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9장 강해( 두 여인의 초대 혹은 유혹)

호걸영웅 2022. 7. 23. 04:43

잠언 9장 강해( 두 여인의 초대 혹은 유혹)

 

서론)

 잠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이 18번이나 나옵니다. , 잠언의 목적은 사람들이 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잠언은 도덕책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이는 참 지혜를 얻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 잠언의 내용은 주 하나 님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점에서, 도덕책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복음의 계시서-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잠언에서 ‘길’은 인생입니다. 또 그 길을 걸어 가는 어떤 남자는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그의 아들들, 혹은 모든 사랑스러운 젊은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잠언의 전체의 말씀들은 인생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생 길에서 우리가 만날 수 밖에 없는 두 여인을 소개합니다. 잠언 8장과 9장은 그 두 여인을 등장시킵니다. 그 두 여인은 지혜라고 불리는 여인과 음녀 또는 미련한 여인, 어리석은 계집, 탕녀 등으로 불리는 여인입니다.

이 두 여인은 각각 음식을 차려 놓고 길을 가는 청년들을 부르며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각 청년은 자신의 인생 길에서 두 여인 중 한 여인을 선택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잠언은 그 표현을 “누구와 식사를 하느냐?”로 질문합니다. “지혜 여인과 식사를 할 것이냐 아니면 미련한 여자와 할 것이냐?”라고 말이죠.

잠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중동 사회의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 중동 사회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한 자리에 앉는다.”라는 뜻으로서 “너와 나는 같다”, “우리는 같은 편이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남녀가 함께 식사를 한다는 뜻은 동침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고 합니다.

본론)

)지혜로운 여인의 초대

1절에서 3절을 다시 봅니다.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지혜의 여인의 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집은 일곱 기둥으로 세워진 집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상징으로서 완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곱 기둥의 집이란 흔들림이 없는 안전한 집, 완전한 만족을 주는 참된 안식처를 뜻합니다.

2절에는 지혜 여인이 차려 놓은 잔치 상이 소개됩니다. 고기와 포도주가 풍성하게 놓인 잔칫상입니다. 잔칫상을 차려 놓은 지혜 여인은 성중 높은 곳에 올라가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며 외칩니다. 14절을 보면 미련한 탕녀도 성중 높은 곳에 올라가 자기와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부르짖는다 했습니다.
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대 중동 사회의 문화를 좀 더 알아야 합니다. 고대 중동 지역에는 각각의 성중 높은 곳에 그 지역을 대표하거나 섬기는 우상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섬기는 여인들이 어떤 축제를 맞이하는 때가 되면 시장으로 나와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자랑하며 초대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혜 여인도 부르짖고 음녀도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 지혜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참신으로 모실 것을 간절히 부탁하며 호소하는 것이요, 반면, 어리석은 음녀 계집은 바알과 아스다롯 등을 예배하는 이방 계집들로서 우상신을 믿으라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음녀는 이방신을 섬기도록 유혹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아합 왕의 아내 이사벨 여왕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알 신을 섬기도록 유혹한 창녀와 같은 여인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언 9장은 독자들에게 “어떤 신을 섬길 것이냐? 지혜의 여인이 가리키는 여호와 하나님이냐? 아니면 어리석은 계집이 유혹하는 세상 신들이냐?”를 묻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절부터 6)에서는 지혜의 여인이 외칩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돌이키라는 말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돌이켜 내게 와서 먹고 마시라. 어리석음을 버리라. 그 대신 생명을 얻으라. 그리고 그 얻은 생명을 따라 명철의 길을 살라.

누구든지 지혜 여인과 식사를 하게 되면 지혜와 하나가 되면서 그 여인의 잔치 자리에서 배가 부르며 생명 및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또한 그 인생은 명철의 길을 행하며 풍성한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혜 여인의 간절한 호소를 비웃는 자들이 있습니다. 7절과 8= 거만한 자들, 악을 좋아하는 자들은 지혜 여인을 능욕하고 조롱합니다. 교만한 그들은 지혜 여인을 싫어하며 대항합니다.그래서 결국 지혜로운 자는 지혜 여인의 잔치에 와서 더욱 배부르지만, 거만한 자는 지혜에게 도전하며 지혜를 미워하는 모습으로 그 본성을 드러내더니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로 오늘 본문의 7-8절에서 말합니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비슷한 의미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6)고 말씀하셨습 니다. 그 말씀에서 개와 돼지란 악하고 위선되고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대적자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교만하고 거만하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일에 있어서 어리석음의 극치를 나타내며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제 지혜 여인이 지혜의 핵심을 선언합니다. 다 함께 10-1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지혜 여인은 자기와 식사하는 자에게 복을 누리며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특히 10절에서 말하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를 아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미련한 여인의 유혹(13-18 )

 미련한 계집도 높은 곳에서 떠들며 길을 가는 행인을 부릅니다. 이 악하고 간교한 여자는 음식을 차려 놓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계집의 집은 제대로 된 기둥도 없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이 미련한 여자는 도적질한 음식으로, 또한 건강에도 해로운 불량한 음식으로 손님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자기에 게로 들어오는 손님을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악한 여자의 속삭임입니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17)라며 유혹합니다.
이는 거짓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사탄의 음성이요, 음녀의 음성입니다. 함께 누군가를 속이며 불의를 행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리석은 자들과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은 그 음녀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죄를 범합니다. 세상 신들을 섬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18절의 스올입니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했습니다.

“스올”은 히브리 단어로서 신약의 헬라어 “게헨나”와 같은 뜻입니다. 스올 또는 게헨나는 불신자 들이 가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끝없는 고통의 처소를 의미합니다. , 지옥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이르게 하시고” (벧후 2:9).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42)했습니다.

지혜 여인이 어리석은 음녀를 보니 그 미련한 여자는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그녀의 엉덩이에 깔고 앉아 있습니다. 그 창녀의 집을 들여다 보니 그 집안에는 온갖 해골과 뼈들과 함께 썩은 시체들로 가득합니 다.  , 그 탕녀에게 빠지는 자들마다 잡아 먹힌 것입니다. “그의 객들이 스올, 곧 지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했어요.

오늘 잠언 9장에서 길을 가는 젊은이는 인생을 걷는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두 가지의 길에서 선택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 선택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냐, 아니면 자신의 거만함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짧은 지식을 의지할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냐 아니면 불순종할 것이냐?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육신에 따라 살 것이냐? 지혜의 말씀을 따를 것이냐 세상의 타락한 달콤한 거짓을 따를 것이냐? 불의를 따를 것이냐 의를 따를 것이냐? 죄를 따를 것이냐 아니면 선을 따를 것이냐? 어둠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빛을 따를 것이냐?”입니다.

결론)

오늘 잠언 9장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연상시키게 됩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죽은 후에 스올로 내려가서 고통 중에 슬피 울며 이를 갑니다. 부자가 스올에서 외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니이다.” 이때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서로 건너갈 수 없구나.”라고 했습니다. 참 슬픈 결과입니다.

지금도 지혜는 사망으로 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이 터지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음성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어디서나 목이 터지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지혜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외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 지혜의 길입니다. 결국 그 음성을 거절하면 그 책임은 거절한 자들의 몫이 됩니다.


        063022 안익선 목사 / 참고 : 본헤럴드(http://www.bonhd.net) & 스데반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