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하 1장 강해(다윗의 슬픈 노래)

호걸영웅 2021. 8. 15. 05:06

사무엘하 1장 강해(다윗의 슬픈 노래)

 

서론)

오늘부터 우리는 사무엘하를 공부합니다. 사무엘서를 상하로 구분하는 것은 사울의 죽음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 초대 왕으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온전하게 물리치지 못하였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도 사울이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여 기름 부은 소년 다윗으로 하여금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아각 왕을 살려줬고, 살진 짐승들을 살려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이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사울은 이스라엘 주변의 적들을 어느 정도 막아내기는 하였지만 몰아내어야 할 블레셋에 의하여 도리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원하여 세운 왕의 한계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론) 

)비보를 듣다

1절을 보면 “사울의 죽은 후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서 이틀을 유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죽은 때에, 다윗은 아말렉 사람을 쳐서 죽이고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울은 블레셋의 공격에 대패하고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삼상 31).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적인 아말렉을 공격하여 대승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글락으로 돌아온지 삼일 만에 사울 진영에서 탈주한 한 청년이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그의 모습은?

 2-5절을 보면 그의 옷은 찢어져 있었고, 머리에는 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미처 쉬거나 외모를 정돈할 여유가 없었던 모양으로 보입니다. 그가 다윗에게 와서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너는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그에게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곧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스라엘의 패전과 많은 무리의 죽음과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에게 ‘어떻게 알았느냐’라고 묻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6-10절을 보면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라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길보아 산에 전리품을 챙기러 오기 전에 잽싸게 그 틈을 노려서 전리품을 챙기려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히 길보아에 올라갔다고 함은 거짓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울이 블레셋 군사에 쫓겨 부상을 당하여 자신에게 죽여 달라고 하여서 살 가망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사울을 죽이고, 그의 왕관과 팔 고리를 벗겨서 다윗에게로 가져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거짓말로 보입니다. 우리가 사무엘상 31장에서 사울의 죽음이 어떠하였는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과 지금 아말렉 사람의 말이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상 31장에서 본 것처럼 사울은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하여 자기 부관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관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자 자기 칼에 엎드려져 죽었습니다. 곧 사울 왕은 스스로 자결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수치를 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울이 아말렉 사람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할 수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말렉 사람은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지어내고 부풀려서 다윗에게 사울의 왕관과 팔 고리를 들고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다윗과 사울을 적대적인 관계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고 그의 왕관과 팔 고리를 가져다주면 큰 상을 받을 줄로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애통하는 다윗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1-16절을 보면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패전과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옷을 찢고 저녁 때 까지 슬퍼하며 금식을 하였습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였습니다.

 

17-18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애가를 지어 부릅니다. 그리고 그 애가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노래가 야살의 책에 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야살의 책은 현재는 전해지지 않지만 사무엘서 당시에는 현존했던 것 같습니다. 야살의 책은 아마도 신앙적 무용담을 기록한 책이었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을 공격할 때에 태양을 머무르게 한 사건이 기록된 것도 바로 이 야살의 책이라 했습니다( 10:13).

 

다윗이 이 노래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게 한 것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이 자신의 대적의 죽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과 그 아들이 죽은 것으로 애통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다윗이 사울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 전체의 마음을 얻기 위한 위선적인 전략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앞서 있었습니다.

 

)다윗의 애가

그러면 다윗의 애가가 어떠합니까? 19-27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길보아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찌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 슬픈 노래 속에는 다윗 자신의 사적인 이기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적들을 물리치던 용사들의 죽음을 인하여 다윗이 슬퍼합니다. 사울로 인하여 백성들이 적들에게 약탈당하지 않고 붉은 옷과 금 노리개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왕을 위하여 애통하라고 합니다. 또한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은 세상의 여인들이 애인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해 자기 왕위를 포기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두 용사가 죽은 것에 대하여 다윗은 애통해 하며,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1)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마치 아말렉 소년과 같은 모습이 아닙니까? 나의 사적인 이익이나 영광을 위하여 교회로 왔다면 그것이 오히려 심판의 날엔 죽임을 당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2)우리도 다윗처럼 나 개인의 이해득실보다는 하나님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 교회 안에서, 우리 안에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들로 인하여 애통해 하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고로 나라를 위해서도 더욱 기도하여야 하고 선교를 위해서도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하고 그 은혜를 두루 베풀기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080621 안익선 목사 / 참조: 창원한결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