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21장 강해( 하나님의 주권과 의인과 악인)

호걸영웅 2022. 10. 8. 03:43

                  잠언 21장 강해( 하나님의 주권과 의인과 악인)

찬송가 212; ‘너 성결키 위해“

서론)
21장의 주요 내용은 1)하나님의 주권, 2)의인과 악인의 생활자세, 3)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인관계(1-20)등 입니다.
오늘 본문은31개의 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론)

)하나님의 절대 주권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세상에서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 왕입니다. 그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왕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봇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둑을 쌓아 흐르는 냇물을 막고 그 물을 담아 두는 곳’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은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이라 물이 귀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종종 들었던 희안한 말은 ‘중동사람들은 물을 사먹는다더라’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충격이었던 것은 ‘그 물 값이 기름(석유)값보다 비싸다더라’이었습니다.(당시 5리알이라 했음)지금은 우리도 기름보다 비싼 물을 마트에서 종종 발견합니다.

그처럼 비가 적게 오는 곳에서 농사를 지을 때 둑을 막아 냇물을 막아두었던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농부가 논이나 밭에 물이 부족하면 보를 열어서 물을 대거나 물을 끌어다 썼습니다. 마치 농부가 봇물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왕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권력자인 왕의 마음을 그렇게 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인도와 반대로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화를 당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2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우리 눈에는 우리의 행동()이 ‘올바르다’, ‘곧다’고 주장하시는 하는데, 솔직하게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보기에도 올바르거나 곧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을 합리화하는 것 잘하고, 우리 삶에 면죄부를 주는 일도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무게를 정확히 달아보신다는 것을 직면하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겸손하게 행해야 합니다.

(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데, 제사(예배)보다 더 중요한 수단은 없었습니다.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이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을 더 기쁘게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닮아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섬기는 것이고, 정의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함을 닮아 올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재판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6절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이 아닌 욕망을 행하는 삶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사기(詐欺)’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언제 무너질 것인가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재물은 ‘불려다니는 안개’와 같다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하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 사방이 안개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안개는 바람이 불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몰려갑니다. 속이는 말로 모으는 재물이 그러합니다.

 

)평화에 대하여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사실 다투는 여인과 사는 것만 힘드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다투는 남편과 사는 것도 힘이 듭니다.
‘큰 집’이 대저택을 일컫는 ‘맨션’이라고 한다면, ‘움막’은 사전적으로는 땅을 파고 그 위에 거적을 얹은 임시집을 말하지만, 본문의 의미는 ‘옥상 위, 한쪽 구석에 지은 방’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집은 지붕이 평평하였기 때문에 옥상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 사는 것이 낫다’를 다르게 표현하면, ‘맨션(100평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옥탑방에 사는 것이 낫다’입니다.

 

)베풂에 대하여
(13)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부르짖는 소리’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거나 간절한 도움을 요청할 때에 내는 울부짖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의 울부짖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면,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것을 듣는 사람이 없게 하신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과 같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곧 미래에 어려움에 처한 자신을 돕는 것과도 같습니다.

)명철을 떠남에 대해

(16)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잠언 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명철의 길을 떠났다고 하는 것은 거룩하신 분(하나님)을 떠났다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데, 그 하나님을 떠남이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17)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연락(宴樂)’은 ‘잔치를 벌여 즐김’이라는 의미입니다. ‘술과 기름’은 잔치의 흥을 돋게 해주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잔치를 열 상황과 여력이 생겨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끔’이어야지 ‘늘’이게 되면 인생은 무너집니다. 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사스러운 술잔치를 이르는 말인 ‘주지육림(酒池肉林)’이 성도의 바른 삶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하여(21-31)
21-30절은 의인과 지혜자의 성공에 대해서, 악한 사람들의 패망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서 함께 증거합니다.
우리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꼭 지켜야 할 것 언행입니다.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잠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입()’과 관련된 교훈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말이 중요하고, 또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것이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2)”라고 권면 합니다. 인생에 일어나는 문제의 다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에는 말을 했기 때문이거나, 말을 해야 할 때에는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30-31)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은 우리에게 지혜의 사람과 명철의 사람이 되기를 반복해서 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솔로몬보다 100배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보다 100배 명철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지혜와 명철을 창조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말을 많이 준비해도, 아무리 많은 병사를 모아도 전쟁의 승패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 다. (오늘날 푸틴의 러시아 군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자, 최상의 명철입니다.

 결론)
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하는 눈에 보이는 것, 자신이 소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가…… 정작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나, 엄연히 살아 계시고 엄밀히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지혜와 명철의 길, 공의로운 길을 걷는 나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092222 안익선 목사/
참조: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