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성육신의 은혜( 요 1: 9~14 )

호걸영웅 2023. 1. 28. 05:08

성육신의 은혜( 1: 9~14 )

9.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서론)

세상에는 다미엔 신부로 잘 알려진 요셉 드베스터(Jozef de Veuster, 1840-1889) 1840년에 벨기에에서 옥수수 상인인 아버지의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 그의 형 아우 구스테(Auguste)의 뒤를 따라 그가 스무살이 되던 1860년에 수도사(Picpus Brother)가 되어 다미엔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그는 선교사가 되기를 서원했고, 3년 후에 그의 형 아우구스테가 하와이 선교사로 가려다가 질병으로 인해 갈 수 없게 되자 형 대신 그가 하와이로 가게 되었습니다.

 

1864 3 19, 오랜 항해 끝에 다미엔은 호눌룰루에 도착했고, 이틀 뒤에 그곳에서 신부 로 서품을 받습니다. 당시 하와이 원주민들은 외부인들이 옮긴 전염병들 때문에 수천명이 죽어 가고 있었는데 특히 나병(한센씨병)은 당시에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와이 의회(Hawaii Legislature)와 왕 카메하메하 5(King Kamehameha V)는 “나병 확산방지 법”(Act to Prevent the Spread of Leprosy)을 제정하여 모든 나병환자들을 사람의 출입 이 매우 어려운 몰로카이(Moloka'i)섬의 칼라우파파 반도(Kalaupapa peninsula)에 강제로 격리 수용시켰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곳에 사람들을 격리만 시키고 제대로 돌보지 않아 환자들은 절망 가운데 방탕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선교를 책임지고 있었던 매그레 주교 (Louis Desire Maigret)는 저들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영적인 돌봄이 필요하다고 여겨  이들 을 도울 자원 신부들을 모집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지명해서 파송하는 것은 곧 사형선고와 같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했습니다. 이에 네 명이 자원했는데, 이들은 6개월 정도씩 돌아가면서 그곳에서 선교하기로 합니다. 그 중 처음으로 파견된 사람이 바로 다미엔이었습니다. 그가 몰로카이에 도착했는데, 당시 그곳에는 816명의 나환자들이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근무기간인 6개월 후, 다미엔은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물겠다고 청원했 고, 주교는 이를 허락합니다. 그때 그는 이미 유럽에 있는 그의 형에게 “나는 나환자가 되어 모든 나환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한다”고 편지를 썻습니다. 어느 날. 다미엔은 참 자 유와 평화에 대해 설교하자 나환자들이 “당신 같이 성한 사람이나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지 우리에게 무슨 자유이며 평화이냐”고 빈정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미엔은 자기 방에 들어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하나님이여, 나를 나환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건지기 위하여 나환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몰로카이에 온지 11년이 지난 1884 12, 다미엔은 목욕물을 준비하다가 뜨거운 물이 발에 쏟아져 물집이 생겼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나병에 감염된 것이었어요. 나병에 걸렸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다미엔은 주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지금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나의 빛나는 희망은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주교님을 땅 위에서는 뵐 수 없게 되었고 천국에 가서나 뵐 것입니다. 저를 위하여 더욱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요. 그로부터 5년 후, 1889 4 15일 아침, 다미엔 신부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나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미엔의 희생적인 삶을 기려 하와이 주정부는 매년 4 15일을 다미엔의 날로 선포했고, 2009 10 11,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를 성자로 선포했는데, 그때 550명의 하와이 주민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환자가 되지 않으면 나환자들의 영혼을 구원시킬 수 없다고 여겨 스스로 나환자가 되었고 몰로카이의 환자들은 그의 희생으로 인해 절망과 죽음에 서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에 대한 영원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부 다미엔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든 비참함을 친히 체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정신을 실천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음을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그 분과 소통하고 사람들과도 소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로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와 그 은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소통의 문제와 해법을 위한 성육신

오 늘 본문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문제, 소통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많은 율법과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어도 사람들은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했고, 오히려 소통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최후 의 방법으로 성육신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와 소통하게 되십니다.

 

성 육신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 하셨습니다. 예수는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고,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분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만든 피조물인 사람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인 세상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고로 상당수의 백성들이 영접치 않았으며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고로 (9-1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셨건만…… 사람들은 그를 거부했습니다.

그 거부에 대한 예언은 이미 십자가 사건이 있기 700여년에 있었습니다. (1:3)에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소나 나귀만도 못한 무지한 죄인들의 모습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모습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 2008 12 31일엔 무신론자들의 모임인 영국인본주의자협회가 영국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중 800대에 이런 광고판을 설치했었습니다. 그 광고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겨라”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이 광고는 애리앤 쉬린(Sherine)이라는 여성 희극작가가 시작하였는데. 그녀는 2008년 인터넷에서 “신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히 고통 속에서 지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무신론 광고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고비용 모금을 하여, 영국 인본주의협회와 무신론 베스트셀러 저자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도움을 받아 열흘만에 2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여 영국 지하철에 광고판 1000개를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광고 문구에서 무신론자 도킨스는 애초에 “신은 없다”라는 단정적인 문구를 원했지만, 버스 광고회사는“영국의 광고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선 단정적인 주장을 피해야 한다 ”고 설득해 아마도라는 문구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도 “내가 외계에 나가서 아무리 눈을 닦고 봐도 신은 그림자도 없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불과 수년 뒤 하나님을 곧 바로 만났다. 테스트 파일럿(실험 비행사)으로 일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창조주이셨지만 세상에서 크게 인정받거나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날 때부터 그는 헤롯 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애굽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33세 경엔 사람들은 예수를 창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죽으심으로, 그 분이 피와 물을 쏟으심으로 세상은 그 분 안에 있던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고로 누구든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요한복음은 증거합니다.

그래서 성자 어거스틴은“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한국 속담엔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은 그냥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개개인이 의지적 결단과 회개와 믿음과 입술의 시인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 분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사도 요한은 우리 개개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12-13절입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blood)으로나 육정(the will of flesh)으로나 사람의 뜻(will of man)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이는 법적으로 하나님 자녀가 되는 방법이 설명된 부분입니다. 곧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 신 세상의 구주로 믿고 그 분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단하면,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녀가 되는 권세(the right)를 주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 자녀되는 최선의 길이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복잡한 길, 방법을 주시지 않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길 한 갈래만 보여 주시고 제시하십니다. 그래도 그 길을 모른다고 하면? 답이 없습니다.

인종, 남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갖습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권세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 하나님도보다 강한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의 자녀됨과 구원은 구원은 조변석개하는 우리의 감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 영생의 권세를 주시려 한 성육신

그럼 자녀들은 어떤 권리를 갖고 있을까요? 로고스(말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 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분과 같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자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곧 영생의 권리만이 아니라, 자녀는 맡겨 놓은 것도 없으면서 아버지에게 무조건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김세윤 교수는 구원을 정의할 때, 구원받음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수도관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믿음이 부족해서 큰 수도 관을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수원지의 물이 부족해서 갖다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그 무한한 하나님의 수원에 큰 수도관을 연결해서 풍성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다미엔이나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 무디나 스펄젼, 헨리 나우웬, 존 웨슬리와 같은 분들입니다.

 

) 맛보아 깨닫게 하신 성육신 (14)

본문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은 성육신을 가장 분명하게 말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고로 말씀은 곧 하나님을 대표하고 의미합니다. 그런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이는 비우심과 낮아지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통(communicate)을 위한 희생과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육신은 말씀이신 하나님을 인생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고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여 결단을 촉구한 사건입니다.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음식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 맛을 보기 전까지는 그 음식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낙타발 요리, 제비집 수프, 원숭이 골 요리 등의 맛을 아시나요?)

사실 오늘 말씀은 사도 요한이 침례 요한의 중언을 인용해 예수를 맛보고 설명한 부분입니다. 이종 사촌 형이었던 침례 요한은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살펴 보았습 니다. 그런 예수를- 빛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창조자-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어릴 때부 터 같이 동고동락해 온 친척이나 친구가 심지어 부모까지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시인했다 면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숙사 생활을 해보면 사람들은 금방 그 정체가 드러 납니다. 뭐 평소에 금식기도, 철야, 방언한다고 난리 치던 사람도 한달만 방을 함께 사용해 보 면 본성이 다 드러나요.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서 그를 보았던,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 라 삼 십여 년을 옆에서 함께 지냈던 친척 형님이 동생한테“그 분은 진실로 하나님이셨습니 다, 메시야십니다”라고 했다면? 또 숱한 선지자들과 하물며 핍박자 바울 조차도 그랬다면? 이건 실화입니다.

결론)

 

오늘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와 성육신의 의미, 그리고 결과들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이 귀하고 감사한 성육신의 사건이 나타난 날을 기념하여 감사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기꺼이 버리시고 이 낮고 죄 많은 땅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큰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122022 안익선 목사/ 참조: 쥬빌리 교회 말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