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12장 강해(훈계와 책망에 대한 의인과 악인의 반응)

호걸영웅 2022. 7. 23. 04:47

잠언 12장 강해(훈계와 책망에 대한 의인과 악인의 반응)

 

서론)

잠언 12장은 11장에 이어 악인과 의인을 대조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대한 기록이다 -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론)

)바른 훈계와 책망의 필요성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12:1)고 하셨습니다. 짐승은 어리석은 자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훈계와 책망, 꾸중과 징계, 충고와 조언은 우리의 심령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먹는 쓴 약과 따끔한 주사와도 같습니다. ‘훈계’란 ‘훈육(discipline), 교정(correction)’을 뜻하며, 책망 또는 징계란 꾸지람을 뜻합니다. 우리가 잘못할 때에 우리를 옆에서 바로 잡아주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타일러주고 정신 차리도록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바르고 좋은 훈계와 책망은 우리에게 늘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늘 실수가 많고 조심성이 부족하고 하나님 말씀보다는 육신이 앞설 때가 많기 때문이죠. 사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우리는 완전히 거룩하게 되지도 못합니다. 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인자하심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훈계와 책망을 늘 필요로 합니다.

) 바르고 좋은 훈계와 책망은 어떤 것들인가?

      첫째, 바르고 좋은 훈계와 책망은 진리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훈계가 좋은 훈계이고 살리는 훈계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또한 잘못 가고 있을 때에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책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성경의 말씀 뿐입니다. (나침반과 거울의 역할을 함)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좋은 훈계와 책망은 성경에 입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훈계가 바른 책망입니다. 성경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바른 훈계와 책망보다는 인간적 불완전함과 편견이 섞인 훈계와 책망을 하게 됩니다.

  

    둘째, 좋은 책망과 훈계와 징계는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책망을 해주었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에게 큰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를 책망하고 꾸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교회들에게서도 책망하는 말을 듣기 어렵습니다. 책망하는 말을 들으면 교인들이 시험에 들까봐 두려워서, 책망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책망하고 훈계하는 일이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 좋게 하느라고 그렇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좋게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망이 필요할 때 책망을 하지 않고 그냥 감싸고도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무정하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친절을 가장한 불친절이요, 사랑을 가장한 미움이라고 까지 말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좋은 책망과 훈계와 징계는 매우 신중하게 기도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책망과 훈계는 본래 쓰고 아픈 것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책망과 훈계가 혈기를 부리거나 감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책망과 훈계는 비난이 아닙니다.

책망과 훈계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와 입장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판하고 비방하고, 심지어 비인격적인 모독과 욕설과 폭력까지 행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은 훈계도 아니고 책망도 아닙니다. 이런 것은 다 삐뚤어진 책망입니다. 그것은 훈계가 아니라 비방이자 원망과 불평과 인신공격이요, 막말과 폭력과 저주와 살인입니다. 이런 것은 사람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말 것입니다.(욥의 친구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처음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으나 나중엔 비판하고 장죄함으로써 욥을 더욱 괴롭게 했었지요?)

 

      우리에게 좋은 훈계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좋은 훈계와 책망과 징계(reproof)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시원한 우물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훈계와 책망과 징계에 대해 가져야 할 바른 태도 다섯 가지

      그렇다면 우리는 훈계와 책망과 징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진리에 근거한 훈계와 책망은 그 자체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여행으로 말하자면 초행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가본 사람들이, 먼저 말씀에서 배워서 그 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타일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길에 있는 위험과 장애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가야하는 좋은 길에 대해서 일러주고, 우리가 그 길에서 멀어지고 이탈할 때에 우리를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충고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둘째, 훈계와 책망을 신앙으로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책망받고 훈계 듣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것을 들을 때 쓰고 기분 나쁘고, 지적을 받을 때 고통스럽고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훈계와 책망을 혈기로 받아서는 안 되고, 그 유익을 생각하고 신앙으로 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경계를 잘 받고 견책을 잘 받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야단을 제대로 맞지 못하고, 바른 충고와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사람이요, 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훈계와 책망을 잘 듣고 받아들이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그런 자가 복이 있습니다.

      셋째, 사랑에 근거하여 훈계와 책망을 해주는 사람을 적대시 하지 말고,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 책망하는 일을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사람들이 다 꺼려하고 하기 싫어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책망하고 경책하고 충고할 때에는 그래도 나에게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해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심 어린 훈계와 책망을 해 주는 사람에 대해 고마워해야 합니다. 우리를 꾸중해주고 사랑으로 책망해주고 바르게 훈계해 줄 수 있는 분이 우리 곁에 있다면, 은인으로 여기고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넷째, 훈계와 책망을 받을 때에 겸손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통 훈계를 듣고, 충고를 받아도 잘 안 듣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경험을 앞세우고,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합니다.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좀 컸다고 해서, 좀 배웠다고 해서, 부모와 스승의 훈계와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은 자요 거만한 자입니다( 12:1; 13:1).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13:1; 15:32 참조)고 하셨습니다. 거만한 자는 야단 맞는 것을 잘 하지 못합니다. 책망을 잘 듣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조언과 충고를 해줄 때에,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른 조언과 충고와 책망을 겸손히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훈계와 책망을 받을 때에, 실제로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책망을 듣고 잘못을 안 고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유다 왕 요아스가 자기의 고모부이자 멘토인 여호야다의 교훈을 떠나서 우상숭배의 길로 나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고, 마지막으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보내어서 책망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고종 사촌 형제인 스가랴의 책망을 거부하고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책망을 듣고도 그것을 회개의 기회로 살리지 못하였고, 얼마 후에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요아스는 부하들에 의해 침상에서 살해되고 맙니다. 우리는 바른 훈계와 책망을 받을 때에 우리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훈계와 책망, 충고와 조언은 우리의 인생의 문제와 실수를 치유할 수 있는 특효약과 같은 것입니다. 입엔 쓰더라도 쓴 약을 먹고 병이 나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복된 신앙생활은 일평생 주님의 훈계와 책망을 듣고 감사로 듣고 부족함을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훈계와 책망을 귀히 여기고, 이를 달게 받으며 살아가면 여러 모양의 복들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할렐루야!

 

       072122 안익선 목사/ 참조:대한예수교 장로회 양의 문 교회 말씀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