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상 28장 강해(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

호걸영웅 2021. 7. 21. 23:36

사무엘상 28장 강해(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사울의 핍박을 피해 도망 다니는 다윗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 왕은 다윗이 자신을 대신 할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무 잘못 없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다윗의 이러한 고난은 매우 억울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고난을 통해 더욱 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로 도망친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가장 미워하는 원수 나라인 블레셋의 가드로 도망을 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드 사람들은 다윗을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왔는데, 오히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서 그 위기를 간신히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와 아둘람 굴에 숨어 지내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은 자신이 의지해야 할 것은 자신의 지혜와 경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때부터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물어 보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즉 고난은 다윗을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본론)

 

)블레셋의 수넴 침공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사울 왕이 큰 고난을 당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 진쳤더니 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이 당한 큰 고난은 바로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4절에 보니까 블레셋 군대가 수넴이라는 지역에 진을 쳤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수넴이라는 지역은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넴은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지역을 블레셋에 빼앗기면 마치 이스라엘의 허리가 끊어지는 것과 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군대가 수넴에 진을 쳤을 때 사울은 크게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을 두렵게 한 것은 수넴에 진친 블레셋 군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사울 왕을 정말 두렵게 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큰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애가 탔던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울에게 전혀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꿈으로도, 제사장이 가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하나님은 사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데에는 사울 자신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울 당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려 주셨던 일반적인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제사장이 가지고 있었던 우림을 통해서 입니다. 제사장 옷의 가슴에는 우림과 둠밈을 넣는 통이 달려있었습니다.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선지자를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자신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뜻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두 방법을 모두 무시하고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사울 왕이 제사장들을 학살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 다윗이 도망가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고 생각하고, 모든 제사장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사울 왕은 제사장의 우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잃었습니다. 스스로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에게는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등을 돌렸고, 하나님은 더 이상 사울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을 주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사무엘 선지자조차 죽어서 이 세상에 더 이상 있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사울 스스로 만든 죄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멸시하기 때문에 사울에게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사울 자신이 귀를 틀어막고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또한 사울과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은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에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막상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찾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응답을 막아 버린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9: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귀가 둔하여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어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울의 경우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사울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할 것이 아니라, 혹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지체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다윗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을 듣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끝까지 다윗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

사울은 회개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접한 여인을 통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사울이 택한 방법은 회개가 아니라, 신접한 여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신접한 여인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는 사람입니다. 마치 우리 식으로 하면 초혼하는 용한? 무당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신접한 사람을 극도로 미워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보면 신접한 사람은 무조건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0:27절에 보면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남자) 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신접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겠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3절에 보면 사무엘이 죽었을 때, 사울 왕이 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죽는 것을 보면서 사울이 깨달음이 와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신접한 자들과 무당들을 모두 없앤 것입니다. 

 

 즉 사울은 신접한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쫓아낸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고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사울 왕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자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사울이 그래도 조금의 믿음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죄를 짓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반드시 돌이키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보시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도 분명 죄를 짓고 잘못된 선택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참 성도인 까닭은 그 후에 반드시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사울은 어떻습니까? 점점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사울은 신접한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셨을지 모릅니다. 다른 방법은 그에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고 하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를 해도 잘 응답이 안 되니까 무당에게 가서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까?

 

)사울의 비참한 결과

 그래서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하였습니다. 사단의 종인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은 그를 통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게 됩니다.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사람이 정말 사무엘이냐 아니면 악한 영의 장난이냐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그로부터 들은 말씀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혼령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게 되었습니까? 내일 네가 죽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드디어 내일 이뤄진다는 엄중한 말씀이었습니다.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던 사울에게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이 시간 우리는 똑같이 고난을 당한 다윗과 사울을 통해 참 성도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의 모습을 분명히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참 성도인 다윗은 고난을 통해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고난을 통하여 어떠한 유익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는 사실을 더욱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명이 엄격히 금한 악한 일을 거듭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인생을 보면서 참 성도가 누구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을 본보기로 삼아서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는 무조건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는 심령이 되어야 참 소망이 있다 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바라기는 성도인 우리들에게 고난이 유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난 가운데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울처럼 다른 죄악되고 어리석은 혹은 성경적이거나 신앙적이지 못한 인간적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엎드려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살 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070721 안익선 목사/ 참조: 은곡교(합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