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고린도전서 4장 강해(나를 본 받으라)

호걸영웅 2021. 6. 24. 01:34

고린도전서 4장 강해(나를 본 받으라)

 

서론)

3장은 1~2 장 부분과 내용이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아 건너 뛰고 4장으로 넘어 갑니다. 4장은 1~3장 부분의 고린도 교회의 잘못들에 대한 꾸지람의 일부라 볼 수 있습니다.

 

본론)

)충성된 전파자 바울과 동역자들

[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종들]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의 복음은 구약시대에는 감추었다가 신약시대엔 계시된 비밀의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었으니, 그들은 그 복음을 충성되이 가르쳐 전파하였고 신약성경들은 그 사실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또 오늘날도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충성(Faithfulness)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믿을 만한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입니다(5:22). 오늘날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에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3-4]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바울은 사람의 판단을 크게 중요시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판단에 너무 마음을 쓰면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없습니다. (모두를 100프로 만족시킬 순 없다) 바울은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도 범사에 양심적으로 살고 신실하게 삶으로써 자책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바울은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성도들도 그래야 합니다.

 

사탄의 큰 전략의 하나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힘을 빼어 하나님의 일을 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낙망은 큰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말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충성해야 합니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드러난 이단 사상이나 죄는 판단하고 지적하고 책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만, 복음 사역자들의 진실성과 충성의 정도 같은 것은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말이 됩니다.

오히려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고 철저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니 그때 주의 선하고 충성된 종들은 위로와 칭찬을 받을 것이며, 악하고 불충성된 종들은 책망과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다른 이의 드러나지 않는 점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본을 보인 바울과 아볼로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말씀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전통사본)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사실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에 불과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성도들이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을 지나치게 생각해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신의 무익함을 항상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자들을 높이어 파당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교회의 일치와 단합을 지켜야 합니다. 파당을 만드는 마음은 곧 교만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대적하거나 판단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의 큰 결함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크게 생각하며 자기의 위치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자기 위치를 지키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합니다. 참된 성도의 모습은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누가 성도를 세상 사람들 중에서 구별하셨나요? 또 누가 직분자들을 성도들 가운데서 구별하였나요? 우리를 구별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여 부르셨고 또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이들에게 교회의 직분까지 주셨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직분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뜻 가운데서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들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세상을 떠나갈 수밖에 없죠. 건강도 우리의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그것이 우리를 떠나갈 수 있고 부모님도,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다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섬기게 된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죄사함 받고 천국과 영생을 기업으로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성령을 받은 것 등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영적인 것들과 육신적인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죠. 본래부터 우리의 소유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부하기에 교만함

[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은 물질적 부요함과 풍족함, 또 성도로서의 자유와 특권을 누리고 있었죠. 물론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 서로 분쟁하고 파당을 만든다면 그들의 그 부요와 풍족, 그 자유와 특권은 복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사람을 겸손케 하는 가난과 속박이 그들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밑바닥 천한 곳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사도 바울의 형편은 고린도 교인들의 형편과 정반대였습니다.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맡기시며 기적 행할 능력을 주신 자이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존귀한 직분이었고 교회의 기초였습니다( 2: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존귀한 직분자 사도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자를 가장 미천한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상의 구경거리,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신 듯 보였습니다.

 

[10-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사실 사도 바울 일행의 비천함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미련한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고 비천한 자가 되었죠.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 때문에 지혜를 얻고 힘을 얻고 존귀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이 인류의 구원이 되었듯이, 주의 종들이 비천함을 당하며 이룬 사역들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복에 이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일행이 지금까지 당한 고난을 증거하며,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었고 매맞았고 거처할 곳이 없었고 손으로 일했고 비방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였고 참았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한 마디로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비천함에 두신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그들로 겸손케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그들로 하나님과 내세에 소망을 견고히 두게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셋째로, 그것은 복음 사역자들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길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우리도 이 세상의 탐욕이나 물질만능처럼 헛되고 무가치한 것들 보다는 오는 세상의 참된 가치를 알고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으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내세의 소망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사랑의 책망임을 고함

[14-16]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 바울이 자신의 당한 비천한 형편들을 말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권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하여 설립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선생들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그의 낮아짐, 그의 비천함, 그의 겸손, 그의 충성, 그의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17-21]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서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이론보다 실제적 삶에 있습니다. 참된 교회에는 교인들의 바르고 선한 인격과 삶이 있고 또 그들의 거룩한 헌신과 사랑의 봉사에 있습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4장의 교훈은? 

첫째로, 교회는 복음 사역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과 기독교 복음의 청지기들로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충성되고 신실한 복음 사역자들과 교회 직분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단점이나 결점들에 대해 주의 재림 때까지 함부로 판단하는 습관을 가져선 안 됩니다.

셋째로,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서로를 대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모든 교만과 자랑은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넷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복음 사역을 하며 충성했던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 예수 자신께서 가신 길이었고, 또 그가 친히 교훈하신 바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24).

복음사역의 일군들은 복음을 통해 호의 호식하고 명예를 누리고 영광을 홀로 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본, 수고의 본, 희생의 본, 충성의 본, 성실함의 본을 보여야만 합니다.

 

061621 안익선 목사/ 참조: 김효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