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잠언 28장 강해(의인과 악인의 비교)

호걸영웅 2022. 12. 18. 00:07

잠언 28장 강해(의인과 악인의 비교)

찬송가  통일 359,370

서론)
히스기야 왕 시대에 그의 신하들이 특별히 가려 뽑은 솔로몬의 제2잠언으로 불리는 오늘 본문은 다시 악인과 의인을 비교 설명하며 그들의 행위로 인한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락 구성은  eq \o\ac(,1)11~12절까지는 율법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된 자이며,  eq \o\ac(,2)2 13~18절까지는 악인의 멸망, 의인의 구원을 말하고,  eq \o\ac(,3)319~28절까지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론)

)악인과 의인의 구분, 율법(1~12)

1절입니다. “악인은 쫒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는데도 악인은 도망을 간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추적해 오는 자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이 그를 불안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책망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양심이 있기에 괴로워하지만 그 괴로움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삶에서 돌이킬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반면 의인의 삶은 사자(Lion) 같이 담대합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에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고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분명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다릅니다. 세상의 평안은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지만, 하나 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고 요동치 않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기도를 하는데…… 그 결정이 하나님의 뜻인지 궁금하다면, 내 마음속에 평안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평안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요한복음 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할 때 제일 먼저 샬롬! 이라고 외칩니다. 샬롬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이보다 더 귀한 게 없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안의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의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4절과 7절입니다.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고 했죠.
음식을 탐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욱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냥 너희들끼리 알아서 살아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끔 인생 사용 설명서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율법, 하나님의 말씀입 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가장 무서운 벌이 내버려 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악 된 인간이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도록 내버려두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양심의 가책을 주시고 고난과 시험거리를 주심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증거입니다.

다수의 인간들은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위해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자신을 가꾸기 위해 미모에 온 관심을 쏟고,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하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멋진 집에서 잠을 자려 합니다. 이 모든 게 나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 나를 위한다면 이보다 더 먼저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입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나를 맡기겠다는 결단입니다. 나를 위한다면서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허망한 인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3절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순종하며 살 것을 강조한 후, 이어서 이웃과 바른 관계 맺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배려하고 구제하는 일에 자신의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와 부자가 있다면, 누가 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이겠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의 마음을 더 잘 알기에 더 배려할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풍족한 부자는 자기에게 필요 없는 부스러기라도 남기지만 가난한 자는 부스러기 조차 남김없이 쓸어가기 때문입니 다. 부족함이 절실함을 낳고 그 절심함이 무자비함을 낳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고리대금으로 재산을 늘리는 걸 의미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고리대금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22:25, 25:36~37, 23:20, 15:5 참고). 일반적으로 남에게 돈을 빌려 쓰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높은 이자를 내는 돈을 빌리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빌린 돈을 더 갚기 어려워집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돈을 갚지 못하면 논과 밭을 팔고, 그래도 갚지 못하면 자기 가족을 팔아서 빛을 갚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리대금은 자유인을 종으로 만드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부당한 방법으로, 불법으로 또는 요행으로 재물을 모은 경우를 의미하는데, 이렇게 모은 재물은 자기 바램과 달리 결국엔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불법으로 번 돈은 정상적으로 내가 사용할 수 없으며 그 돈은 흐르고 또 흘러서 예상 외로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사람들에게 들어가 그들을 돕고 구제하는 일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갑자기 졸부가 된 사람치고 그 돈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돈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피땀 흘려 돈을 번 사람은 그 돈의 가치를 압니다. 그러나 내 노력으로 번 돈이 아니라, 불법으로 또는 요행으로 얻은 돈은 내가 사용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냥 흘러가버립니다..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구원(13~18)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15)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27)

본문 곳곳에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37~3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의미는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율법은 모세 오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신 첫번째 약속입니다. 제일 먼저 만들어진 구약성경입니다. 그 다음 선지자의 강령은 예언서를 의미하는데 여호수아부터 열왕기 하권까지, 그리고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며 살아갈 때,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두번째로 만들어진 구약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불성설 語不成說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된 자이다(19~28)

20절입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여기서 충성된 자와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를 비교합니다. 다시 말해서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충성된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부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속히 부하고자 하는 탐욕이 문제입 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주일도 쉬지 않고?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충성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충성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충성하는 존재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6절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세상을 사는 인간을 믿었다가는 자주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철석같이 믿는 자는 어리석지만,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들)

1.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다.
2. 나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물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내 이웃을 위해 드리는 물질과 시간은 쓸데없는 낭비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3. 결함이나 문제를 가진 상대를 잘 알기에 더 잘 배려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잘 알기에 그 약점을 도리어 공격하지는 않았습니까?
4.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인간임을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결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지키려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바람직하고도 아름답고 떳떳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111022 안익선 목사/ 참조:  이성실 님

 

마치는 찬송:통일 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