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하 24장 강해 (다윗의 인구조사와 하나님의 징계)

호걸영웅 2022. 4. 29. 23:30

사무엘하 24장 강해 (다윗의 인구조사와 하나님의 징계)

서론)

본장은 다윗의 인고조사와 그 연고나 동기,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징계가 주된 내용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 24장은 역대상 21장과 병행장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면에서 몇 가지 상이한 점들이 있기에…… 성도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좀 더 유심히 살펴보면 양자의 차이점은 서로에 대한 보완적 역할을 함으로써, 성경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합니다.

 

대표적인 차이점들은, 다윗을 시험한 주체가 하나님이냐 사탄이냐?,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의 조사 결과가 서로 다른데 어떤 것이 옳은 것이냐?, 기근의 연수가 7년이냐 3년이냐?,  다윗왕이 번제를 드리기 위해 지불한 돈이 얼마이냐? 등이 됩니다.

본론)

)인구조사를 명한 다윗

1=“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을 치시기로 작정을 하시고 순진한 다윗이 죄를 범하도록 부추기신 그야말로 아주 괴팍한 성품을 지닌 하나님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21 1절은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증거합니다. 즉 이스라엘과 다윗이 죄를 범하게 된 근본적인 주체가 다름 아닌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서 기자는 왜 사단이 아닌 하나님이 이 모든 사건의 주체라고 증거를 했을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욥을 직접적으로 시험을 한 주체가 사단이었지만,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단이 욥을 시험했던 것이지 사단이 단독 으로 욥을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마귀로 하여금 예수님을 시험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출애굽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지는 재앙으로 인해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권능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하다가도 다시 하나님을 부인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를 “바로의 마음이 완강 또는 강퍅”( 7:13; 8:15, 19, 32 )하기 때문인데, 바로의 마음을 이처럼 강퍅하게 만드신 분이 바로 “여호와”이시다 라고 증거합니다( 9:12, 10:20, 11:104, 14:8). 바로가 하나님 의 권능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만, 곧바로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대적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국가를 도구로 삼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악도 하나님의 사역의 도구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사건의 주체와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 고 스스로 행하는 것 같아도 모든 일의 주관자는 인간이 아닌 조연 격인 사단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단을 도구로 삼으셔서 다윗을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연약하기 그지없는 죄 없는 칠만 명을 죽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라는 말은 결코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다윗을 사단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부추겨서 죄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가신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악의 구렁텅 이의 강퍅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과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일에 착수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본다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공의 회복을 위한, 혹은 환부를 도려내려 하시는) 이 얼마나 깊고 넓으신 지를 조금이나마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코 다윗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아무런 죄가 없는 칠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삼 일간에 걸쳐 죽게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미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던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은 인구조사라는 사건을 통해 가시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번 말고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인구조사를 했었습니다. 즉 민수기에 의하면 모세는 두 번에 걸친 인구 조사를 실시하여 전쟁에 대비했습니다. 그때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야말로 순수한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실시한 인구조사는 그 동기 자체가 불손했습니다. 인구조사를 요압에게 명하자 요압은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3)”라고 항변을 합니다. 즉 인구조사를 명한 다윗의 심중은 자신의 군사력을 직접 확인하여 자신의 영광을 기뻐하며 과시하고 자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뒤로하고 자신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그 자리에 안주하고자 했던 사람은 비단 다윗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팽배하였습니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웃 국가들의 침범에 도망치기가 일쑤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곧 바로 전투병으로 참전할 수 있는 장정의 총수가 130만 명에 이르러, 과거 가나안 입성 당시 60만 명(26:51)에 비하면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또 단 한 평의 땅도 없었던 그들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이르는 영토를 지닌 부강한 나라 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왕정체제가 다 이루어졌음에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려는 생각이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후회와 하나님의 징계

그러나 다윗은 인구조사 직후, 자신이 행한 인구조사가 동기가 여호와께 의존하기보다는 영토와 군사력에 더 의존하려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회개합니다.
고로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10).”라며 회개자복하게 됩니다.

다윗이 이같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자신을 맡기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통하여 칠년 동안의 기근, 삼년 간의 전쟁, 또는 삼일간의 전염병, 이 세 가지 재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 하십니 다.

 

그러자 다윗은 "주여 제가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14, 표준새번역)" 라며 자신은 피할 수 있지만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줄 것이 분명한 기근과 전쟁 보다는 왕과 백성 모두에게 평등하게 임하는 전염병을 선택합니다. 즉 다윗은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에게 위임된 선택권을 그대로 여호와의 손에 맡깁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전염병으로 칠만 명을 죽이시지만,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왜 갑자기 마음을 돌이키셨는가에 대하여 밝히지 않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은 전국토에 걸쳐 하나님의 노하심과 심판인 전염병 앞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가족, 친족, 이웃을 보며 자신들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같이 자신들을 뉘우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긍휼과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심판을 다소 누그러뜨리십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앞에서, 다윗은 더욱 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제대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이끌지 못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게 되었고, 이에 하나님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라며 “(차라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라며 간구합니다. 병행 구절인 대상 21:16을 보면, 다윗은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렇게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다시 화목한 다윗

그리고 죽음의 천사가 서서 나타났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매입하여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16~24)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1.  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2.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3.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21. 아라우나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1.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3.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염병)이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로 우리의 본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의 자리에 안주하려하고 지금의 나 됨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 모습을 말입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이러한 유혹에 현혹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음에 자포자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다윗과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다윗과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결코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회개할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집을 떠나 탕자를 한없이 기다리시며 돌아오는 탕자를 품어주시고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께서는 결코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기도)

인간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둔 나를 드러내려하는 우리의 교만하고 자랑하려고만 드는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 했지만, 우리를 높이고 드러내고자 하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내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미움과 질투가 가득했음을 고백합니다. 나를 탓하기 전에 내 이웃을, 이 사회를, 그리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을 탓했음도 고백합니다.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나아 가오니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정결케 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고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041422 안익선 목사/ 참조: http://100chu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