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전후서

디모데후서 3장 강해(말세의 고통을 이기는 믿음)

호걸영웅 2022. 11. 10. 04:24

디모데후서 3장 강해(말세의 고통을 이기는 믿음)



서론)

디모데후서 전반부는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을 것과 고난 가운데 어떻게 사역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장은 말세에 나타날 현상과 말세에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본론)

가) 말세에 고통받는 때가 온다 (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고 하며 3장이 시작됩니다.
‘말세’로 번역된 원문을 직역하면 ‘최후의 날들’입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세상이 멸망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말세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말세는 메시아가 오시기 직전의 시기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재림 직전의 시기를 말세라고 하기도 하며, 예수님의 초림부터 예수의 재림까지 기간을 말세로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구원의 시작이자 말세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세상의 구원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구원받을 자들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세상의 구원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영어 얼레디(already),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낫 옛(not yet)이라고 말합니다. 말세도 ‘이미, 그러나 아직’의 개념입니다. 진행상태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첫 이유는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 심각한 핍박의 때가 있다고 했으니 즉 말세는 시작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럼 말세엔 무슨 고통이 겠습니까?

 

먼저 2절부터 5절까지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의 특징19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말세에 사람들에게 일어날 현상이, 오늘날도  일어 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시대는 말세지말입니다. 고로 고통스럽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명령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활약이 있다(6-9)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19가지 죄악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는 사람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가만히 들어가는 것은 남몰래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는 사람이 선한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사람 들)을 유인합니다. 여기서‘유인하다’는 것은 ‘포로로 잡다’는 뜻입니다. 이는 거짓 교사들의 교묘한 속임수로 사람을 사로잡는 것을 묘사합니다. 요즘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와 같습니다. 그 리고 그런 유인에 빠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욕심을 쫓다가 죄에 짓눌린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항상 배우는 사람 같으나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고 경건의 모양만 갖춘 사람입니다.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얀네와 얌브레’는 구약 성경에 이름이 언급된 사람들이 아니고 아람어의 단어들로서 그 뜻은 ‘유혹하는 자’, ‘반란을 일으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각종 문헌에 나타난 것을 종합해 보면, 이들 은 원래 애굽의 술객들로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갔다가 이스라엘 광야 생활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노엽게 한 주동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 당시 거짓 교사들은 얀네와 얌브레이지만 교회를 어지럽힐 목적으로 착한 신자나 교사로 위장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결국 드러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견고한 진리의 터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말씀이신 주님의 진리 위에 견고히 서 있으면 어떤 교묘한 자들의 유혹이 오더라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고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용기를 더욱 심어 주었습니다.

) 바울의 경우를 예로 들다(10-17)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1절의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는 디모데가 이미 눈으로 본 체험을 상기시킵니다. 바울은 주님의 도를 전하면서 그 도를 실천하는,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박해와 고난을 받았던 일을 디모데에게 상기시켜줍니다. 그것은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1차 선교여행 증,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충동한 무리들에 의해 돌에 맞아 거의 죽은 상태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때 박해자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바울을 성읍 밖으로 끌어다 쓰레기장에 던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이렇게 비참할 정도로 박해와 고난을 받을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서 살려주셨음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약 20년 전의 그런 일들을 디모데에게 왜 상기시켰겠습니까? 그것은 ‘너도 나처럼 박해와 고난을 받을 것이나 주님께서 너도 지켜주실 것’임을 확신하라는 의미입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박해나 고난은 필연입니다. 고난이 있어도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어가는 이유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4장 참조).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박해와 고난을 주는 자들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고, 얀네와 얌브레와 같은 예수의 대적자들입니다. 이처럼 속고 속이는 세상 속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의 삶의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이란 진리의 말씀을 배울 때 확신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커서는 바울로부터 더 깊이 있는 복음 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어린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나 조부모는 가정에 서 성경 교사들이 되셔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자라면 주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고난 가운데 잘 따라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성숙하게 강건하게 만드는 유익이 있음을 16절과 17절이 알려줍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번역된 원문을 직역하 면, ‘하나님께서 호흡하셨다’뜻이 됩니다. 말은 호흡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즉 호흡하셨는 말은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을 통해 기록이 되었지만, 성령님께서 영적 감동을 사람에게 불어넣어 주셨기에 당시의 언어나 문법 등을 사용하여 기록이 되었습니다.

 

고로 성경은 4가지 유익과 능력이 있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함입니다. 사람이 성경을 통해 4가지 과정을 수료하게 되면 2가지를 얻게 됩니다.

 

1)하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실만한 사람 되기에 온전하게 되고, 2)다른 하나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능히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 는 일군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와 그들의 가르침을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거짓 교사와 대비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결론)

오늘날엔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잘 알고 남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경을 더욱더 가까이하고 배우라고 권면했지만, 이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1)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말세에 박해와 고난 가운데 2)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언제든지 얀네와 얌브레처럼 3)거짓을 퍼트리는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구원과 심판이 2천년 전에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는데 왜 아직 말세가 완성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아직도 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의 사닥다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되었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을 구원의 사닥다리로 데리고 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으로 더 무장하고 예수의 사랑으로 힘써 일해야 합니다.

                       101822 안익선 목사 / 참조: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