

2.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문제를 바울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바울은 글로에에 속한 사람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소식을 듣자 그들의 분쟁에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기들을 지도해준 지도자를 따라 4개의 분파로 분열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했던 바울을 따르는 바울파, 바울의 뒤를 이어 부임하여 교회를 성장시킨 아볼로파,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베드로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게바파,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리스도파, 이렇게 4개의 분파로 갈리어 있음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한 몸인 교회가 여러 개로 나뉠 수 있느냐며 책망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고린도 교회에 간 것은 자신이 침례를 주려고 간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러 간 것이며, 더욱이 고린도 교회에서 직접 침례를 준 이는 몇 명 안 된다고 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침례를 준 것이 아니라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준 것이라 했습니다. 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그랬습니다.  고로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 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론)

)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만을 어떻게 잠재웠는가?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또한 고린도 교회의 성도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언급하면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도 자신을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언급합니다. 그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자기들은 원래 미천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을 자녀가 될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풍성히 부어주시고,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신분이나 직업이나 사회적으로 고귀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라는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그리스의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와 더불어 고린도는 그리스에 속한 남부의 항구 도시였기 때문이죠. 로마는 이 세 도시들을 묶어서 하나의 속주로 다스렸는데, 그 속주의 이름을 "아가야"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아가야의 수도가 바로 고린도였던 것이죠. 당시 인구 40만의 거대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가 그렇게 큰 도시가 되었던 것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가 고린도를 쳐들어 왔을 때에 고린도가 로마에 끝까지 항전을 벌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때 도시가 완전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파괴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 살아남은 자들은 다 포로로 잡아가서 노예로 넘거버렸죠. 그래서 수백년 동안 고린도는 폐허도시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로마가 전쟁을 마친 퇴역군인들을 위해, 잿더미로 변한 고린도를 그들 처소로 허용해줍니다. 그러자 전쟁 때마다 텐트를 치고 다리를 놓았던 퇴역군인들은 자신이 평소 때 하던 기술들을 총동원하여 고린도를 번드르르한 도시로 만들게 됩니다. 장삿군들이 몰려 듭니다. 사치 향락이 물들게 됩니다.  고로 그다지 대단한 신분의 사람들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을 첫째로, 높은 헬라 철학을 공부한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둘째로 그들은 지위가 높은 권세있는 정치가들도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셋째로 그들은 상류계급에 속한 귀족출신도 아니었음을 깨우쳐 줍니다. 하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지혜롭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별도 없고 높은 신분이나 지위도 가지지 못한 자들을 선택하시어 지혜롭고 강하고 가지고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심으로 자랑하지 말라 합니다.

 

) 바울은 왜 고린도에 갔을 때에 약해지고 두려워하고 떨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고린도에 갔을 때에 약해졌고 두려워했으며 심지어 떨었다고 증언하였다. 왜 그랬을까? 사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갔을 때 그는 거의를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드디어 하나 둘씩 교회를 개척할 수가 있었죠. 하지만 모두다 규모는 작았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 때에 고린도에서 엄청난 규모의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디.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해서 고린도에서 상당히 큰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에 약해졌고 두려웠고 떨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린도에 오기 직전 바울은 아덴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깨달은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헬라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죠.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창조의 하나님을 고상하게 전하는 철학적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 실패였죠. 그렇게 유명한 헬라 철학자들의 도시에서 전도의 열매를 거의 맺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아덴에 가기 전에 머물렀던 지역들은 작은 도시였지만 그래도 거의가 다 교회를 세울 수 있었죠. 하지만 그가 2차전도여행하면서 교회를 세우지 못한 곳은 오직 아덴(아테네)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때에 비로소 고상한 척하며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는 전도방식의 복음전파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음으로 선택한 고린도에 왔을 때에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의 도시에 왔으나 헬라 철학을 이야기하자니 선교의 열매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구속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단도직입적으로 전하자니, 과연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나타나지 않던 주께서 밤의 환상 중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격려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9~10). 그러자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만을 중점적으로 증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1 6개월 만에 고린도 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크기의 교회를 개척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10가지 일은 무엇이라 했는가?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전했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에서 이루신 일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도 바울에게는  "십자가"는 소극적인 것들을 처리하는 도구이자 장소였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옛사람과 옛창조에 속한 것들을 포함하여  10가지 문제를 끝내셨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옛사람과 옛창조에 속한 것들이 살아있는 한 사람들은 자기자랑고 교만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처리된 것이죠. 그러므로 이것을 믿고 실천하는 자들 중에는 결코 자신을 자랑하거나 교만한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옛사람과 옛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끝내셨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끝내 버린 것들은? 

 

1)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죄들을 끝내셨다(7:18~20, 8:1~2, 6:22, 1:7, 1:14). 예수께서는 자기의 육신에 죄를 정한 후에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음에 넘기셨죠(8:1~2). 한 마디로 온 인류의 죄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누구나 둘째사망의 고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에게 들어온 죄 된 본성(원죄)으로부터서도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6:22). 그래서 오늘도 성령을 좇아 행하는 모든 자들을 주님은 죄 된 본성에서 해방시키시고 계신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8:1~2).

 2)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이기시고 처리하셨죠(요일3:8, 2:14, 2:15).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죄 없는 예수님을 그가 십자가에서 불법적으로 죽게 했기 때문이죠. 그러한 사탄의 불법적인 행동은 결국 자신이 가진 사망 권세를 내어놓게 하였다(2:14). 그래서 그때 이후 사탄 마귀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께 빼았기게 되었고 그것을 넘겨받은 예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갖고 계십니다(1:17~18). 귀신들도 자신의 최고사령관이 예수님께 패하였기 때문에 무장해제당하고 맙니다(2:15).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은 위임 받은 예수님의 권세를 이용하여 귀신을 쫓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3)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그날 십자가에서 세상도 함께 처리하셨다(요일2:16, 6:14, 요일5:19,4). 사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들어 그의 말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한 권한은 마귀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4:4). 그때 이후 온 세상은 마귀 수중에 들어갔습니다(요일5:18).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처단하심으로 세상도 같이 처리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와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들인데 이 모든 것이 그날 처리됨으로 이런 것들이 더이상 성도들을 주장할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요일2:16). 

4)  넷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육신을 처리하셨다(8:3~4, 5~6, 7~8, 12~13, 5:16~17). 예수께서는 자기의 몸에 인류의 죄를 전가 받으신 후에 십자가로 가져가셨고 그 몸을 죽음에 넘기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죄 된 본성으로 장악된 육신은 죽음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의 육신은 더이상 우리 자신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처리된 육신의 욕구나 정욕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전삼고 거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가야 합니다(5:16~17).

 5) 다섯째, 그리스도께서는 옛사람도 십자가에서 함께 처리하셨다(6:6, 4:22~24). 옛사람이란 타락한 본성을 따라 행하는 옛날의 나 자신을 가리키며 여기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날 십자가에 자신의 육신을 못박으셨고,  그리고 그 육신이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사는 옛날의 우리 자신, 그것이 옛사람인데, 예수께서 그날 옛사람도 같이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못박혀 죽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나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우리는 새 사람입니다. 

 6) 여섯째, 그리스도께서는 그때 자아도 함께 처리하셨다(2:20, 16:24~25). 여기서 '자아'란 사람의 혼을 가리킨다. 그런데 뱀이 하와를 꼬일 때에 혼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만 사탄의 말에 미혹되어 비정상적으로 커졌습니다(탐욕으로 거만해져). 그래서 뱀의 말을 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인간의 자아도 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자아' 곧 인간의 혼은 지금도 더러운 본성이 지배하는 육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때에 우리의 자아도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주장해야 합니다(2:20). 예수께서 타락한 혼도 같이 못박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자아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7)일곱째,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처리하셨다(3:19, 13, 23, 4:9~11, 7:1~2). 다시 말해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따라 자기자신을 죄값으로 내어주셔서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율법의 정죄나 요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8) 여덟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옛 창조를 끝내셨다(고후5:17, 21:1, 벧후3:20~13). 그리스도께서는 옛 창조에 속한 것들 모두가 같이 부패했고 같이 사탄의 본성이 주입되었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것을 끝내시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시기로 하십니다(고전15:45). 그러므로 교회는 이전에 없던, 전대미문의 새로운 유기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끝내시고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셨기 때문이다(고후5:17). 그러나 옛창조에 속한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전히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21:1, 벧후3:10~13).

 9) 아홉째, 그리스도께서는 그날 사망도 함께 처리하셨다(고전15:20, 11:25~26, 고전15:55, 2:1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실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가 마귀의 권세를 파괴해 버리셨습니다. 그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사탄에게서 빼앗으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그 열쇠를 사용하여 사망과 음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셨는데, 이것을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사망이 계속해서 그를 붙잡아 둘 수가 없게 됐습니다.

 10)열번째,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저주도 함께 처리하셨다(11:26~28, 17:5, 2:2, 3:13, 3:10, 22:3). 저주란 죄로 인하여 내려진 징계들을 가리키죠. 이것들은 한 마디로 재앙이며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생명의 활동을 방해하고 기쁨과 복을 앗아가는 것들이죠. 그렇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때에, 주께서는 죄뿐만 아니라 모든 저주까지 동시에 파괴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인하여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우리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저주로부터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9). 

 

결론)

왜 바울은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려고 했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말해야 했을까? 그것은 십자가에서 모든 악한 것들이 다 처리되었거나 끝장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소극적인 것들의 값을 처리하신 장소가 바로 십자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은 죄들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 돌아올 때, 그 순간 우리는 무죄한 영혼을 소유하게 됩니다. 고로 우리 몸에 남아있는 악한 세력, 의심하는 세력, 죄의 세력들이 우리에게서 나가도록 명령하고 추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품과 언어와 행동이 사탄에서 벗어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도구가 되면 능히 그들의 세력을 이겨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분열도 사라지고, 정욕도 사라져,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게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며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제시한 분열의 최종 해결책이었습니다.

 

060121 안익선 목사/ 참조: 정병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