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주기도문의 교훈 (마6:9-13)

호걸영웅 2022. 6. 22. 10:19

주기도문의 교훈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2.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1.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기도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그 후부터는 기도하는 일이 매우 많은 신앙적 활동에 포함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세번의 공식적 모임에1/3 이 기도모임입니다.
어떤 신의 존재를 믿던지 간에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던 짧던 기도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에 대해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로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올바른 기도 혹은 최선의 기도를 드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른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예수께 요청하게 됩니다.

누가복음11:1 하반 절= “주여, (침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거의 평생을 예수 믿는 동안 기억하여 되풀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별로 깊게 그 기도의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도의 뜻을 좀더 되새기며 깊은 영성의 의미를 깨닫게 되길 원하여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영적 의미 4가지를 배워 보도록 합니다.)

본론)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1.이 기도는 바르게 하나님을 부름으로 시작되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혹은 God, god 등으로 불리는 존재는 대단히 많습니다. 각 종교마다 그들이 믿는 최고의 신에게 붙이는 이름 모두가 ‘하나님’ 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가나 길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되는데 어느 종교를 갖든지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실하게 믿기만 하면 다 천당은 가게 될거다 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다른 종교의 하나님과는 처음부터 다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무소부재 하시다(어디나 계시다)는 뜻입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만유의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즉 만유는 모든 우주 만물을 한자로 표현한 말입니다.
에베소서4:6입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Father of all, above all, through all, in you all)라 했습니다.

통일 찬송가 48장에서는 이런 가사로 찬양을 합니다.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인자가 되신 하나님. 나 사모하여 영원히 섬길 내 영광되신 주로다.
그렇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살아 계셔 역사하시는 하나님, 만유 안에 게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고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국의 신학자 A.W.토저의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의 개념이 너무 세속화되었음을 걱정하며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절실한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약 40년 동안 아주 많이 늘어났다. 현재 성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말 그대로 지금 이 시기엔 성경이 베스트셀러이다. 현재 신학교는 세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세워지고 있다. 기독교 서적이 산더미처럼 출판되고 있다. 선교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전도가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믿기 힘든 얘기이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닌다. 이런 일들은 다 좋은 것이다.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최근에 기독교에는 심각한 손실이 발생했다. 고상한 신관(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전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너무나 저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누()를 끼치며, 기독교에 불명예를 안겨준다. 기독교는 위엄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위엄의 개념과 예배의 거룩한 기술을 잃어버렸다. 교회가 고상한 신관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독교는 얄팍하고, 무기력하고, 저급하고, 경박하여 세상적이 되었다. 오늘 날의 설교는 대부분 경박하고 조악(粗惡)하고 얄팍하고, 개그맨 흉내를 낸다. 개그맨처럼 사람들을 웃겨서 즐겁게 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시는 교회를 찾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비극적이다.
오늘 날 부르는 찬송가라고 부르는 노래들 가운데는 너무 저급한 곡들이 있다.
지금은 보통 사람들의 시대이다.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평범한 수준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를 다시 깨닫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토저의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믿고 있는 하나님의 개념이 저급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바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회복하고, 바른 기도를 제대로 회복할 수 있다면 세상을 밝히는 빛, 세상에 맛을 내는 사람들로 그들이 바로 설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기도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줍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큰 문제에 봉착합니다. 자신의 삶의 경험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절대화 하므로, 스스로의 견고한 세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판단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야 올바르다고 봄으로 그 기준에 따라 세상을 판단하고 다스리려고 합니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인정하고, 서로를 수용하는 관용의 사람이 바로 믿음이 큰 사람인데 갈수록 좁아지고 아집으로 똘똘 뭉쳐져 갑니다. 고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마저 그렇게 폐쇄되어 가는 것을 막으시려 하셨습니다.
보통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대부분의 기도는 내 문제들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내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일부터 시작하여, 내 가정, 내 자녀들, 내 남편, 내 아내, 심지어 내 교회, 내 나라 등, 온 통 내 개인과 관계된 문제들의 해결을 간구합니다.  그러다가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훌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 기도의 우선순위를 가르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기도의 시작에서부터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십니다.
가장 먼저 나의 삶을 통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내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라는 다스리시는 범위나 장소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내 가정, 내가 섬기는 교회와 국가를 다스려 주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성공은 만사가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계획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패로 단정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김경태 형제의 기도 부탁-레인저스 합,불합격 여부)

이 기도의 순서는 존재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기도입니다. 생각만 바뀌어도 삶의 변화가 오는데, 기도가 바뀌면 세상에 변화가 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신 기도는 이 엄청난 우선 순위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구하라
.또 이 기도는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구하라 하십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며, 예수님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을 구하라 하십니다.

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물론 이 기도는 그날그날 필요한 먹거리를 달라는 기도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삶 속에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은 이 기도를 놓치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간도 우리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찔한 사고의 순간도 있었고, 몸의 일부를 일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었고, 가족 중 하나가 좋지 않은 병에 걸리거나 불행한 일을 일을 당할 수도 있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고로 일용할 양식, 즉 날마다의 은혜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은혜를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아무 일없이 지나면서 내 공로라고 생각하거나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이거나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채워주지 아니하시면 쉽게 될 일이 결코 아닙니다.

2)두번째로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를 용서하길 힘쓰는 삶을 실천하며 살라 하십니다.

다음은“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입니다.
이 기도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 위에, 서로가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 을 전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이 용서받아야 할 죄가 많음을 먼저 일깨워줍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 하셨습니다. 이 들보만큼 큰 나의 죄를 용서받기 원한다면 티끌과 같은 다른 사람의 죄를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내게 저지른 남의 잘못은 한없이 크고 많아 보이는데, 내가 저지른 잘못과 죄는 전혀 없는 것처럼 생각할 때, 자기는 의인이 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는 무서운 독선주의자가 되고 맙니다.그래서 먼저 용서받아야 할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할 죄인인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내게 잘못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먼저 용서하라 하신 것입니다. 뭐 그럴수도 있지.라는 너그러운 마음을 품으라 하십니다. 느긋해져라 라고 하십니다.

 

3)죄악에서 지켜주십사 구하라 하십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우리를 시험 들게 하는 악들이 주변에 항상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런 널려있는 악한 일들 때문에 우리 마음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우리는 내 개인의 삶과는 관계가 멀지만, 잘못된 주변의 일들 때문에 속상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속상해도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음을 알면서도 마치 내가 가만히 있으면 불의가 더 성행할 것 같아 의분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한 일들을 때문에 괴로워만 말고,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아 나 역시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자신을 먼저 바로잡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다 바꾸려고 하는 정의파가 되기보다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세상의 악한 일들 때문에 나까지 악 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삶의 목적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끝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를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마무리하라 하십니다.
시편24:1의 말씀입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마땅히 영광이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챈 자가 사탄입니다. 사단은 사람을 충동하여 그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끊임없이 가로채게 하려고 인간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진 일들에 대하여 주어를 교체시키게 합니다
. 이 일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좋은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은 두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자신의 사역을 보고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친 다음 사도행전15:12입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라고 하였고, 바울이 2차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보고한 내용이 사도행전21:19,20에서도“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바나바와 바울의 표현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모든 사역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모든 삶에서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어진 모든 일들을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감당한 것이 사실일수 있지만, 그런 일들을 이루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다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마지막 겟세마네의 기도의 교훈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26:42에서 우리 주 예수께선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우리가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이루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기도문의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모두의 시각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일들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하셨습니다. 깨어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바른 기도의 사람들이 되고 바른 기도가 응답받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도 오늘 배운 바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먼저 이루어 진정한 인생의 순례자, 영적인 거인, 혹은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053122 안익선 목사/ 참고:최이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