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상 24장 강해(은혜로운 추격전)

호걸영웅 2021. 6. 24. 01:37

사무엘상 24장 강해(은혜로운 추격전) 

 

서론)

 다윗을 향한 사울의 추격은 매우 추하고 아름답지 아니한 않은 추격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셨고, 다윗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추격전을 은혜로운 시간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추격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배운 사무엘상 23장의 마지막절에 다윗이 도움의 주었던 십 사람들의 배신과 사울의 그릇된 확신속에서 다윗은 사면초과에 몰리게 됩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의 몰리게 된 다윗은 더 이상의 갈 곳 없는 막다른 곳에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의 군사들에게 에워싸이게 되죠. 그때에 하나님이 일을 행하십니다.

바로 블레셋이 침노했다는 소식에 급히 사울은 자신의 걸음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지나가자 사울은 다시 다윗을 쫓게 되었습니다. 

본론)

)엔게디로 향한 사울

(삼상 24: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삼상 24: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잠시 멈춰졌던 사울의 추격전이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선 사해바다 중부 서쪽에 위치한 엔게디 광야에서, 그리고 엔게디 동굴 지대에 숨어 있는 다윗을 찾으러 가는 사울을 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부터 상황이 묘하게 뒤바뀌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완악하고 거짓된 마음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는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사울에게 쫓기면서 도망자 신세를 겪는 동안, 그의 마음에 더 큰 확신이로 찾아온 것이 바로 < 하나님의 함께하심 >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확신이 있었기에 그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비록 도망자의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은혜도 더해져 갔습니다. 

이제 사울은 추격자 삼천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러 엔게디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 엔게디 광야에는 석회 동굴들이 많은 산이며 거기있는 어떤 굴들은 아둘람의 동굴처럼 수백명 혹은 수천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굴들도 있었습니다. 

)엔게디 동굴 속에서의 사건

오늘 본문 3= (삼상 24: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 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사울이 굴에 들어간 이유를 <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혹은 <발을 가리우러 들어 가니라> 등으로 번역 됩니다.  여기서 이 표현은 <용변을 보려고>라는 의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용변을 보러 들어갔다가 다윗에게 죽음을 당할 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굴은 제법 큰 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굴엔 이미 다윗의 군대가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에서 다윗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에게 옷자락을 배임으로 < 자신의 목숨이 다윗의 손에 >있었음을 경험하는 것은 곧 < 다윗의 긍휼로 목숨을 연명하게 된 이 어처구니 없는 경험 >이 된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할 번한 위기는 사무엘상 26장에서 한번 더 나옵니다. 그때에는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져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의도적으로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는 비슷한 사건을 2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참된 마음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사울을 죽이지 않은 다윗의 마음과 중심입니다.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드디어 좇기는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기회가 왔음을 말합니다. < 하나님 말씀처럼 당신의 생각에 좋은대 그에게 행하십시오. 오늘이 바로 그날임이 확실하네요 > 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말대로 하지 않습니다. <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가만히 베었습니다. >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 구절입니다.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은 그에게 충성을 드러내고 긍휼을 베푼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선의를 베푼 증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 일 하나만으로도 < 다윗의 마음이 찔렸을까요? > 

왕의 옷은 고대 근동에서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은 그의 생명이나 인격에 손을 댐과 같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대적하여 손을 드는 일이라고 잘못 생각될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에게 호소합니다. [삼상 24:9-10]

(삼상 24: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삼상 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삼상 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애절한 호소이며 그의 중심의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잠시 깨달은 사울(16~22)

  1. 다윗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2.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3.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4. 사람이(누가, 어떤 사람이 혹)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5.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2. 다윗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놀랍고도 충성된 진심을 깨달으면서 자신이 다윗을 오해하고 살해하려했던 행동들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다시 철수하여 다윗을 해치려는 마음을 거두게 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익숙한 사람이나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울은 사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 왕과는 함께했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에서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편안하고 익숙한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판단과 사소한 결정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가 결정적인 반전의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판단은 유보한 채 자신의 유리한 상황조차도 내려놓은 채, 오직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중심에만 집중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절호의 찬스가 왔다고 생각될 때조차도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아니면 멈출 수 있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칼)

061021 안익선 목사/ 참조:신용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