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상 27장 강해(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호걸영웅 2021. 7. 21. 23:35

사무엘상 27장 강해(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서론)

다윗의 도망자적 삶 속에서 매우 의아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본문 27장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도망치다가 마침내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하는 장면입니다. 왜 하필이면 블레셋이었을까요? 궁금증을 함께 풀어가 보겠습니다.

 

본론)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귀순한 다윗(27:1~4)

다윗이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자 사울은 자신이 다윗에게 범죄 하였다고 하고 다윗을 더는 추격하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다윗은 마음이 놓이지를 않습니다. 사울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았기에 언제 다시 자신을 공격하려고 올지 몰라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을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고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하여 600명의 용사와 그의 가족들까지 함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갑니다.

훨씬 이전에 아기스에게 갔다가 미친 체 하여 살아남은 곳으로 다시 망명을 합니다. 용사 혹은 남자 600명과 그 가족들이 함께 하였다면 상당한 무리입니다. 적게 잡아도 2000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이 많은 무리를 이끌고 이제 더 이상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내인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함께 망명길에 함께 나섭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이 다시는 다윗을 수색하지 않습니다. 블레셋은 사울도 감당키 어려운 강적이었기에 추격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로서 다윗의 의도는 상당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다윗이 하나님께 무엇을 여쭈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그 마음에 생각한 대로 행동하였을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선악간의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0장에 보면 자기의 가족들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가고 재산이 약탈 되는 것으로 다윗이 잘못한 것에 대한 징계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로 오히려 아말렉 사람들을 공격하여 사람도 재산도 다 되찾아 오기도 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크게 무찌르게 되었기에 그 말도 옳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것은 자장면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국밥을 먹을지 빵을 먹을지는 우리의 결정에 자유가 있는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아디아포라’라는 말로 표현 합니다. 헬라어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신학적인 용어로도 사용되는 이유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언급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화와 의식에 관한 문제들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것들입니다.

 

특히 유대교의 전통과 복음 사이에서 이런 문제가 대두 되었습니다. 날과 달과 절기의 문제, 할례의 문제, 정결규례와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게 하는 것에 대하여는 바울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의 문제 같은 경우에 자신은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형제를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행하지 말고 이웃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블레셋에 망명하여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자를 보호하려고 한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이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부분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자기 마음의 생각대로 소견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5~7.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주어 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왕에게 땅을 하사 받는다는 것은 결국 주종의 관계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 된 자신이 감히 왕궁이나 왕의 성에 함께 살 수가 없기에, 변방의 한 성읍을 하사해 주십사 청원을 합니다. 그래서 아기스가 준 성읍이 시글락인데 이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조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이 일 년 사 개월이고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그 성읍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부터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시글락에 대하여

여호수아 15:31절에서는 시글락이 유다 자손의 기업으로 주어졌습니다. 여호수아 19:5절 에서는 시므온 지파의 유업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같은 시글락이 왜 두 지파에게 주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그 경계가 접하여 질 때에 그렇게 됩니다. 이미 여호수아를 통하여 정복하려고 한 땅들이지만, 사사시대 이후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들이 다윗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나 아기스가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대로 일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그 일들을 이루어 내십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일상에도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닫지를 잘 못할 뿐입니다. 감지를 못하는 이유는 늘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시글락에서 다윗의 활약(8~12).

한편 다윗이 시글락에 살면서 주변 지역을 공격하여 약탈하고 진멸합니다. 이 지역 역시 여호수아 때부터 진멸하도록 한 지역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지역을 공격하면서 진멸을 한 이유가 여후수아의 명령 뿐만 아니라, 아기스 왕에게 블레셋 일부 지역을 공격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기스 왕이 이번엔 어디를 공격했느냐고 물었을 때에,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라고 대답합니다. 아기스는 블레셋의 변방을 공격하였으니 자신의 국경이 든든해졌다고 여기며 더구나 유다를 공격하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는 이제 다윗이 영원히 자신의 부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지역들이 다 누구에게 약속된 땅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땅입니다. 더구나 아말렉을 공격하여 진멸한 것은 사울이 아각 왕을 살려둔 모습과 대조되기도 합니다.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공격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천하에서 멸하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7:14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지금 다윗을 통하여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17~21=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런한 말씀들도 여전히 이루어질 말씀들이었고 다윗 당시에도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 때부터 성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다윗대로, 사울을 사울대로, 아기스는 아기스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지만 결국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말씀들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40:5~11=이렇게 선포합니다.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풀 같으며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론)

비록 삼상 27에서 다윗이 매우 의아한 선택을 하긴 하였지만 그러나 그런 다윗의 모호한? 선택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성실히 이뤄지도록 하셨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속에도 다소 난처하거나 궁핍한 상황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의 길을 인도하시고 그 뜻을 이뤄 나가십니다, 고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영광을 돌리기에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0070121 안익선 목사/ 참고:이장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