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29장 & 30장 강해

호걸영웅 2022. 12. 18. 00:08

잠언29장 & 30장 강해(왕이 알고 행해야 할 일들과 기타 잠언)

 

서론)

솔로몬이 후대의 왕들이 알고 행해야 할 일들과 기타 잠언에 대한 모음이 본문 29장의 주요 내용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5~29장 까지가 히스기야가 편집토록한 솔로몬 왕의 잠언입니다.

 

본론)

)후대 왕들에 대한 교훈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

자주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은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그 기회를 잃는다면 갑자기 패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회의 소중함을 교훈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여러 번 징계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기회 주심임을 알고 우리의 나쁜 옛습관을 속히 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거짓말, 게으름, 시기, 질투, 다툼, 편가르기, 하나님에 대해 불경건한 태도, 후욕함, 탐심 등도 다 그러한 버려야 할 것들이라고 하겠습니 다.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백성들 가운데 의인이 많아지면, 공의가 시행됨으로 그들 가운데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자 같은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불의가 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백성들은 고통을 받죠. 이것은 한 공동체의 행복과 불행이 그 공동체에 모두 관계돼 있음을 말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문화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29: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자녀들 가운데는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들이 있는 반면, 고통을 주는 자들도 있죠. 이것은 그들이 각각 무엇을 좇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를 사모하는 자식은 아비의 기쁨이 되지만 창기를 좇는 자는 방탕하여 재물을 허비하고 또한 아비의 근심이 됩니다. 왕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왕자들이 주색잡기에 빠지게 되면 왕통이 심각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기쁨이 되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29: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의로 백성들을 지도한다면 나라는 견고하게 세워져 갈 것이지만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 급급하게 되면 그 나라는 부패하여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지도자로서 바르고 어진 통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춘향전의 변 사또처럼)

 

29: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아첨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는 위선적인 행위이죠. 그러므로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아첨하는 것은 이웃을 잘못 가도록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고, 아첨하는 자의 말을 듣는 것은 스스로를 그물에 걸려 패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왕은 아첨하는 간신배들을 당연히 멀리해야만 합니다.

 

29:6. “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죄를 범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에 걸리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모르지만 후엔 결국 그 꼬리가 밟히게 됩니다.

 

29: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지식이 있는 자는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지만 지식이 없는 자는 그들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죠. 여기 지식이란 가난한 자들에 관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말 것을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자들을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기에,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를 도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은 복을 받게 됩니다. 악인은 반대로 가난한자를 짓밟고 수탈하기에 바쁩니다.

 

29:8.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거만한 자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신에 대하여 잘못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죠. 이런 사람은 성읍 을 요란하게 어지럽히게 되지만 슬기로운 자는 오히려 노를 그치게 하고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표준새번역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어요.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걸어서 소송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폭언과 야유로 맞서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안심할 수 없다”라 했죠. 결국 미련한 자와는 가능한한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29: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악인에게 의인은 자신들이 행하고자 하는 악한 일에 걸림돌이 되므로 악인들은 언제나 의인들을 미워하고 헤치려 든다는 뜻입니다.  

 

2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노는 본질적으로 억제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노하는 자는 실수할 가능성이 많죠. 그러므로 노를 모두 드러내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가능한한 억제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합니다. 화난다 해서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면 결국 본인도 낭패를 당하고 감옥에 먼저 가기도 합니다.

 

9:12.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하인은 상관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음으로 상관이 거짓말하는 자들을 가까이하고 두둔하면 하인들도 복종하여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고로 하인들은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29: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의 놀라운 자비와 인내를 나타냅니다.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왕은 백성들의 복지 를 위하여 세움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위임받은 왕권을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의 복된 삶을 위하여 성실히 사용할 때 그의 위가 영원히 견고해 질 것이라 뜻입니다. 그러나 왕권을 탐욕을 위해 사유화할 때, 잠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 왕권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붕괴될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교훈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어린 아이는 합당한 지도를 받을 때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씀이죠. 그러므로 자녀가 마땅히 책망 을 받아야 할 때 책망해 주는 자가 없다면 그 아이는 그릇 행하게 되어 결국은 부모를 욕되게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자녀의 그릇됨의 일차적인 책임이 그를 양육할 책임이 있는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자녀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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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악인이 많아지면 그들이 짓는 죄도 많아지고 그 죄들은 그들 스스로 멸하게 합니다. “의인이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는 것은 악인들이 망할 때,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보존하신다는 의미가 있죠.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악인들이 행하는 악에 영향을 받지 말고 오히려 묵묵히 의()의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여기 “네 자식을 징계하라”는 말은 엄격히 교육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양육됨으로 자녀의 장래 모습은 부모의 교육 여하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입니다.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란 예언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으로서 백성들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길을 지시하신 말씀이죠. 그러므로 묵시는 백성들에게 삶의 이정표와 같죠. 따라서 묵시가 없으면 삶의 이정표가 없어져 하나님 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 어렵게 됩니다.  

 

) 주종관계에 대한 교훈

29: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종과 주인 사이의 다른 점은 자율적 의지를 소유하고 있느냐 예속된 의지를 소유했느냐로부터 오는 차이죠. 종은 예속(구속)된 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마땅히 행할 일도 주인의 지시가 있을 때만 대개 행하게 됩니다. 고로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가르킵니다. 이럴 때엔 성과에 따라 상벌을 잘 조절해 지급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29: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죠. 그러므로 언어에 조급한 사람은 사려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기 보다는 언제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즉흥적으로 말합니다. (입만 살아가지고!라는 욕을 자주 먹는 분들은 조심하셔야 함)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 수도 없습니다. 고로 함부로 약속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보다 더 큰 사고를 치게 되고 신용을 잃게 된다는 의미입니 다. 고로 성도들은 늘 신중하고 조심해서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양이 양안 일구의 의미는 뭘까 요?)

 

29: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주인이 종을 자식처럼 대한다 할지라도 종일뿐이므로 종은 언제나 자신의 분수를 알도록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22,23절 생략)

 

)하나님을 의지하는 정의롭고 바른 삶을 살라는 교훈

29: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도적과 공조하는 것은 도적과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적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죠. 그러므로 이와 같은 행위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처벌을 당하게 하는)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사람을 두려워하면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이용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보다는 사욕과 편견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따라야 합니다. 고로 하나님을 의지하 는 자가 더 안전합니다.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여기 “주권자”란 권세를 가진 모든 자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권세를 가진 자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왕이나 주권자의 권한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매우 제한적이거나 불완전합니다. 결국 모든 은혜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주권자 같은 사람에게 보다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기도하고 경외해야만 합니다.  

 (29:27. 생략.)

 

결론)

 이상 우리는 잠29장에서 왕의 바른 통치를 위한 교훈과 자녀교육, 주종관계, 하나님의 권위를 더 인정하고 살 것 등에 대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우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종종 바른 지도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인애에 기초한 공정한 지도록을 발휘함이 중요합니다. 또 힘있는 사람이라고 과잉 충성 말고 손익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 그리고 자발적인 헌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축복의 참된 길이 됩니다.

 

1117 안익선 목사/ 참조: 서신교회 양인국 목사님

                        잠언 30장 강해 (아굴의 잠언)


서론)

오늘 본문에는 아굴이 평생에 구하는 소원 두가지가 나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땅히 구해야 할 두 가지라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아니면 지나치게 세속을 떠나서 수도승처럼 살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도 성도답게 절제하며 성실하며 거룩하게 사랑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굴의 평생 소원 두 가지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본론)

)아굴에 대하여
1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야게(=결백한 자)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곧 이디엘과 우갈(전수자)에게 이른 것이니라”했죠.

아굴이 자기의 두 아들, 이디엘과 우갈에게 말한 잠언입니다. 아굴은
‘수집자 혹은 모으는 자’, ‘고용된 자’라는 뜻입니다. 혹자는 그를 솔로몬이라고도 하고, 르무엘 왕의 형제, 혹은 유다 왕 히스기야에 속한 사람들 중에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영어성경 RSV에서는 맛사 출신으로 소개되는데 만일 그 소개가 맞다면 아굴은 아라비아인이라고 봅니다. 사실 모세의 아내나 장인도 다 아라비아 사람이니 모세 출애굽 당시에 다수의 아라비아인들이 동행했고 그 후손들도 상당수 있었을터이니, 솔로몬 시대나 히스기야 시대에도 많은 후손들이 존재했을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제 개인 소견으로는 아라비아 혈통을 지닌 히스기야 당대나 그 이전 시대에 위대한 율법학자나 철학자 중 한 분이 아닐까 추론해 보기도 합니다. 그분이 그의 두 아들에게 잠언을 가르친 것이 잠언 30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굴의 겸손함
2-4=“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 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난 모르는데,,,)  너는 아느냐 ”라고 합니다.

아굴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도 무지하고 총명도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특히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 했습니다. 이 잠언을 쓰기 이전에 자기의 모습을 증언한 말입니다.
그후 그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장중에 모으신 분이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분이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분이 누구인 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셨고 그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아굴은 지혜의 일부를 소유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은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학식 없는 어부였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 을 전하는지 놀라워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소유해야 지혜의 사람들 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니 가감치 말아야 한다
5-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수하고 온전합니다. 마치 도가니에 단련한 정금같이 순수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죄와 사단에서 보호하십니다. 가난과 질병과 실패에서 보호하십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은 더하지도 빼지도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책망하 실 것이며 그는 거짓말하는 자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다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게시록 초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단이 바로 이런 죄를 저지를 때 생겨 납니다.

)아굴의 소원 두가지
7-9=아굴은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 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구하였습니다. 그는 첫째 헛된 것과 거짓말을 자기에게서 멀리하게 해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헛된 것은 세상적인 것과 탐욕적인 것들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돈과 쾌락과 명예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런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떠나 수도승처럼 사는 것도 아닙니다. 연꽃처럼 구정물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자신의 깨끗함은 지켜야합니다. 세상에게 영향을 주면서 세상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그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둘째,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너무 부유하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 두려웠습니다. 너무 부한 것도 경건을 이루기에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큰 부를 추구합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할 때가 많습니다.

 

또 너무 가난하므로 도둑질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사람이 3일 굶으면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범죄하기 쉽습니다. ‘레 미저라블’에서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가 붙잡혀 오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부잣집 아들이었다면 그리하진 않았을 겁니다.


고로 아굴은 절제된 부를 구하였습니다. 절제된 부는 경건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극심한 가난으로 시험을 받으시고 부귀 영화로 시험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시험받을 환경을 피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니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자
10-11=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방하면 그 비방으로 인해 비방당한 사람이 큰 손해를 입거나 처벌을 받습니다. 억울한 징계에 놓이기도 합니다 고로 가벼운 비방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부모를 비방하거나 저주하면 천벌을 받습니다. 언행에 주의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로17절도“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어요.

)교만치 말고 탐심을 버려라
12-14=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이런 자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깨끗하게 여기면서 더럽고 악한 행동을 합니다. 이들은 겉은 깨끗하나 속이 더러운 위선적인 자입니다. 심히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자가 있습니다. 바리새인 같은 부류입니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냉정하고 이기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휘두르는 칼과 같이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해치며 재산을 약탈합니다. 그 근원이 교만과 탐심입니다. (거머리는 족한 줄을 모릅니다)
15,16절도 “거머리(탐관오리들)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고 하십니다. 교만과 탐심 둘은 다 악하고 위험합니다.

거머리의 두 딸은 끊임없이 피를 요구하며 만족할 줄 모릅니다. 딸은 두 개의 빨대를 의미합니다. 그 거머리는 두 빨대로 끊임없이 피를 원합니다. 임신하지 못한 여자(아무리 동침해도 잉태치 못함)나 물로 채울 수 없는 땅이나 타오르는 불이 만족을 모릅니다. 탐욕은 만족을 모르고 타오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자족과 감사에서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깨닫기 어려운 것 서너가지
18-20=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합니다.
남자는 음녀와 동침하고도 뱀이나 독수리나 배처럼 지나간 것처럼 흔적을 남기진 않습니다. 음행은 은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아시니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견딜수 없는 것 서너가지
21-23=“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어울리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이 서너가지 있더라는 것이죠. 결국 모든 존재는 존재 가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각자는 각자의 자리를 분수에 맞게 살아야합니다.

)작지만 지혜로운 네 가지
24-28=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고 합니다.

개미는 감독자도 없지만 겨울을 준비하여 부지런히 일합니다. 사반은 토끼와 너구리의 일종으로 안전한 곳에 집을 지어 살아갑니다. 메뚜기는 무리를 지어 협력하며 삽니다. 도마뱀은 보통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왕궁에서 잘 살아갑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생존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근면과 협동과 자신을 보호하고 지혜롭게 적응하며 잘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29-31절은 생략)

 

)악을 행했으면 빨리 회개하라
32,33=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교만하고 악을 행하였으면 빨리 죄를 멈추고 회개하라는 의미입니다. 젖을 저으면 엉긴 것이 있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듯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일어납니다. 우리 죄는 가리우기가 어렵고 곧 드러날 수 밖엔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빨리 회개함이 좋습니다. 분내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결론)

아굴은 평생의 소원 두 가지를 말함으로써 절제된 부와 참된 경건의 삶을 추구한 분입니다.
우린 무엇이든 너무 많은 것을 피하고 적당하고 절제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과식, 과장, 과대포장, 과소비, 과음, 과격한 행동
…언행…모두 덕스럽지 못하고 후회를 불러옵니다.  우리 삶에 늘 절제의 열매를 구하고 화평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120222 안익선 목사/ 참조: 오요한 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