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11장 강해(의인과 악인의 거듭된 대조)

호걸영웅 2022. 7. 23. 04:45

잠언 11장 강해(의인과 악인의 거듭된 대조)

통일 찬송가 512,519

서론)

잠언의 기록 방식에 대하여 잠깐 언급한다면.....잠언 1장부터 9장까지는 명령 또는 권고 형태로 기록되었다면, 10장부터 15장까지는 금언 또는 격언의 형태로 기록되었습니다. 금언 및 격언의 형태는 간결하여 의미를 전달에 있어서는 탁월하지만 동시에 약간의 딱딱한?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본문을 문학적, 문맥적 관점에서 명확한 규칙을 찾아 이해하려기 보다는 다양한 삶의 지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1장은 10장부터 시작된 ‘솔로몬의 잠언’의 연속입니다. 자기가 결정한 판단과 행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보응의 원리를 중심으로, 의인과 악인의 거듭된 대조를 통해 우리 삶에 강력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본론)

가) 상거래의 기본 덕목(1-3)

(1-3)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땅의 농작물을 직접 경작하며 살아갈 순 없습니다. 필요한 작물들을 필요에 따라 사고파는 거래로 이를 대신합니다. 이러한 상거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이며, 저울은 상호간의 신뢰를 높이는 주요한 도구 중의 하나입니다.

판매자 입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저울을 속이는 것입니다. 추를 조작하여 상품의 무게를 속이면 더 많은 이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눈속임은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또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울 속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과거 10여년 전, 한국에서 살 때, 과자 봉지는 큰데 내용물은 별로 없고 공기만 가득한 경우도 종종 봅니다. 딸기를 사면 상자 위는 큰 알로 아랫칸은 안보이니까 작은 알로 채우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 이런 것을 하나님이 미워하시 는 일이라고 교훈합니다. 또 본문은 참된 지혜자는 언제 어디서나 겸손, 정직,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악인과 의인의 대조를 반복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심판 날의 모습을 중심으로 교훈합니다.

)심판의 날 악인과 의인의 대조(4-8)
(4-8)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합니다.

재물을 쫓는 삶과 공의를 쫓는 삶의 마지막, 악한 자와 완전한 자(정직한 자)가 마주할 결과를

대조합니다. 바울은 이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교훈 합니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십니다.(종두득두 종과득과 처럼)

)이웃에 대한 악인과 의인의 대조(9-13)
(9-13)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인과 의인의 삶은 그의 이웃들과의 관계와 공동체에 있어서도 상반된 결과를 낳습니다. 악인은 이웃을 망하게 하고, 그의 망함에 이웃들은 기뻐합니다. 그는 이곳저곳에서 온갖 비밀을 누설하는 등 그 공동체는 이내 무너집니다. 악인은 그간 이웃이 아닌 이웃으로 공동체에 존재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의인은 이웃을 구원으로 초청하고, 그의 형통함에 함께 즐거워합니다. 기생 라합의 경우가 그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가벼이 입을 놀리지 않는 그의 신중함에 공동체는 더욱 견고히 세워집니다.

) 평안을 누리는 법과 보응(14-17)
(14-17)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많은 자문을 받는 것과 경솔히 보증서지 않음에 있음을 교훈하며, 자비를 베푸는 여자가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가 번영을, 인자함이 사람의 영혼을 이롭게 하나, 잔인한 사람은 영혼은 고사하고 육신조차 해롭게 될 것을 교훈합니다.

)결과에 대한 악인과 의인의 대조(18-23)
(18-23)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고 하십니다.

악인의 삯은 하나님의 미움과 진노하심 가운데 사망을 직면케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피할 수 없기에 더없이 허무함을 느낄 것입니다(히틀러, 뭇솔리니, 스탈린, 도죠 히데키).

 

반면 의인의 상은 생명입니다. 더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 가운데 선하다는 인정과 더불어 그의 자손까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 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신다면, 과연 우리는 어느 자리에 서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이야 합니다.

 

)구제와 자비에 대한 악인과 의인의 대조(24-31)
(24-31)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온정이 필요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돌보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 다.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둔 지갑을 열 때, 비로소 빛 되신 예수님의 사랑의 등불은 우리의 삶이라는 기름을 태우며 밝아 오를 것입니다. 구제에 힘쓰는 의인이야 말로 참된 복과 은총 가운데 번성이 예정된 참된 지혜자입니다.
반대로 의식주의 문제로 가슴앓이 하는 이웃을 보고도, 냉냉하게 외면하는 사람은 거기에 걸맞은 하나님의 보응이 있습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라고 본문은 말씀하십니 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재물만을 의지하면 낭패를 당합니다. 끝으로 삶의 지혜와 평안을 누리는 방법을 대조를 통해 교훈합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의 빚을 지닌 채무자들입니다. 그 어떤 것이 십자가 의 무게보다 무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채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요청에 따라 성경의 진리를 쫓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욕심에 정신이 혼미해져 사람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하나님마저 속이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함께 돌아봅시다.
끊임없이 나눠주기보다는, 끊임없기 받기를 원하고, 복잡한 계산 관계 속에서 만남을 이어가며, 성령을 속이며 살지는 않았는지 잠잠히 헤아려 봅시다. 의인 된 예수님의 삶을 깊이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실런지 결단해 봅시다

                    071322 안익선 목사/ 참조: 박성호 님

마치는 찬송;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