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14장 강해( 지혜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

호걸영웅 2022. 8. 18. 02:44

잠언 14장 강해( 지혜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서론)
 오늘 본문은 10:1-22:16까지에 있는 솔로몬왕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의 은사로 말한 단편경구(잠언) 375개 중에, 35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의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삶에 필요한 깨우침의 말들을 들려줍니다.
 
본론)

)지혜로운 사람과 거만한 사람 그리고 마음에 대하여(1-14)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집을 세운다’는 의미는 가정을 화목하고 평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과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여인’의 문자적인 의미는 ‘여인들의 지혜들’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여인’의 문자적인 의미도 ‘미련함’입니다. 솔로몬은 집안을 일으키는 주체를 그 여인들 자신이 아니라 여인들이 가진 지혜라고 표현함으로, 어떤 여인에게 지혜가 있으면 집안을 일으키고, 미련함이 있으면 집안을 무너뜨리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이세벨,아비가일)
 

당시는 지금처럼 남자와 여자의 인권이 평등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의 경제적은 부분은 거의 다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왕은 단호하게 집안의 흥망은 남자들의 지혜와 미련함에 달려 있지 않고, 여인들의 지혜와 미련함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왕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많은 아내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게는 첩 300명을 제외하고도 왕비(후궁) 700명이나 있었습니다. 솔로몬왕은 그 아내들 중에서 어떤 여인들은 자기 집을 잘 세워가고, 어떤 여인들은 집을 허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혜의 중요함은 솔로몬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동일합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이면 최상의 남편감, 아내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결혼정보 업체에서 다루는 조건에서 ‘지혜’라는 항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지혜는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빼어난 외모나 많은 봉급을 받는 직장보다 지혜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 있는 항목입니다.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 말씀은 정직한 사람이 가져야 할 노동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소로 농사를 짓는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어떤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거기에 따른 희생과 어려움은 감수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하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소가 없기에 소를 돌보지 않아도 되고, 소에게 여물을 줄 일도 없고, 소의 배설물도 청소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신 사람이 소만큼 힘을 쓸 수 없기에 그만큼 수확물의 양도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수확을 원한다면 반드시 소를 키워야 하고, 소를 키우려면 소의 건강상태도 돌아보아야 하고, 소에게 여물을 준비해서 주어야 하고, 구유도 청소를 자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가 편안함을 느끼고 더 많은 힘을 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근면하지 못한 사람은 가난을 면할 수 없고, 근면한 사람은 부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수고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이라는 말도 있고,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미련한 자’는 ‘바보’,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데, 정신연령이 낮거나, 뭔가 모자라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둔하고 성격적으로 완고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패역한 성품으로 어그러진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욕망과 세속적인 가치관입니다. 즉 미련한 사람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하면서 그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그 가치관에 동의를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이 깨달은 사실은 미련한 사람에게는 영적 지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글을 모르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은 많은 공부를 했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지식이 없습니다.(사두개인은 예수와 부활 자체도 믿지 않음)
 
또 미련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심상(尋常)하다’는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미련한 자, 하나님이 없어서 패역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죄를 심상하게(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은혜가 없고, ‘정직한 자, 하나님 앞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죄를 심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 은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다 죄를 심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삶은 미련한 것입니다. 죄를 심상하지 않게 여긴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심상하지 않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에, 일터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인간이 굉장히 뛰어난 존재인 것 같아도 인간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의 일은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장티푸스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자신은 머리가 살짝 아픈 것과 콧물 좀 흘리는 것을 더 크게 여긴다는 것입니다.(고뿔=+불의 의미)


 또 나는 몹시 즐거워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을 찾기도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에게 언제나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우리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까지 받아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망의 길임에도 사람이 그것을 바른 길로 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보기에 바른 것’과 ‘실제로 바른 것’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부자로 보이지만 가난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부자도 있습니다. 착시현상이 존재한다는 거죠.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행복한 것처럼 보였는데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닌 사람도 많고,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바르다고 말씀하시는 것만이 언제나 바릅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슬기로운 사람의 비교2(15-2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는다고 합니다. 즉 어리석은 사람은 ‘팔랑귀’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행동이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말뚝귀’를 가진 것과 같아서 자기 행동을 가볍게 하지 않습니다.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노함과 어리석은 일을 행함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이 결코 현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때에 결정을 하게 되면, 감정이 가라 앉고 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특히 노함을 ‘속히’하게 되면 더욱 그러합니다. 감정이 아주 격해지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 감옥에 갇힌 사람 가운데 다수가 감정이 격해 있을 때에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 못하고, 감정을 따라서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29절에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고 합니다.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참을 인자 세버니면 살인도 면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사람(교활한 사람)은 반드시 미움을 받습니다. 누구에게요? 모두에게 입니다. 1차적으로는 ‘사람들에게’요, 2차적으로는 하나님께’ 입니다.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에는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라고 합니다. 일을 입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손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것이 눈이고, 부지런한 것이 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눈으로 보고서 그 기세에 눌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못할 것 같다”, “힘들 것 같다”고 입으로만 말하고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가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 니다. 세상의 일 중에서 할 줄 모르는 일은 능력이 없기 때문보다,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피난처 하나님,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대조(26-35)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지금도 인구수가 많음이 국력의 강해지는 것과 연결이 될 때가 많습니다. 고대에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백성이 많아지고, 적어지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당시에 전쟁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왕이 전쟁을 치러서 승리하면 적국의 사람들을 끌고 와서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크게 증가되곤 했습니다. 반대로 패전을 하게 되면 자국민이 적국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인구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 민심이 점점 이반될 것이고, 그 왕은 왕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구의 늘어남과 줄어듦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출산이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어 평안 하면 사람들이 많은 출산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나라가 불안정하게 되면, 사람들도 동일하게 불안하여 임신률이 적어진다고 합니다.


(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공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라를 나라되게 하고, 국격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높은 경제력이나 막강한 군사력, 다양한 문화창달에 있지 않고, 신앙적이고 영적인 삶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 백성(민족)을 욕되게 하는 것도 국가가 파산을 하거나, 군사력이 형편없어지거나, 문화가 빈약해 지는 것에 있지 않고, 영적인 문제, 죄를 지으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바른 신앙과 바르지 못한 신앙은 국가를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결론)

잠언의 내용은 반복적 대조가 많습니다. 같은 말도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이 비슷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말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가 늘 동일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연륜이 길어질수록,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에 따라서, 마음상태와 성숙도가 달라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게 해석이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자녀다워지고, 성숙해 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늘, 하나님이 심어 주신 모두의 삶의 자리에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 지혜롭고, 슬기로운 길을 걸음으로, 시험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072922 안익선 목사 / 참조: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