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25장 강해(왕에 대한 교훈과 송사 및 처세에 대해 )

호걸영웅 2022. 11. 10. 04:34

잠언 25장 강해(왕에 대한 교훈과 송사 및 처세에 대해 )

통일찬송가  340, 342

서론)
25-29장은 솔로몬의 제2잠언입니다. 25장에선 왕에 대한 교훈과 송사 등, 일반적 처세술에 대한 잠언 등이 있습니다.

본론)

)왕이 들어야하는 교훈(1-7)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
히스기야 왕은 남 유다의 13번째 왕입니다. 솔로몬의 시대와는 약 270년의 시간적, 혹은 시대적 간격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있을 때, 북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 유다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 왕이 신앙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신하들에게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 평가를 받는 솔로몬왕이 기록한 말씀들을 찾아서 정리하게 했습니다. 히스기야왕 시대에 학자들은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 등이 있었고, 이사야 선지자도 동참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조선시대의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5-29장까지의 솔로몬의 제2잠언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128개의 경구가 있고, 또 왕의 명령으로 모은 잠언들이라, 여기에는 왕과 신하, 왕과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것도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이것들 역시 솔로몬의 잠언들이기 때문에 10-22장의 솔로몬의 제1잠언에 나오는 내용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일을 숨기는 것이 하나님의 영화(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이 다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신다는 의미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주인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디지털화된 가정에서 현관문 개폐 버튼을 원격제어하고 , 가스불을 켜서 음식을 조리하고, 밖에서는 사람없이 차가 운전되는 과학기술을 우리가 다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보면 신기함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오묘한 것이 우리 가 보기에 하나님의 행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인간적 의미에선 하나님이 아니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철마다 단풍이 들면 어찌 나뭇잎이 그냥 떨어져도 되는데 왜 저리도 아름다운 색깔 을 내곤 떨어질까 신기하기만 합니다. 봄에 피는 길가의 꽃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이 어찌 이리 곱게 만드셨고 희한하게 벌나비를 불러 성장하도록 하셨을까 신비하기만 합니다.

 

우리는‘섭리(攝理)’라는 말을 많이 듣고 말합니다. 섭리의 한자어 ‘섭()’자는 ‘손 수()’ 변에, ‘귀 이()’자가 3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행하신 것을 듣고, 듣고, 또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인간이 이해할 없기 때문에 듣고 또 들어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오묘한 행하심에 대해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3)”라고 했고 믿음도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영광)이라고 합니다. ‘살피다’의 뜻은 ‘탐색하다’, ‘조사하 다’, ‘시험하다’입니다. 왕은 가능한 상세하게 모든 일의 경과를 살펴서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역할이라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일천번 제 후에 기도할 때에도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 고 했습니다. 당시 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잘 듣고 재판을 하는 바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4-5)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은광(銀鑛)’에서 은을 캐면 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과 함께 온갖 불순물들이 함께 채굴됩니다. 거기서 은을 가려내는 방법은 은만 녹이거나 추출하는 방법도 있고, 은이 아닌 것을 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은이 아닌 것을 버리고 버리다 보면 은만 남게 되고, 그것으로 은장색(세공업자)은 좋은 은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그릇’에 비유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순물이나 오염된 것들을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주인인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편한 도구가 될 것이고, 불순물을 가만히 두면 둘수록 주변을 오염시키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임금도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충신들을 더 많이 세우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람들이나 간신배들을 물리치면 신실한 사람들이 남게 되고, 그들을 통해서 왕위가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6-7)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예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이 오면 말석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든 사회생활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피해야하는 송사와 언쟁, 합당한 처신(8-17)
8-17절에는 송사와 언쟁에서 피해야 할 것과 일상생활에서 합당한 처신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지만, 혹 법정에서 다투게 되는 지경에 이를지라도, 정도(正道)가 있음을 말합니다. 법정에서는 정정당당하게 변론만 하고, 공방 내용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상대의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일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상대의 인격에 손상을 주는 비열한 일이 되고 신뢰가 깨지는 불행을 낳기 때문입니다. 꼭 법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부간에 도, 가족 간에도, 친구간에도 지켜야할 예의와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넘지 않으면, 혹 오해가 있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기 쉽지만, 선을 넘어서 인신공격과 주변사람들까지 비난하게 되면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언어생활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표현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여러 예배나 성경공부 등에서 많은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 때 들었던 모든 말씀이 다 기억 나고 , 또 다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한 토막의 단락이나 성경구절등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얻게하고, 잠든 우리의 심령을 깨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그 문장이나 교훈등을 통해 우리의 가치 관  바뀌고, 목표가 바뀌고 인생이 새롭게 됩니다.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복되고, 그것을 바르게 받는 사람도 복됩니다. 운동을 잘하게 될수록 코치의 조언을 깊이 듣듯이,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깊어질수록 다른 사람의 조언을 깊이 새겨 듣는 법입니다.

(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의 유사 구절은 (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보리 수확은 4월 중순부터, 밀 수확은 6월 초부터 시작합니다. 특히 6월에는 이미 건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낮에는 몹시도 무덥습니다. 추수하는 농부에게 ‘얼음냉수’는 큰 기쁨입니 다. ‘얼음 냉수’의 원 의미는 ‘얼음을 띄운 물’이 아니라 ‘눈의 차가움’입니다. 이스라엘 북쪽 2,814m의 헤르몬 산에서 흘러나온 눈이 녹은 차가운 물입니다. 즉 ‘얼음 냉수’는 ‘빙하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장 시원하게 들리는 메시지는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협상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며,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얼음 냉수와 같을 것입니다.

(16)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27)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곧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절제가 곧 성공의 큰 요인이 됩니다.

)이웃사촌, 의인의 삶(18-28)
18-28절은 이웃과의 관계와 의인이 지켜야할 것과 버릴 것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18)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방망이, , 화살은 모두 살상무기입니다. 거짓증거가 그와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된 것을 옮기는 사람은 상대를 향해서 위험한 방망이와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고, 화살을 날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는 큰 죄악입니다.

(19)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환난의 날’에는 사람들이 진실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제치하 때나, 20년 전의 IMF 때라든지 어려운 때에는 기회주의자가 많이 덕을 보며 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믿을 만한 사람, 진실한 사람을 곁에 두거나 조언을 듣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익만 따라가며 배신을 일삼으면 나중엔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다윗왕을 배신하고 반역한 압살롬과 아히도벨도 좋은 예가 됩니다. 간신이나 배반자의 훗날엔   역사의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경우에 합당하지 않는 언행이 상대에게 얼마나 맘을 더 상하게 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굉장히 실제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상대는 깊은 고통 속에 있는데 그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것은 한겨울에 옷을 벗기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이킹 소다에다 식초를 부으면 거품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납 니다. 즉 경우에 합당한 언어사용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혹시 이웃이 원수처럼 여겨질지라도, 그가 굶주려 있거든 먹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절제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고대와 중세에서 성벽은 한 도시나 국가가 적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적들이 쉽게 공격하지 못했고, 또 도시와 국가의 힘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곧 패망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도 나라를 굳게 지키기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성벽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절제로 쌓는 성벽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 절제는 우리의 삶과 신앙을 지키는 매우 훌륭한 은사요 힘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왕의 본분과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자요 공주입니다. 고로 듣기를 잘하고 옳은 판단을 위해 경솔히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매사에 정직히 말하고 또 절제되고 적당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겐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저와 여러분 모두가 살아가도록 교훈해 주시고 격려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102022 안익선 목사 / 참조:
정한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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