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사65:17~21)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
서론)
본문 이사야서 65장 17절 이하와, 66장은 가까운 미래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60~66장 전체가 인류 역사의 종말에 있을 일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 20:1~3절에선 재림 예수께서 다스리실 ‘천년왕국’이 나오는데, 곧 이사야 선지자가 2700여년 전에 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지막 세상에서 인류에게 나타날 것을 거듭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나라입니까?)
본론)
가)새 하늘과 새 땅은, 죄와 고통이 없는 새로운 피조물의 세계를 말합니다.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힘든 포로생활을 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물질과 쾌락을 사랑했던 죄 때문에 이방 땅에 가서 비참한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죄는 이처럼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제 징계의 기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새롭게 새 역사를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들이 너희들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여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라고 하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자들이 거할 곳입니다.
▲65:17~18절에는 ‘창조’란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창조가 무엇입니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새로운 것을, 또 이전 것을 다 무시하고 , 완전히 색다른 것을 만드는 일이 창조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 죽을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고로 이것을 새 창조, 곧 new cre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이사야서를 공부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많은 문제들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죄 문제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종교적 위선과 우상숭배, 성적 타락과 부정부패,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이기심과 탐심이 넘쳐나고, 처녀들은 음란하게 형제들을 유혹하고 형제들은 대낮부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흥청거렸습니다.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하고 병들고 터지고 멍들어서 성한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뭔가 새롭게 시작해 보고자 해도 죄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방나라의 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새로운 창조가 필요했습니다. 그 창조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전에 죄와 수치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범죄 기록은 완전히 사라지게 주십니다. 그래서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능력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의 누더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옷을 바꿔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의미의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입니다.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가? <18~19절>
65:18~19절=“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십니다.
이 두 절에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6번이나 나옵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삶,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며, 새 창조가 이루어진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외적인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자가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사람마다 미남 미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내면이 달라지는 것이요, 그 마음에 죄 문제가 해결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귀합니다. 악하고 쓸모없었던 죄인들이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김구 선생이라는 분도 “경찰서 100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한 개 세우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실로암 안과 원장이신 김선태 목사님의 간증집 중『땅을 잃고 하늘을 찾은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아홉 살 때 6.25 전쟁 중에 수류탄이 터지면서 부모도 잃고 두 눈을 잃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맹인에 고아,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동냥을 다니면서 수많은 욕설을 들었습니다. “재수 없는 놈, 벼락을 맞아 죽을 놈”그는 자신의 슬픈 인생을 저주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 없이 자살하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서 그의 인생에 찾아오시고 용기를 심어 주셨습니다. “죽지 마라. 네가 자라서 옛 이야기를 하면서 살 날이 올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는 눈이 멀어서 땅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만나서 하늘을 찾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의 육의 눈은 닫혔지만 영의 눈,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모진 인생길을 헤치고 나아가 실로암 안과 원장이 되었고, 무려 3만 2천명에게 개안수술을 시켜주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했습니다.
나)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특징
이러한 새 창조의 감격과 기쁨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는 날 동안 계속됩니다.
우리의 내면이 날마다 예수님을 뵙고 닮아가는 기쁨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라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엡4:13).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어가는 기쁨입니다.
▲65:20절=이 새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를 말씀합니다. 그 나라엔 노인이 없게 되고, 백 세에 죽는 자는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였나보다 라고 할 정도입니다.
구약에서 노아시대 이전 사람들은 수 백년은 기본으로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969세, 노아는 950세를 살았습니다. 이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선 죄 문제가 해결 되기 때문에 에덴동산도 회복되어서, 죽음의 고통이 없고 다 오래 삽니다.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21절=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서 (빼앗기지 않고)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침략하는 대적들로 말미암아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지만 새 하나님 나라에는, 대적들이 없기 때문에, 평강 가운데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또 24절=“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라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금방 금방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의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소통이 신속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참으로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25절=약육강식이 없는 온전한 평화의 자연계에 임하게 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타락은 자연세계에도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뱀에게는 독이 없었습니다. 사자도 이리도 전혀 강포하지 않았습니다. 다 초식 동물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생태계가 파괴되고, 서로 물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의 자연계가 온전히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해함도 상함도 없는 여호와의 성산(거룩한 산)에서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했습니다.
다)참된 예배를 하나니께 만민이 드리게 됩니다. (사66장)
66:18절=“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라 했죠? 오랜 옛날 죄로 말미암아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세상 만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했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이 다 나아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66:20절= ‘뭇 나라에서 여호와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66:23절=“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생들이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지 않고, 헛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보살핌 가운데 살았으면 당연히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한 주간을 살 수 있는 은혜와 영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고, 늦잠 자고 방에 누워서 TV나 보고 오락 거리나 찾아 해매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에서는, 한 사람도 예배에 빠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다 큰 복을 받고 기뻐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악인들이 제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66장)
66:24절=“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를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사야서의 마지막은 놀랍게도 심판에 대한 경고로 끝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거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 교만한 자, 패역한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66:15,16절=“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 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 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을 당할 자가 많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조건 좋은 분으로만 알고, 함부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창조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 악인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이 날이 곧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예수의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시록21:8절에서도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천국에 가는 사람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곳입니다. 죄인들은 언제까지나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에서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도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온 인류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 여러 번 거듭된 말씀이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품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셔서 어찌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 그 백성삼기를 원하신다 했습니다.
회복하시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새롭게 창조해 주십니다. 이 새 창조의 시작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날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느라고 수고하고 애쓴 땀과 눈물을 다 닦아주십니다. 해됨도 상함도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며 복락을 누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후엔 천녀왕국이 끝나고 흰보좌 심판이 있고, 결국엔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 옵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 백성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누리며, 이 기쁨과 소망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이 천국의 기쁨과 감격을 힘써 증거하는 천국의 전파자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092021 안익선 목사/ 참조:LN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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