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고린도전서 2장 강해(하나님의 지혜)

호걸영웅 2021. 6. 24. 01:33

고린도전서 2장 강해(하나님의 지혜)

 

서론)

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에서 고린도교회가 가진 파벌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파벌이 일어난 이유는 세상의 지혜로 타인들의 믿음을 판단하고 자신의 믿음의 방식을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2장에서는 1장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1-5절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6-16절 성령으로 보이신 것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1-5)

 

먼저 바울은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비교합니다. 1절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을 증거를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1)이라고 표현을 사용합니다. 당시 그리스(헬라)인들 의 철학사조는 언변과 수사학적 능력을 최고로 인정했습니다. 내용이 어떠하든 번지르한 말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언변력이야말로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말발?)

고로 1:10에서 사용된 ‘분쟁’이란 단어는 정확하게 그런 류의 언변력을 내포합니다. 세상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그것이 복음인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절대적인 것처럼 교묘하게 세뇌? 내지는 논리 속으로 유혹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면서 그러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2)만을 전하였다 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어요.

 

4절에서도 동일하게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죠.

 

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5절의 표현대로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서 왔다 라고 했습니다.

 

고로 4절 말씀과 5절을 비교해 본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4)을 말씀하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1-5절의 내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누군가의 달변이나 수사학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확신하게 되었고, 입술로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설교자들이나 부흥사의 투박한 말 혹은 웅변적이고 달변적인 말로 일관한다던지, 혹은 전도할 때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을 계속 외치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이나 믿음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전도할 때 나의 언변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함께 하시고, 주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 성령으로 보이신 것(6-16)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표현했던 성령께서 보이신 것을 다시 설명해 나갑니다. 

1)6-9; 감추어진 비밀

 

6-9절에서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비시킵니다. 인간의 지혜가 무엇일까요? 8-9절 말씀에 대비시켜 본다면 세상의 지혜는 권력과 힘, 물리적이고 부유함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강자의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철저히 낮아지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6절에 의하면 ‘이 세상의 지혜’ ‘통치자의 지혜’이며, 13절에서는 ‘사람의 지혜’이고, 14절에서는 ‘육에 속한 사람’의 지혜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지혜는 1:24에 의하면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의 도’ 또는 2:13절에 의하면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 또는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즉 성령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말하는 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그것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볼 때, 그들의 반발이나 거절은 정말 이기기 힘이 듭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고, 그냥 아멘!이 되는데…… 그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복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개방되어 있지만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 1:21에 보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고 찬양하는 것처럼 평범한 것이 누군가에겐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기적 중의 기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인구 대부분이 예수를 메시야이 심을 부인합니다. 그들의 성경엔 이사야서 53장이 없다고 합니다. 고로 복음은 누군가 들에겐 감추인 비밀입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 지혜자들을 이렇게 다시 정의 하고 있습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2)10-16,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바울은 10절부터 16절에서 영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은 곧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을 말합니다.(10) 성령이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고린도 전서와 로마서에 있는 내용만으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먼저 성령은 10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영이 사람의 마음을 알 듯,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아신다는 했습니다. 로마서 8장과 고린도전서 2:10-16을 비교해 보십시오. 너무나 비슷합니다.

 

*일단 고전 2:11과 로마서 8:27을 보겠습니다.

고전 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어서 롬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성령은 양자의 영이며,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고전 2:1과 롬 8:14-15을 비교해 봅시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8:14-15 /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버지=창조자, 우주의 운행자, 구원을 베푸시는 자를 의미)

 

고로 고린도전에서는 은혜를 강조하고, 로마서에서는 양자의 영을 강조합니다. 강조하려는 의도나 독자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온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남겨져 있습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고전 2:14과 롬 8:5을 살펴보겠습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했고,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13절 후반부에 기록된 ‘영적인 일은 영적 것으로 분별한다’는 뭐 이상한 성령의 능력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영적인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거나, 어떤 미래의 예언 같은 것을 영적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그러한 부분에 대해 절대적으로 부정하거나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철저히 진심으로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아는 것, 즉 예수님의 대속 사역을 믿음으로 받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을 알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진정으로 바울이 말하는 영적인 것입니다.

 

14= 앞선 구절들과 비교할 때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일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1:18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니 고전 2:8에 나온대로 세상의 지혜를 가진 통치자들(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학자, 로마의 정치가와 군대)은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던 것입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인간의 눈으로 알 수 없는 십자가, 교만한 자들에게는 절대 볼 수 없는 십자가,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아낼 수 없는 십자가.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십자가를 보고 깨닫고 소유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결론)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오래 전에 예비하신 구원의 지혜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요 참으로 찬송할 일이요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값어치를 소유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귀하며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선지자 하박국은 이렇게 선포한 적이 있습니다.

 

  1.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4.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것이 없고 저것이 없더라도 하박국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 그리고 그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061021
안익선 목사/ 참조: [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