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27장 강해(나를 자랑치 말고 지혜자의 말을 순종하라)

호걸영웅 2022. 11. 10. 04:37

잠언 27장 강해(나를 자랑치 말고 지혜자의 말을 순종하라)

찬송가

서론)

잠언 27장은 지혜로운 처세에 대한 충고들로 엮여진 장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히스기야왕의 신하들이 수집하고 편집한 솔로몬왕의 잠언들의 일부로서 자화자찬의 경계와 분노와 투기에 대해서, 또 이웃이 나 형제간의 관계, 그리고 우정 등에 대해서도 충고하고 있습니다.

본론)

(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어제는 지나간 시간임으로 우리의 것이 아니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라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은 오직 오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살이들이 파리들과 놀다가 해가 지니, 파리들이 “내일보자!”라고 말하니, 하루살이들이 “내일이 뭐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파리가 보기에 약 80( 30,000)을 사는 인간은 영원을 사는 것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80년도 영원에 비하면 하루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짧은 우리의 인생이 ‘아침 안개’와 같다고 합니다. 안개가 아무리 짙게 껴 있을지라도 바람이 불거나 해가 그 얼굴을 드러내면 안개는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복음성가 중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의 후렴은 우리말과 영어가 좀 다릅니다. 영어가사는 이러합니다.
=내일에 관한 많은 것을 나는 이해 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일을 쥐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압니다. 또한 내 손을 잡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도 압니다. (Many things about tomorrow I don't seem to understand. But I know who holds tomorrow. And I know who holds my hand.)
, 내일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또 자기 자랑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자화자찬(自畵自讚)’하지 말라고 합니다. 칭찬은 ‘자화타찬( 自畵他讚)’하 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칭찬은 다른 사람이 해 주면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자기가 자기를 하면 추하고, 시기나 혐오를 불러 옵니다. 물론 최고의 칭찬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투기의 파괴성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3-4)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돌도 모래도 무겁기에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습니다. 돌이나 모래를 가슴위에 올려놓고 누우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짓누를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우리를 짓누르고 망치는 것이 미련한 사람의 분노입니 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 다윗을 시기하여 이미 판정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비교의식은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악입니다.

진실한 우정과 그렇지 못한 우정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5-6)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면책(面責)’은 ‘마주 대하여 책망하다’라는 뜻입니다. 바른 사랑은 뒷담화를 하지 않습니다. ‘숨은 사랑’은 사랑의 표현을 숨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야 할 말, 해주어야 할 말을 숨긴 채 달콤한 밀어(蜜語)만은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소리를 듣기를 원합니다. ‘직언(直言)’은 듣는 사람도 힘들지만, 하는 사람도 힘듭니다. 직언의 바탕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직언은 비난과 정죄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사랑의 표현이어야 할 입맞춤이 거짓이 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배신과 동의어입니다.

(7)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앞에서 ‘꿀’은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으로, ‘가장 좋은 음식’의 상징으로 나왔었는데, 여기에서는 단지 ‘좋은 음식’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좋은 것’을 뜻하면서, 특히 ‘좋은 충고’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도움을 간절하게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거슬리는 것도 잘 받아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언이나 충고, 상담, 도움의 말 등은 그것을 전하는 사람보다,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올리브유에 여러 가지 향을 섞어 만든 것으로 머리에 붓거나 피부에 바르는 화장용 기름을 뜻합니다. 그리고 ‘향’은 ‘침향’이나 ‘계피향’ 등의 냄새를 발하는 것을 말하 는데,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런 향료를 뿌렸습니다. 고로‘충성된 권고’가 아름다운 기름과 같다는 뜻입니다. 충성된 권고’의 문자적인 뜻은 ‘생명의 권고’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권고를 하면 상대가 듣습니다. 이런 권고를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면, 그 인생이 참 복되고 안전해 집니다.

(1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믿음의 부모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부모도 남에게 비방이나 공격을 당할 때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는 떳떳한 상황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잘 자란 자식은 부모의 삶을 강하고 힘있고 자랑스럽게 해 줍니다.

(12)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믿음이 좋다는 것’과 ‘무모하다는 것’과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만약 예배당 건물을 높이 지으면 그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꼭 피뢰침을 답니다. 다른 건물도 아니고, 예배당을 짓는데, 피뢰침까지 달아야 할까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면, 번개가 다른 곳에 떨어지게 해 주시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번개는 가장 높은 건물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연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시는 것을 믿기에 피뢰침을 다는 것이고, 그것 이 슬기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집이 셉니다.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서도 고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해를 당하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그래서 22절은 미련한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미련한 사람과 곡물을 절구에 함께 넣고 공이로 찧으면 곡물은 껍질이 벗겨지는데, 미련한 사람에게 덮인 미련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미련한 사람의 미련은 겉에 있지 않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이웃을 위해서 축복, 복을 비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에나 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좋은 것일수록 가려서 때와 장소, 방법 등을 잘 가려가며 해야 합니다.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영향력이 몹시도 큼을 말합니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보면 비슷한 수준의 두 선수를 나란히 스케이팅하게 하게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겨뤄가며 장단점을 보완하게 해 주어서 더 나은 결과를 내게 됩니다. 그런데 최고의 두 선수가 경기를 하다가 가끔 한 선수가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달리게 되는데, 거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합니다. 넘어진 선수가 자신의 실력을 날카롭게 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부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실례; 낙심한 마르틴 루터와 상복을 입은 그 아내 이야기)

 

(20)스올과 아바돈; 지옥과 파멸, 지옥과 멸망의 구덩이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불순물이 섞인 은은 도가니를 통과해야 은다운 은이 됩니다. 또 여러 혼합물이 섞인 금은 풀무를 지나야 순금이 됩니다. 사람은 ‘칭찬이라는 도가니와 풀무’ 통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면목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성도다워지려면 ‘고난’을 통과해야 할 것 같은데, ‘칭찬’을 통과하면 더 좋습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란 말이 있듯이 칭찬은 더 큰 발전과 진보를 나타나게 합니다.

23-27절은 근면한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설명합니다.
(23-27)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양 떼의 형편에서 ‘형편의 문자적인 의미는‘얼굴’입니다. 그것은 양을 칠 때에 그저 마릿수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 얼굴을 확인하며 건강한지, 다치거나 병들지 않았는지 스트레스 받는  상태는 아닌지 확인하며 살피라고 합니다. 소를 칠 때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돌아보면 어린양 털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고, 염소를 팔아서 밭을 살 수도 있고, 염소의 젖을 짜서 가족들과 일하는 사람들, 여종까지 먹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성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 적용을 위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 보십시다.

 

1. 면책이 숨은 사랑보다도 낫다고 합니다. 사랑의 면책을 통해 당신의 삶이 새로워지거나, 누군가의 인생을 새롭게 만드는 통로가 되신 일이 있습니까?
2.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합니다. 함께 있어서 그 누군가의 인생을 빛나게 하신 일이 있습니까?
3.도가니는 은을 만들어 내고, 풀무는 금을 만들어내며, 사람은 칭찬을 통하면 자신의 실상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칭찬은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칭찬을 받을 때와 받지 못할 때가 어떻게 다릅니까?

 

결론)

우리가 내일 일을 자랑하지 않고, 미련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우리와 함께 살게 하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신실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공급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부 터입니다. 우리의 참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며,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 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이생에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경외하고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가득한 한 나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0322 안익선 목사/ 참조:
 정한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