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히브리서 5장 강해 (대제사장 되신 예수)

호걸영웅 2023. 1. 28. 05:20

히브리서 5장 강해 (대제사장 되신 예수)

찬송가 50, 178 '

서론)
히브리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체 13장중에 1장부터 10 18절까지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라는 교리적인 부분이라면, 10 19절부터 마지막 13장까지는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한 실제적인 권면의 말씀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권면의 말씀 가운데에는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히브리서를 보통 믿음의 서신, 권면의 서신이라 부릅니다.

특히, 히브리서 전반부에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탁월성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당시 히브리인들에게와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자세히 비교 및 설명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4 14절에서 7 18절까지는 레위 제사장들과 비교하여 예수님의 대제 사장으로서의 우월성에 대해 논증하는 반면, 오늘 본문인 5 1-10절은 좀 더 좁혀서 아론 후손의 대제사장직과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교차 비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으로서의 우월성을 선명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비교의 대상이 된 아론의 후손인 대제사장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 읽은 1-4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첫 번째는 그들은 본질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임명된 인간이라는 것이며,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인간 대제사장으로서의 불완전함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연약함이고 자신의 죄를 해결 못하기에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2) 또한,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 부르심의 주체(주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하나님의 소명으로 대제사장직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대제사장 직을 수행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5-10절 말씀을 통해 교차 비교하며 언급한 대제사장의 자격을 이번 에는 예수님께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첫 번째는 아론의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스스로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임명에 의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그분은 인간 대제사장과는 달리 완전한 분이셨기에, 우리 모두를 영원한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3)세 번째는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차’로 쓰인 ‘탁신’의 원형 ‘탁시스’는 계열, 계통, 서열 등으로 해석되는 단어로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과 더불어, 인간 대제사장과는 분명히 다른 예수님의 우월성을 드러내 주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아론 후손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난 주에 배운 것 같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종교, 유대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오해하였기 때문입 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현실을 그들에게 익숙한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선명 히 밝혀주려 한 것이고, 본문 11-14절을 통해서 당시 히브리인들의 영적 상태를 아쉬워한  것입니다.

 

그 시작을 1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참조하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여러분의 귀가 둔해진 까닭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죠.

여기서 거론한 제사장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평화의 왕이며, 율법이 공포되기 이전의 인물이며,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예표적 인물입니다.

 

특히,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맞으러 나왔다는 진술 직후, 성경은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14:18)이라고까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신비로운 인물을 히브리서 기자는 할 말이 많지만 더 이상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이유는 그들의 귀가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영적으로 아둔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아무리 이야기를 한들 지금의 그들의 영적 상태로는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라고  했습 니다.

 

그렇게 귀가 둔해진 그들에게 성경은 12절을 통해 보다 더 구체적인 실상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물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했어요.

바로 영적으로는 어린아이와 같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죠. 교회?(당시는 회당)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중보하고 그들을 세우는 교사가 되어있어야 할 상황인데, 아직도 초보적 원리를 배워야 하고 여전히 단단한 음식물(영 적 높은 진리)을 먹지(소화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음을 은근히 책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로 말씀을 잘 이해하는 일에도 성령의 도움심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죽은 행실을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성숙한 경지로 나가기를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는 오늘 말씀 전반부에서 사람의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를 교차 댓구 형식을 빌려 설명하는 가운데에 서로 공통점도 있지만,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대제사장은 자신의 연약함에 휘말려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려고 했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당신의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셨다는 것입니다.

 

2)또한, 인간의 대제사장은 연약하고 불완전하기에 백성들을 위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릴 수밖에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보였다면, 예수님 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범함을 깨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이 세상의 마지막 그 날까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따르고 순종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을 만드신 것입니다.


교훈)

1)여기서 먼저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 같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믿음의 길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2)두 번째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직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교회에 다녔지만 교사로 살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보적 원리를 다른 분들에게 배워야만 하는 어린처럼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어른으로 그 년수에 합당한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영적 경험과 믿음이 약하여 선과 악을 잘 분별못하고 유혹에 쉽게 빠지거나 부화뇌동(附和雷同은 우레 소리에 맞추어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으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말 )하며 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매번 넘어지고 뒤돌아보고 아쉬워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각자의 마음속에 작은 믿음이 라는 이름의 씨앗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씨앗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싹은 낫으되 거름도 주지 아니하고 물도 잘 주지 않아 방치한 분은 교회에 다닌 지 몇 십 년이 되어도 여전히 작고 시들시들한 싹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치, 오늘의 말씀을 빌리자면 마땅히 교사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초등학문에 머무는 사람들이 곧 내가 아닌가 염려해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작은 믿음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매일 같이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싹을 가꿔 나간 분은 마음속에 커다란 믿음의 나무 한 그루가 오늘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성도는 오늘도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에 가슴 설레해 하며, 무심코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목하며 반응하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로 인해 기대에 찬 부푼 마음을 안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결론)
결국, 이렇듯 둔해지고 게을러진 우리들의 귀를 여는 방법도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해도 주님 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말씀에 적극 순종함으로 나아가, 예수님의 진정한 우월하심 을 찬양하고 확신함에 이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순종을 통해서 평범함을 떨치고 일어나  , 세상 일들로 둔감해지고 게을러진 우리들의 일상의 귀를 활짝 열고, 예수와 동행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더불어 아둔해진 우리 귀로 인해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히브리인들이 실상은 오늘의 우리의 모습임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의 이로움을 위해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사는 삶, 되게 도와주시고, 오늘 하루도 여호와이 손이 결코 짧지 않았음을 오늘밤 고백하는 우리 각자가 될 수 있도록 저희들의 삶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은 일에도 주 앞에 순종하는 복된 하루 되게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8절에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라는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여러분의 귀는 둔해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렇게 되셨습니까? 이유는 무엇이고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4.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현재 어느 쪽에 속해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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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23 안익선 목사/ 참조; 김영준 님