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약할 때 강함 되게 하심(고후12:7~10)

호걸영웅 2022. 11. 10. 04:16

약할 때 강함 되게 하심(고후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1.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2.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서론)

세계적인 기독교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 릭 워렌 목사는 주일마다 평균 6차례의 설교를 한다고 합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다소 살진 체격이라고 합니다.
외모로는 재적교인 8만 명의 대형교회를 감당할 것 같지 않은 분이지만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목회자 중의 한 분으로 평가받으며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설교하는 순간마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원래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 기능 이상(brain disorder) 증상을 가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에게는 간질증세 같은 것이 있었고 자주 졸도하기도 했습니다. 파킨슨 병처럼 떨리는 증상도 있어서 워렌 목사가 혹 졸도할 경우를 대비해, 예배 때마다 다른 목사를 대기시켜 놓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의 병은 간질병은 아니지만 그것과 비슷한 희귀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약 16만 명이 이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워렌 목사는 종종 설교 전에 아드레날린(혈압을 상승시키고 흥분을 돋구워 기운이 나게 하는) 주사를 맞기도 하고,  때론 앞을 천으로 가린 듯 설교 원고나 교인들도 제대로 안보일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 25년간 워렌 목사는 하나님께 이 질병을 고쳐주십사 계속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문제로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며, 자기 몸의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알게 됐다고 간증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된 비결은 자기의 무능과 부족함을 깊이 절감하고 죽도록 하나님께 매달린 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약한데서 강함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가) 자랑할 것이 너무도 많았던 바울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율법에 비추어도 전혀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율법에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또 그는
학문적으로 당시 최고의 석학이며 랍비인 가말리엘의 제자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 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적으로도 자랑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12 1절에서 4절에 보면, 그가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세째 하늘을 갔다 온 자기 자신을 어떤 한 사람으로 은유하여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방언의 은사와 병고치는 은사와 예언하는 은사와 영 부별의 은사 등등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울에게는 남들에게서 보기 드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질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불편 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바울 자신이 그것을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날카로운 가시에 날마다 찔려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런데 사탄은 날카로운 가시 를 가지고 바울의 눈을 찌르고, 마음을 찌르고, 생활 전반을 찌릅니다.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떠나기를 간절히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결론은 무엇입니까?

실망스럽게도 하나님의 음성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해 보니까 이 가시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예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울이 약할 때에 강해지고 온전해지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그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지 않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도 감사로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런 약함이나 약점, 혹은 가시를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사랑하는 자녀나 백성들에게 까지 기꺼이 선물해 주시는 것일까요? 여기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기도하게 하시려고.
본문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라고 했지요?
사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약점이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도 육체적인 가시가 있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다고 했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인간은 본능상 만족하고 풍요하면 기도하지 않는 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풍요와 번영이 나에게서 기도를 빼앗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단절됨으로써 그것은 저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의 테너 최승원 씨의 간증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주기도문의 노래를 1천 번을 부르면 낫는다고 해서 그대로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낫지를 않았죠. 그래서 1만 번을 불렀는데……. 역시 낫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원망보다는 감사가 넘쳐나게 되었고 이제는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은혜에 감격하며 신령한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약함을 가지고라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까지 도 사용하셔서 그 약함을 능히 극복하여 값지고 복된 인생이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 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기도로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비밀을 깨달았기에 자신의 고난과 약점까지도 감사하며 자랑했 습니다.

* 파스칼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채움 받아야 할 공간이 있다." 라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움 받을 공간을 그저 비워 두면 우리의 영혼은 정말 곤고하고 갈급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아무리 많은 것으로 채워도 바닷물을 마신 듯 목이 더 타 들어갈 뿐입니다.  허무하고 허망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 8절 말씀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 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게 되는 은혜가 기도 없는 은혜를 따라 가지 못합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은 얍복강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때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약할 때요, 형인 에서의 칼날 앞에서 가장 상한마음을 가졌을 때입니다. 이 때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엎드렸 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사생결단의 영적인 사투였습니다. 환도뼈가 다 으스러져도 꼼짝 않고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기도가 그를 강하게 만들었습 니다. 그의 기도는 그가 가장 약할 때 강함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 4 12절에서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런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둘째,
약함을 통하여 겸손하게 하시려고.
본문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 스스로 교만해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느 농촌마을에 무식하고 난폭한 한 농부가 있었답니다. 그는 아내가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였습니다. 농부는 부흥회에 참석하느라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아 교회에 좇아갔습니다. 마침 아내는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농부는 자기 아내의 뒷 머리채를 틀어 쥐고 순식간에 캄캄한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여인을 두들겨 패 주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그 여자는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면장님 부인이셨습니다. 농부는 너무나 당황하고 죄송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 면장부인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을 하면 당신을 용서할 것입니다." 농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마침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강한 주먹도 너무 의지하면 안됩니다. 무하마드 알리도 파킨슨 병으로 그 힘을 잃고 말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엔 눈꼽만도 못한 것을 하나님처럼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약함을 통하여 더 강해지게 하시려고.
본문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나의(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약해집니까? 그것은 인생의 태풍이 불어올 때입니다. 바람에 집도 날아가 잃어버리고, 사람도, 물질도 다 떠나가 버릴 때입니다.

빅터 플랭클이라는 정신 분석가는 그가 쓴 글에서 보면, 그는 한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죽은 유대인들의 시체를 치우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피골이 상접한 가운데 삶의 희망이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의 가슴속에 어떤 주도적인 생각을 하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들이 나를 지금 잡아 가두고 나를 죽일 수는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나는 저들에게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내가 주도하겠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내 생각만은 저들에게 포로가 되지 않겠다.라며 매일 자기만의 생각을 했습니다. 현실은 두렵고 암담했지만 그는 매일같이 나는 살 것이다" 를 되 뇌이며 견딘 끝에 마침내 자유를 얻어 새 생명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요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황하여 이성을 잃거나 분별력을 잃고 내 삶의 균형을 잃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도 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 까치가 지은 까치집은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까치들이 날씨가 좋을 때는 다른 일을 하다가, 바람이 막 불어오면, 그럴 때 까치 부부가 기다렸다는 듯, 나뭇가지 하나 하나를 열심히 물어다가 바람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집을 차곡 차곡 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거센 바람 속에서 쌓아 놓은 집이니만큼 태풍을 이기고도 능히 남는 둥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결론)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이해할 수마 있다면……,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오히려 더 놀랍게 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약점 속에 주님의 은혜가 더 넘치게 임했습니다. 바울의 약점 속에 주님의 능력이 머물렀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통해 더 기도하게 하시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약한 나를 강하게 하사 예수님의 능력이 계속 머무르게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날 해결되지 않는 약점과 가시 때문에 절망하거나 고민만 하지 말고 오히려  바울과 같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힘쓰시길 바랍니다.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 면 낱낱이 깨어져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온전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01822 안익선 목사 / 참조:김 명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